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속의 여성 이주' 학술회의

중국 산둥성에 있는 현비 권씨의 무덤. [임상훈 교수 제공, 바이두 캡처]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공녀'(貢女)라는 전근대적인 제도가 있었다. 공녀는 황제에게 바치는 여성을 뜻했다.

1392년 건국한 조선은 초기에 명나라의 요청으로 공녀를 보냈다. 공식적으로 영락제와 선덕제 치하에 7차례에 걸쳐 114명이 국경을 넘어 명나라로 향했다.

임상훈 순천향대 교수는 한국여성사학회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함께 17∼18일 서울대에서 '동아시아 역사 속의 여성 이주와 문화'를 주제로 여는 국제학술회의에서 조선의 공녀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한다.

10일 배포된 발제문에 따르면 명으로 건너간 공녀는 후궁이 되거나 황제의 유희를 위해 가무나 음식 조리 같은 일을 맡았다.

임 교수는 "조선의 공녀 가운데 황제나 황족의 후궁이 된 사람은 16명이었다"며 "권현비(權賢妃)는 영락제의 큰 사랑을 받아 명나라 역사서인 명사(明史)에 조선 공녀 중 유일하게 기록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조선 출신 공녀 중에는 음식을 하는 집찬녀(執饌女)가 4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은 술을 담그거나 젓갈, 두부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임 교수는 "여성의 왕래를 엄격하게 제한했던 시대에 114명이라는 수는 적지 않다"며 "공녀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명궁에 끌려가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녀 중 소수는 외교관계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순장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면서 "더 많은 사료를 찾아 공녀의 삶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여성 이주를 조명하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공개된다.

권순형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은 원나라 세조의 딸로 고려 충렬왕과 결혼한 제국대장공주의 삶을 소개하고, 노무라 이쿠요(野村育世) 일본 종합여성사학회 이사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여성 도공(陶工)에 관해 설명한다.

또 일본과 중국에서 살아가는 동포 2세 여성의 정체성, 1945∼1951년에 조선인 남성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를 향한 모순적 태도 등에 관한 발표도 진행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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