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한홍수‥‘母·海·地’초대전, 행촌미술관, 5월30~6월30일까지

이마도, 162×130㎝ Oil on canvas, 2019
“나는 폭포의 삶을 살았다, 고는 말할 수 없지만/폭포 주위로 날아다니는 물방울처럼 살 수는 없었을까/쏟아지는 힘을 비켜갈 때 방울을 떠 있게 하는 무지개: 떠 있을 수만 있다면 空을 붙든 膜이 저리도록 이쁜 것을”<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等雨量線1, 문학과 지성사刊>

정지된 듯 흘러가는 영상처럼 여명의 시간을 일깨우는 볼그스름한 빛이 번진다. 바다와 소나무, 저 멀리 산협을 아우르는 냉랭하고 깔깔한 겨울아침 미풍이 가슴팍으로 일순 밀려드는데. 먼동이 떠오르는 색감의 섬 그리고 오지의 세찬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저 고독의 해송은 어머니 품 같은 바다의 기억을 나직이 읊조린다. 솔잎들이 가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나부끼는 노래는 어떤 귀환을 부르고 자연과 ‘나’와의 면면한 새로운 자각을 일깨운다.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이마도(二馬島)로도 불리는 임하도 풍경을 남기고 싶었다는 화가. “그림을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서 다시 돌아와 내 가슴 저 밑바닥에 있는 것을 캐내는 재정립의 시간이 절실했었다. 크지 않아서 또한 더 매력 있는 고립의 시간과 장소의 섬. 이마도 이니까 그런 것이 확연하게 심상으로 흘러들어서 좋았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내가 고향을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더 보게 되는 것 같다.”

대흥사, 162×130㎝ Oil on canvas, 2019
새벽빛이 어우러져 보라색을 띠는 산사(山寺)와 안개는 더욱 신비스럽게 어둑어둑하여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드러난다. 어떤 원초의 무의식을 일깨우는 듯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에 비로써 드러나는 자아의 영상…. “스님 한 분이 대흥사(大興寺)를 제대로 보려면 하룻밤을 자봐야 한다고 하셨다. 분지같이 싸고 있는 지형, 새벽이 밝아오는 기운이 감지되는 그때 그 풍경 속으로 나를 밀어 넣어 그려냈다.”

그리고 “대가람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히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편액(扁額)에 얽힌 일화를 종종 떠올리게 된다. 이번 기회에 역사성의 분위기를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미학적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한홍수 화백(ARTIST HAN HONG SU) <사진=권동철>
◇해남의 땅과 바다

한홍수 작가는 프랑스 베르사유미술학교,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를 수학했다. 1992년 도불(渡佛)하여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5년 유네스코 70주년 초대전을 파리에서 가졌다. 지난해 11월 해남 행촌문화재단 레지던스로 28년 만에 이마도에서 작업하고 있다. ‘母·海·地’초대개인전은 5월30일부터 6월30일까지 한 달 동안 행촌미술관에서 연다. “어머님이 고향에 계시고 해남의 땅과 바다는 내 영혼의 얼개가 서려있다. 어머니 초상과 풍경 등 30여점을 전시할 계획이다.”

한편 햇수로 5년 만에 다시 만난 화백은 땅끝 섬마을 봄볕에 그을려 건강해보였다. 그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쉽게 시작 할 수 있는 것이 제일 어려운 길이라는 말이 딱 맞다. 작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길을 간다는 것은 화업 근본이 무엇인지를 계속 찾아야 하는 자신과 싸움의 연속이다. 물질적 부와 가난은 부수적인 것일 뿐 그 소망을 위한 동경(憧憬)의 반복을 고행에 빗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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