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용 ‘보갑제도’에서 유래…‘조사하다’ 의미


‘査= 木+且’ 베어진 나무 ‘떼’, ‘들추어내다’

‘察’의 ‘祭=蔡 생략형’, 집에서 내쫓고 샅샅이 살피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38노스’가 공개한 5월 6일 촬영된 북한 영변 핵단지 재처리시설 위성영상(연합)
2018년 10월말 미국은, 북한의 영변과 풍계리 핵시설을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검증하자면서 ‘동시 사찰(査察)’을 전격 제안했다. 이러한 내용은 미국 중간선거인 11월 6일 이후에 미국과 북한간의 고위급 회담 테이블에 오를 예정이다.

핵 사찰(nuclear inspection)은 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 중에 핵무기 개발 의혹이 있는 국가의 관련 시설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가 국제법에 따라 벌이는 사찰 활동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핵사찰(核査察)’이란 용어를 쓰지만, 그와 달리 중국에서는 ‘핵검사(核檢査)’ 또는 그것의 줄임형인 ‘핵사(核査)’라는 한자어를 쓴다.

사찰을 뜻하는 영어 inspection은 동사 inspect에 추상명사어미 -ion이 덧붙은 말이다. inspect는 in(안으로)과 ‘보다’를 뜻하는 라틴어 spicere의 과거분사형 spectum에서 비롯된 spect가 합쳐져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다”에서 ‘세밀히 조사하다, 사찰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그러니 inspection은 그동안 베일에 싸여 어두웠던 곳, 범죄사실 등에 관한 사정적 차원의 조사를 위해 내부로 접근하여 빛을 환히 비춰가며 샅샅이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사찰)이란 말은, 청나라 강희제 때(1694) 편찬된 <복혜전서(福惠全書)> 보갑(保甲) 공죄상벌 편의 다음 말에서 처음 보인다. “보정(保正)은 열 명의 갑장(甲長)을 거느리고 함께 하면서, 달아나는 도둑이나 악당들을 검사하는데… 만약 과실이 있으면, 사찰ㆍ체포가 안되면, 그 보정은 매 건마다 태형 30판으로써 엄중 문책한다(保正率同十甲長, 稽査逃盜奸 寇 …如有疎虞, 不行査察盤獲, 該保正每件重責三十板)”

위에서의 보정(保正)은 옛날 보갑제도의 보장(保長)과 동의어이다. 보장(保長)에 대해 청나라 때는 ‘보정’ 또는 ‘지보(地保)’, ‘지갑(地甲)’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니 사찰이란 말은, 안보 차원에서 주민들을 일정 단위로 묶어 치안 유지와 향병(鄕兵) 양성을 담당케 했던 옛날의 보갑제도에서 비롯된 안보 관련 용어이다.

참고로, 보갑 제도는 송나라 때부터 시작된 군사관리 성격의 호적관리 제도이다. 중국 봉건왕조 시대에 장기간 연속된 일종의 사회통치 수단이었던 보갑제도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집(戶)’을 사회조직의 기본단위로 삼는 것이었다. 보갑의 편성은 가호(家戶: 집)를 단위로 하며 ‘호장(戶長: 호의 우두머리)’을 두었다. 나아가 열 집(10호)을 묶어서 1갑이라 칭하고 갑장(甲長: 갑의 우두머리)을 두었으며, 10개의 갑으로 1보를 만들어 보장(保長)을 두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보갑제의 전통이 남아 있어 ‘갑장’이란 말을 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용(1762~1836)이 쓴 <목민심서(牧民心書)> 호전(戶典) 편에는, 옛 법에 따라 다섯 집으로 통(統)을 조직하고 열 집으로 패(牌)를 조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각 甲의 우두머리인 갑장(甲長)과 동의어로 갑수(甲首)라는 말을 썼다. 공동운명체인 그 열 집은 만약 의심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는 즉시 관가에 보고해야만 했다. 혹시라도 숨겼다가 일이 발각될 경우 해당되는 열 집은 같은 죄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북한의 상호감시 시스템인 ‘오호담당제(五戶擔當制)’ 또한 보갑제도와 조선시대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의 응용이다.

이처럼 집을 특징으로 하는 보갑제도에서 비롯된 용어인 ‘査察(사찰)’의 ‘察(찰)’자에도 집을 나타내는 글자가 들어 있으니 흥미롭다.

‘察(찰)’은 윗부분의 ‘집 면’자와 아래쪽의 ‘祭(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의 ‘祭’는 ‘제사’를 나타내는 글자가 아니라 ‘蔡(채)’의 생략형으로 쓰였다. 위쪽에 ‘풀 초’자를 쓰는 ‘蔡’는 그 음이 ‘채’ 외에도 ‘살’이라는 음이 또 있다. 그 경우엔 ‘추방하다=내쫓다, 줄이다’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察(찰)’은 법원으로부터 가택 수색영장 발부받은 검경 요인들처럼, 범죄자나 범죄의 증거 등을 찾아내기 위해 해당 집안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내쫓고(蔡→祭) 집안을 발칵 뒤집어 샅샅이 살피는 모습에서 ‘살피다→조사하다’를 뜻한다.

‘査(사)’는 木(나무 목)과 且(또 차)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자인 ‘且(차)’를 통해 알 수 있듯 그 본래 음은 ‘차’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로 변음되었다. 査(사)는 여러 개의 나무나 대나무들을 또또또(且) 겹쳐 엮어 만든 ‘떼’ 또는 ‘뗏목’을 나타낸다. 기묘하게도 且(차)라는 글자 모양이 마치 뗏목처럼 생겨 기억하기에도 쉽다. 그런데 문제는 査察(사찰)이란 말에서의 査가 ‘떼’가 아닌 ‘조사하다’의 뜻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떼(raft)는 일정 크기의 나무토막들을 엮어서 물에 띄워서 타고 다니는 운반 수단이다. 본래 나무는 땅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하는 것이 정석이자 자연법칙이다. 그런데, 지면(地面)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뗏목이 되어 수면(水面) 위에 둥둥 떠있다는 것은 그 나무가 베였거나 뽑혀 은폐 없이 적나라하게 완전히 밖으로 들추어내진 상황이다. 이러한 연유로 ‘査(사)’는 ‘떼’에서 나아가 ‘들추어내다=조사하다’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들추어내다(査)’는 속을 파헤쳐 모조리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것이다. 이는 앞서 설명한, 온 집안을 이 잡듯이 뒤지고 살피는 모양을 표현한 ‘察(살필 찰)’자와 상통한다. “압수수색 영장을 가지고 나왔으니 문을 열라”며 형사들이 들어와 온 집안을 이 잡듯이 뒤지는 것처럼, 공식적인 법적 권한을 가지고 국제원자력기구 또는 책임 있는 국가들의 요원들이 북한에 들어가 핵관련 제반 사항들을 샅샅이 살피는 것이 바로 핵사찰이다.

우리 정부 당국자의 말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이 수긍할만한 여러 상응 조치를 준비한 것으로 안다고 하였는데 과연 북한이 핵에 대해 속을 완전히 뒤집는 사찰에 순순히 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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