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이안삼 가곡제’ 성악가 11명 출연 감동무대 선사

테너 이현, 이재욱, 이정원(왼쪽부터)이 12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1회 이안삼 가곡제'에서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를 부르고 있다. 사진=김문기의 포토랜드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왼쪽에 이현, 가운데에 이재욱, 그리고 오른쪽에 이정원이 섰다. 모두 태극마크급 테너들이다. 스타트는 이재욱이 끊었다.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닿기만 해라 / 허공에 태어나 수많은 촉수를 뻗어 / 휘젖는 사랑이여 /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한 단어만 들어도 우직한 남성미가 느껴지는 노랫말이 허공에 퍼지자, 사랑의 절규는 어느새 뜨거운 불덩이가 되어 관객 마음으로 훅 들어왔다.

이현이 다음을 이어 받았다. “가서 불이 될 온몸을 태워서 / 찬란한 한 점의 섬광이 될 /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벌써 몇 번째인가. 공식 공연에서 이미 수백 번 넘게 불렀지만 노래할 때마다 새롭다. 특히 오늘은 더 그렇다.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 들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데 오늘은 더 가슴 깊숙이 꽂힌다. 이게 바로 명품 가곡의 힘이다.

“빛깔 없어 보이지 않고 / 모형이 없어 만져지지 않아 / 서럽게 떠도는 사랑이여 / 무엇으로든 태어나기 위하여 / 선명한 모형을 빚어 다시 태어나가 위하여” 마지막은 이정원의 차례다. 잠시 숨을 고르듯이 파워와 볼륨을 한 단계 낮췄는데 오히려 여운이 더 깊다. 울림이 더 크다. 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콘서트장을 가득 채웠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하는 스리 테너가 ‘하늘나라 이안삼 작곡가’에게 노래를 바쳤다. 이재욱, 이현, 이정원은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시 문효치)’를 폭풍고음에 실어 보냈다. 세 사람은 한국 예술가곡의 거장 이안삼(1943~2020)을 추모하는 음악회에서 마치 ‘선생님, 저희 노래가 하늘까지 닿았지요’를 증명하듯 끝판 보이스를 선보이며 감동 무대를 만들었다.

제1회 이안삼 가곡제 출연자들이 피날레송으로 '내 마음 그 깊은 곳에'를 합창하고 있다. 사진=김문기의 포토랜드
지난해 8월 18일 77세로 별세한 이안삼 작곡가의 1주기를 맞아 8월 12일(목)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제1회 이안삼 가곡제’가 열렸다.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작곡가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음악회다.

이안삼 선생은 한국가곡의 큰 별이었다. 2018년 병석에 들기 전까지 주옥같은 신작 가곡을 쉼 없이 창작했다. 아름다운 우리시에 유려한 선율을 붙인 노래는 수많은 성악가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됐고, 관객의 최애곡으로 사랑받았다.

또한 우리 가곡의 부활에도 온몸을 바쳤다. 2008년 인터넷에 ‘이안삼 카페’를 개설해 창작 가곡의 보급과 확산에 힘썼다. 많은 가곡 음악회를 개최하고 재능 있는 작사가를 발굴해 냈다. 그는 2000년대 이후 한국 가곡계의 중심인물이었다.

씨줄과 날줄의 인연으로 그와 오랫동안 교류했던 소프라노 임청화·허미경·정선화·조정순·김지현·이윤숙·김성혜, 테너 이현·이정원·이재욱, 그리고 바리톤 송기창 등 모두 11명이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소프라노 김지현과 테너 이정원이 ''어느 날 내게 사랑이'를 부르고 있다. 사진=김문기의 포토랜드
솔로 무대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특히 쉽게 볼 수 없는 이재욱·이현·이정원의 스리 테너처럼 이중창·삼중창이 엑설런트였다. 김지현과 이정원은 ‘나는 소프라노다. 나는 테너다’를 증명하듯 언터처블 목소리를 뽐내며 새롭게 편곡된 ‘어느 날 내게 사랑이(다빈 시)’를 들려줬다. 관객들은 잔잔한 바람으로, 은은한 달빛으로 사랑이 찾아오는 경험을 느꼈으리라.

소프라노 정선화와 이윤숙이 '그대 어디쯤 오고 있을까'를 부르고 있다. 사진=김문기의 포토랜드
테너 이재욱, 메조소프라노 조정순, 바리톤 송기창이 '그 사람'을 부르고 있다. 사진=김문기의 포토랜드
여성 출연자 7명이 '송강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김문기의 포토랜드
이윤숙과 정선화는 서로 화음을 맞춰가며 ‘그대 어디쯤 오고 있을까(김명희 시)’를 노래했는데, 어느새 애타게 기다리는 황홀한 그대가 눈앞에 서있었다. 조정순·이재욱·송기창은 ‘그 사람(전세원 시)’에서 내 마음에 꽃 피워준 그대의 향기를 예찬했다. 그리고 여성 출연자 7명은 ‘사미인곡’ ‘관동별곡’을 만든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거장인 정철을 예찬하는 ‘송강의 찬가(공한수 시)’를 불렀다.

솔로이스트 역시 빛났다. 비교적 자주 불리지 않는 곡도 프로그램에 많이 넣었는데, 이안삼의 보물들을 더 많이 알리려는 의도다. 임청화는 ‘사려니 숲길에서(조재선 시)’ ‘가을을 보내며(이향숙 시)’를, 허미경은 ‘천년 사랑(김성희 시)’ ‘가을 들녘에 서서(최숙영 시)’를, 김성혜는 ‘나 이리하여(이귀자 시)’ ‘여름 보름 밤의 서신(한상완 시)’을 선사했다.

조정순은 ‘아름다운 세상(김종선 시)’을, 정선화는 ‘금빛날개(전경애 시)’를, 김지현은 ‘월영교의 사랑(서영순 시)’을, 이윤숙은 ‘그대가 꽃이라면(장장식 시)’을 불렀다.

이현은 ‘세월의 안개(안문석 시)’와 ‘물한리 만추(황여정 시)’를, 이재욱은 ‘고독(이명숙 시)’을, 이정원은 ‘솟대(김필연 시)’를 연주했다. 송기창은 ‘시절 잃은 세월에(고영복 시)’와 ‘위로(고옥주 시)’를 노래했다.

시인 장장식과 김정주가 제1회 이안삼 가곡제사회를 맡아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문기의 포토랜드
고영복, 고옥주, 공한수, 김명희, 김성희, 김종선, 김필연, 문효치, 서영순, 안문석, 이귀자, 이명숙, 이향숙, 전경애, 전세원, 조재선, 최숙영, 한상완, 황여정 등 이날 연주된 작품의 가사를 쓴 시인들이 거의 모두 참석해 콘서트를 빛냈다. 프로그램북에 이들이 이안삼 작곡가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실어 눈물 짓게 했다.

특히 '아름다운 세상'을 작사한 김종선 시인은 육종암으로 8차례 수술을 받은데다, 바로 전날에도 항암주사를 맞아 많이 불편한 몸이었지만 이안삼과의 인연을 지키기 위해 참석했다. 더욱이 아버지를 만나려고 미국서 나온 아들, 딸, 손주 등 모두 9명 가족과 함께 해 주위를 뭉클하게 했다.

피아니스트 백설과 장동인이 번갈아 성악가들과 호흡을 맞춰 퍼펙트 음악회에 힘을 보탰다. 장장식·김정주 시인이 사회를 맡았고,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 김문기 작가가 준비한 이안삼 추모 영상을 상영했다. 김정주 시인은 “이안삼 작곡가의 일생을 10분 정도의 영상으로 정리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영향은 100년, 100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향기를 담고 있다”며 “이번 음악회가 첫걸음 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더 풍성한 음악회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번 제1회 이안삼 가곡제는 1주기 추모음악회이기 때문에 모든 곡을 이안삼 작품으로 구성했지만, 내년 제2회 음악회 때부터는 이안삼 곡과 다른 작곡가의 가곡을 반반씩 섞어 연주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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