1977년·2018년 두차례 내한공연...말러·브루크너 교향곡 명반 남겨

네덜란드의 세계적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22일 별세했다. 그는 두차례 내한공연을 가졌다. 사진=인터넷 캡처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쉬운 지휘’를 지향한 네덜란드의 세계적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Bernard Haitink)가 22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아스코나스 홀트는 하이팅크가 이날 영국 런던의 집에서 부인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임종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26년간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를 지휘해 세계적인 명문 악단으로 키워냈다. 그가 지휘한 말러와 브루크너의 교향곡집은 명반으로 유명하다. 국내 팬들과는 두 번 만났다. 1977년 로열콘세르트허바우(협연 정경화)와 2013년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협연 마리아 주앙 피르스)와 함께 내한해 공연했다.

하이팅크는 1929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9세 때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암스테르담음악원 졸업 뒤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에 바이올리니스트로 입단해 연주하면서, 포디움을 향한 의지를 키우며 페르디난트 라이트너에게 지휘를 배웠다.

곧 꿈은 이루어졌다. 1954년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을 최초로 지휘한 뒤 1955년에는 이 악단의 부지휘자가, 1957년에는 수석지휘자가 되며 승승장구했다.

1961년부터 오이겐 요훔과 함께 수석지휘자로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이끈 하이팅크는 1963년 이 악단의 음악감독이 됐고 1988년 리카르도 샤이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26년 동안 이끌며 세계 톱클래스로 키워냈다.

네덜란드의 세계적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지난 2018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마라이 주앙 피르스와 협연하고 있다. 사진=빈체로
그는 또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도 지휘했다. 영국에서는 런던 필하모닉 수석지휘자(1967~1979년), 글라인드본 오페라 음악감독(1978~1988년),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 음악감독(1987~2002년)으로 일했다. 독일에서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2002~2004년), 미국에서는 보스턴 심포니 수석 객원지휘자(1995~2004년)와 시카고 심포니 수석지휘자(2006~2010년)를 맡았다.

2019년 만 90세 및 지휘 데뷔 65주년을 맞아 여러 오케스트라와 은퇴 공연을 가졌다. 그해 9월 6일 스위스 루체른 뮤직 페스티벌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한 것이 그의 마지막 무대였다.

하이팅크는 같은 시대 거장 지휘자들과 여러모로 달랐다.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있고, 수줍으면서도 말을 붙이기 쉬운 사람이었다. 포디엄 위에서는 언제나 침착하고 예리해서 단원들과 즉시 소통할 수 있었다. 어려워 보이는 지휘가 아니라 청중이 음악을 이해하도록 풀어주는 쉬운 지휘를 지향했다.

그가 지휘한 말러와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집은 최고의 명연주로 꼽힌다. 또한 로열콘세르트허바우를 지휘해 클라우디오 아라우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황제)’과 블라디미르 아슈케니지와 흐흡을 맞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도 명반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두 번의 콘서트를 선사했다. 1977년 로열콘세르트허바우와 함께 내한해 이화여대 강당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협연했다.

그리고 36년이 흐른 2013년에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 두 번째로 방문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와 호흡을 맞춰 두차례 공연했다. 당시 하이팅크는 84세였는데, 듬성듬성한 백발을 휘날리며 포디움에 올라선 노지휘자의 손끝을 타고 흐른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두고두고 입에 오를 만큼 명연주였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