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한국현대사 625’초대전‥4월12~6월6일, 인디프레스 갤러리

한국현대사-6·25망령들, 220×130.5㎝, 캔버스에 유화, 2018
“방을 버리고 지평으로 뛰어나온 내 창조의 변두리/두고 온 다음의, 아픔 가까이서 열차는 달려온다. 전부를 바치고도 다하지 못한 울림 속, 최후의 통찰로 내가 남는 때, 향상의 아무것도 아직은 없었을까/그렇게, 의문으로 출렁이는 바다 파도 멀리, 달아난 기억의 망각 쪽에서 열차는 무적의 물결을, 빛나는 갈망을 외치며 달려온다.”<이성부 詩 열차, 시인생각刊>

화면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보여준다. 살아남은 상이병(傷痍兵)은 목발을 짚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반공논리와 기득권, 5·18민주화운동광주시민을 패는 몽둥이 등등이 그 처절한 몸통에 달라붙어 빼곡하다.

그리고 죽은 아버지 옆에서 울고 있는 어린소녀가 있는 그림은 신 화백이 8살 때 고향지역인 ‘이태골’에서 일어난, 부역혐의로 포수가 총살을 당한 장면의 기억을 떠올려 그린 것이다.

“6·25전쟁이 우리를 엄청 나게 많이 바꿨다. 옛날 반상(班常)계급을 허물어뜨린 것이자 현재로서는 돈 많은 사람이 양반이 된 것이다. 해방이 되면서 친일파들이 정권을 잡고 6·25가 일어나고 반공논리가 만들어진 것 등 어쩌면 그런 것들이 ‘괴물’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남북이 원수가 된 상황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람을 나는 상이군인이라고 생각한다.”

이태골의 총살형, 130×162㎝, 2019
◇민중미술이 해야 하는 의무

민중미술가 신학철(1943~)은 경북김천출신으로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학고재 갤러리, 한국근대사를 조명한 작품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구기동 서울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주요단체전으로 1967년 조흥은행본점-WHAT, 69년 일본 동경 도끼와 화랑-한국청년작가6인, 1970~75년 과천국립현대미술관-A.G.(아방가르드협회), 81~84년 서울미술관-문제작가, 89년 그림마당 민-광주여! 오월이여!, 94년 예술의전당-동학농민혁명100주년 새야새야 파랑새야전(展) 등에 참여했다.

1982년 제1회 미술기자상, 91년 제1회 민족미술상, 99년 제16회 금호미술상을 수상했다. 이번 ‘신학철-한국현대사 625’초대개인전은 지난 4월12일 오픈하여 6월6일까지 경복궁영추문 건너편, 인디프레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

신학철 작가는 서울 동대문구 중랑천 옆 자택에서 작업한다. “천안시 목천읍 소재, 화실이 완성단계에 있어서 앞으로 그곳에서 대형그림을 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이번전시는 2년 반 정도 준비했다. 실물사진을 콜라주(collage)로 1차완성해 놓고 그것을 똑같이 그리는 이른바 실물사진오브제작업이다.

“흑백작품으로 생각을 모으다가 6.25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동안 한극근현대사에서 부분적으로는 제법 다뤘지만 전체적으로 한번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쟁하는 장면만 있으면 과거겠지만 6·25를 괴물로 보는 것은 현재의 모습이다.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오늘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신학철(申鶴澈, SHIN HAK CHUL)화백 <사진=권동철>
한편 민중미술관련, 화가 신학철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민중미술은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 진보적 미술 및 사회변혁운동이 아닌가. 현재로는 서민들을 위해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실생활을 개혁하는 것이 민중미술이 해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와 경제흐름에 관심이 많아서 실제적으로 사회구조가 잘못된 것을 비판도 하는데 그것은 좋은 쪽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내 나름대로 그런 것을 화가의 본분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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