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정정식 개인전, 6월26~7월2일, 갤러리H

신의 테이블, 91×116.8㎝ Oil on canvas, 2010~2019
“인간은 자연의 의도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이 작고 힘없는 갓난아기로 태어나는 것은 자연이 우리들 인간에게 ‘슬기롭게’살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超譯 칸트의 말, 하야마 나카바 엮음, 김치영 옮김, 삼호미디어 刊>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회오리바람처럼 치열한 열기가 밀려들었다. 세워지거나 걸려있는, 곧 세상 밖으로 나아갈 작품들은 오일 페인팅의 초현실적 뉘앙스를 풍기며 화려하고도 싱그러운 생명의 찬미를 뿜어냈다.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물의 영혼은 새로운 행성으로 생성되는 것인가. 혹여 허공에 떠 있는 두 레몬은 번식과 성장의 메신저로 온 것은 아닐까? 원근(遠近)과 대소가 교란된 화면은 탐스런 과일이 씨앗의 발아에서 비롯되듯 바람 불면 날아가는 보잘것없는 미물과 첨단과학의 오늘에도 여전히 미지로 남아있는 우주신비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을 잇은 강렬한 인력(引力)을 ‘신(神)의 테이블’,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엔틱스러운 뒤주 등에 펼친다. 달콤새콤한 고혹의 매력으로 묘사된 포도, 수박, 사과 등과 여전히 잘 알지 못하는 지상과 허공에 부유하는 것들에 대한 낯섦의 편견을 허문 무엇만이 그 자리에 오른다.

전망대, 73×53㎝, 2016
과일과 행성의 관계성을 통한 우주시원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천착해 온 화백의 ‘신비한 과일가게’연작은 만물에 대한 존재론이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착각을 풍자한, 오만한 인간의 자만에 대한 경각성을 얹어놓고 있는 배후는 그 자체로 융·복합의 열림 미학이다.

밤하늘 반짝이는 운하의 여정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지우는 신령스러운 영감의 자취로 빛나고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도저하게 흘러가는 광대무변(廣大無邊) 저 찰나와 영원의 세레나데선율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10여 년 전 어느 날, 문득 극소·극대세계를 과일을 소재로 그려나갈 영감이 떠올랐다. 그대로 지나치면, 회피하면 안 될 것이라는 본능적직감이 즉시 붓을 들게 했다. 본령(本領)이지 않을까한다. 작품은 작은 생명체나 우주생성과 소멸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물론 화법 안엔 나의 상상력이 스며있다. 그러하기에 관람자가 빙그레 웃어주기만 해도 나로서는 흐뭇할 것이다.”

관계, 100×50㎝, 2018
◇표현할 게 깊어지다!

정정식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했다. 수화랑(대구), 스위스 ‘ART INTERNATIONAL ZURICH 2012’ 메인화면 선정 작가로 주목받았고 미국 ‘Art Miami 2012’ 독립부스개인전 등을 가졌다. 1986~88 젊은 의식전(한강미술관), 중·한수교23주년 중한서가명가작품전(칭다오시립미술관,2015), 남·북·중 평화-상생-공존전(아라아트센터,2014)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지구상에 인간만이 산다는 지극히 단순한 발상에서 벗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것을 대중에게 확산하고픈 사명감이라고 할까. 그런 심경으로 작업했는데 보기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깜찍하고 귀엽게 그리려 노력했다.” 이번 열세 번째 개인전은 25점을 선보이며 6월26일부터 7월2일까지 인사동, 갤러리H에서 열린다.

정정식 화백 <사진:권동철>
한편 화백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뿌듯해지고 어깨에 무게감이 가중된다. 그러나 동시에 표현할 게 깊어지고 그려야 할 작품도 많다는 것이 느낌으로 밀려든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