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상' 메인 포스터(CGV아트하우스)

[데일리한국 부소정 객원 기자] 누구에게나 우상은 있다. 종교적인 숭배의 개념을 차치하더라도 험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서는 의지할 대상이나 신념 같은 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우상’은 세 명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각기 다른 우상을 촘촘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권력과 명예가 우상인 구명회(한석규 분), 하나뿐인 아들이 우상인 유중식(설경구 분), 생존 그 자체가 우상인 최련화(천우희 분)는 각자 나름의 방식을 동원해 자신들의 우상을 추구한다.

‘우상’이라는 주제가 주는 무게가 크고 추상적인만큼, 전체 이야기를 통으로 한 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세 인물들이 각기 바라는 우상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 흐름을 따라가면 어느 순간 한 지점에서 만나는 연결고리를 만날 수 있다.

영화 '우싱'스틸컷(CGV아트하우스 제공)

구명회는 정치가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중시 여기며, 청렴결백을 간판으로 내세워 도지사에 도전하는 입지적인 인물이다. 권력과 명예가 우선이다 보니, 뺑소니 사고를 내고 은폐하려던 가족들을 희생시키고 이를 전화위복 삼아 더 큰 권력을 쟁취하려고 한다. 권력을 탐하다 못해 아예 우상이 되길 꿈꾼다. “뭘 믿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믿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라는 의미심장한 대사처럼 그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스스로를 우상화시킨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으로 구명회와 팽팽하게 대립하는 유중식(설경구 분)은 자신이 뭘 믿어야 할지 뭘 믿고 싶은지도 잘 모르는 인물이다. 자신의 목숨처럼 아꼈던 장애아들 유부남이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자 절망에 빠지고, 사라진 며느리 최련화의 행방을 찾으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조선족인 최련화(천우희 분)는 추방당하지 않고 생존하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우상이란 걸 가져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모두 제거할 수밖에 없다.

세 인물이 염원했던 ‘우상’은 딱 한 지점에서 만난다. 최련화의 뱃속의 아이. 부남의 아이는 최련화에게는 최고의 방패이면서, 유중식에게는 죽은 아들의 분신이고, 구명회에게는 과거를 덮을 수 있는 호재다. 유중식은 더 이상 아들 죽음의 진실을 구하지 않고, 최련화와 아이를 위해 합의를 한다. 구명회는 최련화의 추방을 막아주는 대신 유중식을 자신의 선거홍보위원으로 이용한다.

최련화는 추방당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그토록 원하던 혼인서약서를 선물 받는다. 아이로 인해 이들의 우상은 일치된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 행복은 잠시, 또 다시 각기 다른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세 명 모두 자신의 뭔가를 희생하면서 억지로 끼워 맞춘 행복이기 때문이다.

최련화는 잘못된 과거의 잔재들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유중식을 떠난 그녀는 이미 복수의 화신이다. 가장 약한 희생양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해 버린다. 유중식은 우상이 허상이라는 걸 깨닫고, 우상의 상징인 이순신 장군 동상의 머리를 폭파시키면서, 우상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구명회는 과거를 덮으려던 잘못의 대가로 유중식의 동상 폭파와 최련화의 집의 가스폭발이라는 타격을 받는다.

영화 '우상'스틸컷 모음(CGV아트하우스 제공)

아무리 기를 써도 우상은 죽지 않는다. 시퍼렇게 살아, 또 다른 우상 숭배자들을 만들어간다. 구명회가 가스폭발에도 살아남아, 화상 입은 모습 그대로 사람들을 선도하면서 이 영화는 끝난다. 이제 그는 죽음 속에서 부활한 예수처럼 스스로를 불사의 우상으로 만들지 모를 일이다.

“개개인이 이루고 싶은 목적과 신념이 맹목적으로 바뀌는 순간을 우상이라 생각한다”는 이수진 감독의 말처럼 영화 ‘우상’은 모든 사람이 우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말해준다. 세 명의 우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감독은 표현하고자 했다.

'우상'캐릭터 포스터(CGV아트하우스)

강렬한 이야기만큼 세 명의 배우 모두 열연을 펼친다. 구명회로 분한 한석규는 국민배우답게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연스럽게 가면으로 위장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복잡한 심경을 담은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유중식 역의 설경구는 지천명 아이돌이란 별칭에 맞게 노란 머리로 염색하고, 절절한 부성애와 혈육에 대한 정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마는 인물을 열정적으로 연기한다. 천우희는 현실적으로 가장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가진 조선족 최련화에 완벽히 빙의된 연기를 선보였다. 생존을 위해 독기품은 그녀의 연기는 위협적일수록 빛을 발한다.

배우들의 활약 외에도 촬영, 세트, 음악도 긴장감과 몰입감을 느끼게 만든다. 수직적 구명회의 집과 수평적 중식의 집의 대조, 유리창이나 고인 물에 반사되는 형상의 굴절된 이미지, 구명회의 이중인격이 나올 때마다 배경으로 깔리는 거룩한 성가 등도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다.

이 작품에는 메타포가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 낙엽과 물이나 창문에 비친 모습 등은 인물들의 처지나 내면을 반영한다. 쉽게 밟히고 바스러지는 낙엽은 권력에 희생당한 부남의 상징과 동시에 힘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설경구, 천우희, 이수진 감독 베를린영화제 참여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우상’은 제 69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받아 화제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한공주’의 성공 이후 차기작으로 이룬 쾌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은 불친절한 구성과 잘 알아듣기 어려운 대사로 불편하다는 평들이 많다. 조각, 조각 흩어진 구성을 맞추고 귀를 세우고 시종일관 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호불호가 갈릴 우려조차 있다.

난해한 퍼즐을 맞춰가듯이 이토록 불친절해야만 했을까. 이수진 감독은 강요가 아니라 사유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가 끝난 후, ‘과연 이 영화 안에 있는 인물 중 나는 누구와 유사한가? 만약에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보다 흥미롭게 영화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영화 ‘우상’을 통해 관객들 스스로 자신의 삶 속에서 품어야할 또는 내쳐야할 우상과 허상을 진단해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미덕은 충분히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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