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내리 먹을 갈고, 그 먹물을 다시 하루 동안 숙성시켜 글씨를 쓰다

검여 유희강<국립현대미술관제공>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1911-1976)은 경술국치 다음 해 인천시 시천동의 진주 유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24세라는 늦은 나이에 명륜학원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28세에 중국유학길에 올라 8년간 체류했는데 중국서화 및 금석학연구와 상하이미술연구소 자유양화연구소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그의 아호 ‘검여(劍如,칼과 같다)’처럼 그의 글씨는 검을 휘두르듯 찌르고, 자르고, 세우고, 막고, 멈추는 모든 동작에 숨이 막힐 듯하며 갈필을 응용한 화려하면서도 강한 필획을 구사한다.

“이는 칼과 같은 준엄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검여의 글씨는 어디까지나 중봉(中鋒)을 지키며 행서를 주로 쓰지만 또한 예서와 전서에도 격조가 높은 작품들이 많다. 행서와 초서의 운필이 전서와 예서에 근거를 둠으로써 그 내재적인 굳셈이 돌과 같다. 또 그의 글씨가 겉으로 보기에는 기이하고 준엄하고 웅건하며 용이 날고 호랑이가 뛰는 기세가 있지만 언제나 원융(圓融)한 운치를 잃지 않았다.”<전상모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나무아미타불_완당정게, 종이에 먹, 64×43㎝, 1965<성균관대학교박물관소장>,<국립현대미술관제공>
그러나 안타깝게도 검여가 화경(化境)의 경지로 내달음치고 있던 1968년, 그의 나이 58세에 오른쪽 반신 마비라는 치명적인 난관을 맞았다. 오른쪽 마비로 필사적인 노력 끝에 좌수서(左手書)로 재기하여 새로운 서예 인생을 펼쳤다. ‘검여 좌수서’란 별칭도 붙었다. 1969년 이후 투병 생활 7년간 심신의 장애가 도리어 그의 서예를 최고의 경지로 이끌었던 것이다.

검여는 소탈하고 과묵하며 겸허한 사람으로 교유의 폭도 매우 넓었다. 배길기(1917-1999), 김충현(1921-2006), 김응현(1927-2007), 배렴(1911-1968), 이마동(1906-1980), 박종화(1901-1981), 조지훈(1920-1968), 최인욱(1920-1972), 이흥우(1928-2003), 이경성(1919-2009), 임창순(1914-1999), 안춘근(1926-1993), 이춘희(1928-2018) 등 서예가, 화가, 시인, 소설가 등이 있다.

양소백 칠언대련, 60×130㎝ 종이에 먹, 1975<국립현대미술관제공>
◇특유의 회화성

“미술평론가 이경성(1919-2009)은 ‘검여 유희강의 예술은 겸허한 인간성 위에 자리 잡고 있기에 옥같이 은은한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통상 검여는 4시간 내리 먹을 갈고, 그 먹물을 다시 하룻 동안 숙성시켜 글씨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검여 글씨의 먹빛은 진하고 영롱하다.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검여 작품에서 풍겨 나오는 먹의 내음과 향기는 묵직하다.”<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학예연구사(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Curator Bae Wonjung,裵原正,미술사학 박사)>

작품 ‘나무아미타불_완당정게(阮堂靜偈)’는 시대를 초월한 스승 완당의 자취를 밟고자 하는 검여 유희강의 서예정신이 담겨있다. 55세에 쓴 작품으로 유희강의 우수서가 완숙할 경지에 들었을 때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정중앙을 종으로 흐르는 원주형 꼴의 탑신모양을 북조 서풍이 묻어나는 예서체 “나무아미타불‘로 추상화하고 양 옆으로 빼곡히 완당의 시를 장식하였다. 검여 유희강 특유의 회화성이 묻어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 ‘양소백(楊少白)의 칠언대련’작품은 유희강이 65세 되던 해 치명적인 병마를 극복하고 좌수서로 쓴 대표적인 예서다. ‘두보(杜甫) 시 백부행(白鳧行)’은 해서와 행서 그리고 초서가 마구 뒤섞여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를 뜯어보면 잘 썼다거나 예쁘다거나 하는 느낌은 하나도 없지만 조금도 어색하거나 거슬리지 않는다.

두보 시 백부행, 93.5×129.5㎝ 종이에 먹, 1966<국립현대미술관제공>
◇검여 서예의 특질

전상모 경기대학교 초빙교수는 자신의 글 ‘불굴의 예술혼을 펼치다’논평에서 검여 서예의 특질을 썼다. “검여의 서예에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가 있다. 검여는 가학과 신학문으로 쌓은 교양을 바탕으로 여러 문헌에서 제재를 들추어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글씨와 함께 글을 음미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제발이나 서찰 등의 한문 문장도 매우 훌륭해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였다.

또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경지이다. 검여가 흥취가 일어 붓을 휘두른 것은 마치 높은 산이 무너지고 천둥벼락이 친 듯하여 참으로 호쾌하고 장엄하다. 이는 학문과 수양, 어질고 너그러운 품성이 붓끝과 어우러진 경지이다.

어진 선비의 내심으로 혼신의 전력만이 가능한 그런 경지였다. 해서와 행서, 초서가 마구 어우러져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를 뜯어보면 잘 썼다거나 예쁘다거나 하는 느낌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조금도 어색하거나 거슬리지 않는다. 검여는 우리나라 근세의 묵보(墨寶)이다. 검여의 서예는 웅혼하고 졸박한 풍격으로 귀결된다.”

한편 검여 유희강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덕수궁관에서 4~7월 전시 중인 ‘미술관에 書:한국 근현대 서예전(The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Writing)’의 두 번째 주제 ‘글씨가 그 사람이다(書如其人)-한국근현대서예가1세대들’ 12인 중 예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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