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감독의 첫 연출작!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열연

영화 '미성년' 포스터(쇼박스 제공)

[데일리한국 부소정 객원 기자] 영화 ‘미성년’은 베테랑 ‘배우’ 김윤석이 ‘감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처음 연출한 작품이어서 개봉 초기부터 주목받았다. 지난 1일 언론시사회로 처음 베일이 벗겨지면서, 그동안 화제에 비해 정보가 많지는 않았던 김윤석 감독의 ‘미성년’이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김윤석 감독은 “뼈까지 아프다”라는 말로 첫 연출의 소감을 전했다.

높은 경지에 다다른 배우가 첫 연출에 도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김윤석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배우와 감독을 겸하면서 “그래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영화 ‘미성년’은 결코 단란한 가정사를 그린 따뜻한 영화가 아니다. 한 가장의 바람으로 화목했던 두 가정은 동시에 풍비박산 난다. 현실 속 지옥의 시작인 것이다. 영화는 금이 간 두 가정과 그 위기를 견디는 각각 가족구성원들의 내면에 포커스를 맞춘다. 비밀과 거짓이 들통 나면서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이에 반응하는 개개인의 방식들이 다르지만, 모두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희한하게도 이 영화를 따뜻하게 만든다. 김윤석 연출의 세심함과 유머가 장면마다 살아있고, 휴머니즘이 돋보이는 영화라 할만하다.

1인 개최된 언론시사회 현장(왼쪽부터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배우와 김윤석 감독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무엇보다 제목에 ‘뜻밖의 반전’이 있다. 실제 미성년인 주리(김혜준 분)와 윤아(박세진 분)의 성장 이야기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영화 속에서 지칭하는 미성년은 오히려 어른들이다. 우리들은 입시 공부만 줄곧 하다가 만 19세만 되면, 아무런 준비 과정이나 통과의례 없이 어른이 된다. ‘어쩌다 어른’이 된 어른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현실과 타협하며, 나날이 비겁해진다. 이 영화 속 어른들은 실제 미성년들보다도 더 미성년 같다.

사고를 친 것은 어른들인데, 그 누구도 사고에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하고자 하지 않는다. 대원(김윤석 분)은 도망치기 급급하고, 미희(김소진 분)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둘의 사랑의 결과는 ‘아이’였는데, 둘 다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딸 주리가 ‘아빠’를 부르는데도 대원은 줄행랑을 친다. 같은 어른인 게 부끄럽고 무안하고 낯 뜨거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미성년' 스틸컷(쇼박스 제공)

대책 없는 사랑은 이렇게 맥없이 끝난다. 기만당한 가족들만 남았을 뿐이다. 대원은 현실에서 도망가고 뒷걸음치다 강도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그 수습마저도 아내에게 기댄다.

아내인 영주(염정아 분)는 담담하게 이 사건을 견디는 것 같지만, 사실 속으로는 폭풍이 몰아친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남편에게도 불륜의 상대인 미희에게도 우월감을 가질 수가 없다. 재산은 모두 남편 명의로 되어 있으며, 미희도 병원에서 식음을 전폐하며 고통 받는 것을 거란 예상을 깨고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인다. 영주는 그저 묵묵히 일상과 딸을 챙길 수밖에 없다.

미희는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도 철부지 어른이다. 고등학생 때 미혼모가 되었고, 오리집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불륜을 사랑으로 믿으며, 그 불완전한 사랑에 기댄다. 이 가정이 순탄하려면 필연적으로 엄마 대신 딸이 빨리 성숙해질 수밖에 없다.

이 세 명의 어른들 외에도 이 영화 속 어른들은 하나 같이 미성년 같다. 똑같이 싸움을 했는데 문제아와 모범생의 대우를 다르게 하는 선생님, 돈이 급해 찾아온 딸에게 오히려 커피를 얻어 마시면서 도박하느라 가족을 전혀 돌볼 마음이 없는 친아빠, 삥 뜯는 것처럼 경치 값 운운하며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게 만드는 할머니, 병실에서 남의 사생활을 간섭하며 오지랖을 떠는 환자 보호자 등등 영화 속 어른들의 모습에는 한숨이 날 지경이다.

영화 '미성년' 스틸컷(쇼박스 제공)

그에 비해 고등학생인 주리와 윤아는 나름의 방식으로 이 사건을 견뎌내려고 노력한다. 아빠의 불륜을 엄마에게 숨기고 싶었던 주리와 배가 불러오는 엄마를 숨길 수 없던 윤아는 입장 차이가 극명해 크게 싸우고 친해지기가 어렵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던 둘의 화합은 아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토록 서로 원망했던 불륜의 결과이지만, 아기는 눈물겹게 귀엽다. 아기와 교감하면서 둘은 어른들을 이해하려 애쓰게 되고, 한 단계 더 성장한다. ‘어른스러움’을 찾을 수 없는 어른들과는 사뭇 다르게 ‘아이스러움’을 뛰어 넘는 주리와 윤아는 진정한 ‘성년’과 ‘미성년’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1일 개최된 언론시사회&기자간담회 현장(왼쪽부터 박세진, 김혜준, 김윤석(감독), 김소진, 염정아 배우)

김윤석 감독은 이 영화를 ‘성장과 만남의 영화’라고 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가 만나서 문제와 맞닿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해야한다. 실제 미성년은 더 자라야 하고, 미성숙한 어른들은 성숙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지키기 위해 싸울 게 없는 사람, 자신의 안위보다 중요한 게 없는 사람은 비참한 존재”라고 했다. 딱 이 영화의 대원에게 적용되는 격언이다.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 대원은 무수한 무리 속에 묻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평범한 우리들을 상징한다. 비겁하고 나약한 현대의 어른들. 가정을 꾸리지만, 자신의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감이 없는 가장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워 실소가 터진다.

영화 '미성년' 스틸컷(쇼박스 제공)

그는 가족도 연인도 자기 자신도 지키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사랑의 결실이라고 생각된 것들을 모두 잃었다.

김윤석 감독은 이 배역에 대해 “대원 역할 캐스팅이 어려웠다. 균형 조절을 위해 그냥 내가 하기로 결정했다"며 어쩔 수 없이 맡았다 했다. 하지만 뛰어난 연기자라 그런지 이 비겁함도 참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다. 이로써 김윤석 감독은 각본, 연출, 배우까지 1인 3역을 해냈다.

영화 '미성년' 캐릭터 포스터(쇼박스 제공)

영주 역 염정아와 미희 역 김소진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두 여배우에 대해 김윤석 감독은 “말이 필요 없는 베테랑 배우들”이라고 극찬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연기력을 입증 받은 염정아 배우는 “김윤석 감독의 데뷔작의 첫 배우로 남는 게 큰 의미라 동참했다”며 감독님이 배우 출신이라 “배우 입장에서 현장을 배려해주셨다”고 밝혔다. 연극으로 탄탄한 연기 내공을 쌓은 김소진 배우도 “감독님이 어떤 이야기든 귀담아 들어주셨다”며 “편한 역은 아니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출연 이유를 설명했다.

영화 '미성년' 캐릭터 포스터(쇼박스 제공)

500명 이상 참여한 오디션의 높은 경쟁을 뚫고 캐스팅 된 신예 김혜준과 박세진의 연기는 기대를 훌쩍 넘는다. 과연 신예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캐릭터를 잘 살렸다. 믿었던 아빠에게 크게 실망하는 주리와 강렬한 눈빛으로 세상에 홀로서기를 결심하는 윤아의 연기는 믿음직스러워서 “작품에 완벽하게 몰입해 영화를 완성시켜준 배우들에게 고맙다”는 김윤석 감독의 감사의 말에 크게 공감된다. 이 네 배우의 연기가 돋보여서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인간 심리를 따라가기만 해도 내적으로 충실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다.

영화 '미성년' 스틸컷(쇼박스 제공)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무래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서 의견이 분분할 거 같다. 어떤 의식을 치루는 듯 보이지만, 과연 쉽게 납득이 가는 결말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한다. 김윤석 감독에 의하면, 30번 이상을 고쳐 쓴 결말이라고는 하지만, 영화 내내 고개를 끄덕이다 마지막에 갸웃하게 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보람 작가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그 누구에게도 크게 해피엔딩은 아니다. 이 영화의 미덕은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각자 극복과정에서 성숙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걸 비난의 시선이 아니라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영화 '미성년' 촬영현장컷(쇼박스 제공)

누가 뭐라 해도 이 영화의 최고의 수확은 ‘김윤석 감독’이라는 ‘뜻밖의 발견’이 아닐까? ‘미성년’은 어찌 보면 ‘불륜’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신선한 관점 바꾸기로 만들어낸 기발한 작품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루한 모습으로라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정면 돌파하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대단하진 않아도 아릿한 여운이 남는다. 이런 점이 바로 섬세함과 유머를 겸비한 김윤석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영화 ‘미성년’은 15세 관람가로 4월 1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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