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 재발견’기획특별전, 9월20~12월25일, 국립한글박물관

(왼쪽)1866년 중국 상하이에서 리델주교와 천주교신자들<사진=한국교회사연구소제공> 한불자전(韓佛字典) 1880년 26.7×18.5㎝
“사전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민족문화의 보물창고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전에 실린 어휘에는 우리의 생활, 문화, 역사 이런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권재일 한글학회장, 전시영상 中>

한글은 1894년(고종31년) 조선의 공식문자가 된다. 한글의 효과적인 사용을 위해서 표기의 공통된 기준으로 사회적 약속인 어문규범의 수립과 우리말 사전이 필요하였다. 이와 함께 19세기 말, 외국인선교사들이 한국어학습을 위해 발간한 다양한 이중어사전(二重語辭典)은 우리말사전발간의 자극제가 되었다.

(왼쪽)주시경<사진=한글학회제공> 말모이 원고(1910년대)
서울 용산구 이촌역과 연결된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옆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으로 가는 길엔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하는 가족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띄었다. 그간 ‘사전’ 주제학술연구와 발표는 열려 왔지만 ‘사전의 재발견’전시는 최초로 우리말 사전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9월20일 오픈하여 12월25일까지 한글학회 등 13개 기관, 총122건 211점을 3층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사전의 역사적 의의, 우리말 사전에 담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1~2부로 구성, 관람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조선어학회 사전편찬모습 <사진=한글학회제공>
총122건 211점 전시

▷한불자전(韓佛字典) 필사본 최초공개=프랑스 낭트에서 출생한 한국선교단 리델(Felix Clair Ridel) 주교가 188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판한 한불자전(Dictionnaire Coreen-rancais)의 원형인 한불자전 필사본(1878년,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이 최초로 공개되고 있다. 최초의 한불사전이자 한국어 대역사전(對譯辭典)의 효시로 평가되는 귀중한 자료다.

▷노한사전(露韓辭典, 1845~1889)=연해주지방관리 푸칠로가 연해주로 이민해 온 한국인과 의사소통을 위해 만든 함경도 방언을 대상으로 편찬한 러시아어-한국어사전이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1929~1942년) 한글학회 소장
▷말모이=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뿌리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 등이 1911년부터 집필한 최초의 우리말사전 원고다. 그의 제자 김두봉, 권덕규 등을 중심으로 말과 글을 닦아 국권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사전편찬에 매진하였다. 말을 모아 만든 것이어서 ‘말모이’라고 하였는데 애국계몽단체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와 조선어사전편찬회사업으로 이어져 우리말사전의 기틀이 되었다. 올림말 ‘ㄱ’부터 ‘걀죽’까지의 원고만 남아 있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조선어학회(이후 한글학회)에서 1929부터 13년 동안 작성한 원고의 최종 수정본인 ‘조선말 큰사전 원고’가 소개되고 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의 증거물로 일제에 압수되었다가 광복직후 경성역 조선통운창고에서 발견되었다. 2만6500여 장 분량의 원고인데 이를 바탕으로 ‘조선말 큰사전’ 권1(1947), 권2(1949)를 간행하고 1957년 총6권의 우리말 대사전인 ‘큰사전’ 편찬의 기틀이 되었다.

김민지(金敏智) 국립한글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한편 전시준비를 위해 현장에서 땀을 흘린 김민지 학예연구사는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사전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해 왔다. 또 귀한 자료를 기꺼이 대여해 주신 기관관계자, 소장가분들의 도움에 감사하다. 전시를 통해 사전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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