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은 나를 재발견하는 시간, 끌이 물감을 파내는 소리는 나의 숨소리

한영준(HAN YOUNG JOON)작가가 인터뷰 도중 겹겹의 물감이 굳어진 캔버스위에 날카로운 끌로 작업을 시작할 때와 응고된 물감을 파고들어갈 때의 느낌을 손동작으로 보여주고 있다.<사진=권동철 기자'

[데일리한국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지난 4월말 한국을 방문한 재독 한영준 작가를 인사동 조용한 찻집에서 만났다. 2015~16년에 발표한 한지작업 ‘구겨짐-phenomenal’ 연작과 이번 ‘끌 말러라이(Kkeul Malerei)’기법에 대해 들어 보았다. 한 작가는 1994년 독일로 건너가 빌덴덴 퀸스테 아카데미(Akademie der bildenden Kunste)를 졸업(회화전공)했으며, 현재 쾰른시 외곽 조용한 전원마을에서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구겨짐-phenomenal, 92×64㎝, 한지위에 아크릴, 2016

한지작업에서 느꼈던 경험과 감정은 어땠는지‥.

"한지와의 작업들로 인해 나 자신이 많이 성숙된 느낌이 들었다. 수없이 많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며 계속해서 작업을 했다.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잠재적인 숙고라고 할까. 한지 재질의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나에겐 감동으로 남아 있다. 한지의 구겨짐에서의 작업은 자연의 본능이 깨어나는 또 다른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한지에서 오랫동안 독일에서 지내온 나에게 흐르고 있는 한국인의 정서와 묘한 감정들을 엿볼 수 있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혈맥 속에 전혀 무시할 수 없는 나만의 존재를 일깨워 주는 듯 했다.”

구겨짐-phenomenal, 64×92㎝, 2016(each)

독일로 유학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며 그것이 건네준 가치는 무엇인가?

“미래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던 같다. 독일로의 유학은 나에게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 방황과 고뇌와 싸우는 시간들이었지만 결코 낭비적이지 않았다. 많은 가르침과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주었다. 독일의 세계적 미술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고향인 뉘른베르크에서의 학부유학생활은 뒤돌아보면 나에게 주어진 큰 자유의 배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림을 그려야하겠다는 자신감과 욕망은 어디서 시작 되었는지?

“무언가 알지 못한 끈이 나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에겐 아마도 오래전부터 결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마냥 미술시간이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과 장래 희망에 고흐나 고갱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그리고 고등학교시절 미술선생님이 나에게 미술부로 올 것을 권했던 것이 어쩌면 꼭 운명같이 다가온다.”

(왼쪽)꽃의 아우성, 100×140㎝ oil on canvas, 2017 (오른쪽)40×50㎝ Acrylic on Canvas, 2018

한지작업인 ‘구겨짐-phenomenal’연작과 이번 ‘꽃의 아우성’시리즈를 작업한 한국어 ‘끌’과 독일어 ‘회화’를 결합한 ‘끌 말러라이(Kkeul Malerei)’의 독창적기법과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한지의 구겨짐이 자연적인 본능이었다면, 끌 말러라이는 내면에 갇혀있던 나의 본능이라고 생각된다. 매번 끌로 캔버스 위의 물감들을 파고 있으면 한 층 더 나를 억제하고 감정을 하나하나 재발견하는 시간이 된다. 끌이 물감을 파내는 소리는 마치 나의 숨소리처럼 캔버스 위를 스쳐 지나간다.”

꽃의 아우성, 100×120㎝ oil on canvas, 2017

향후 한국에서의 활동계획이 있는가?

“이번 한국에서 처음 작업을 했는데 실로 24년만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조국에서 그림 작업을 하게 된 것이 감개무량하다. 앞으로 한국에서 작품을 발표할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름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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