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확장 한지재발견‘구겨짐-phenomenal’ 시리즈 작품세계

마산 바닷가 풍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서양화가 한영준(HAN YOUNG JOON).한영준 작가는“마산 오동동과 창동의 부산함에 떠밀려 발걸음을 옮기노라면 어시장의 시끌벅적함과 각종 생선들의 비릿함에도 마산 앞바다는 어쩐지 나에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동경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데일리한국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독일 쾰른에서 한국으로 와 어머니가 계시는 마산으로 오면 항상 자연스럽게 어시장을 지나 바닷가로 향한다. 파도소리를 배경삼아 하늘과 바다를 보고 있으면 지난날들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온다. 한동안 파도에 마음을 내려놓고 넓은 수평선을 배경삼아 추억 속을 거닐어 본다. 잠재적 본능이란 무의식 속에 어떻든 밖으로 나오는가 보다. 그림속의 물결과 저 멀리 동경의 수평선처럼.” 최근 잠시 귀국한 재독(在獨) 서양화가 한영준 작가를 서울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오랜만에 고향 마산을 찾아 귀국길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쾰른과 마산의 파도와 수평선을 떠올리며 무의식 세계의 동경에 관해 얘기를 쏟아내는 한영준 작가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감지된다.

(좌)구겨짐-phenomenal, 64×92㎝ 한지에 연필, 크레용과 아크릴, 2016 (우)64×92㎝ 한지에 연필과 아크릴

화면은 붉게 타오르는 열정과 마음속 깊이 존재하는 마구 용솟음치는 욕망에 대한 사색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검푸른 아주 대조적인 현실에 대한 차가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 모든 걸 중화시키는 듯 한지 바탕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는 사과가 시선을 끈다.

가냘픈 한지 위 겹겹이 더 해지는 아크릴 물감은 어느새 한지의 느낌을 오묘하게 변화시키는듯 하다. 아주 대조적인 색감에 오히려 처절하리만큼 고요함이 출렁이고 있다. 팽팽해진 밧줄처럼 긴장감을 높여나가듯 파란 바다와 빨간 하늘은 서로를 견제하는 것 처럼 마주 대하는 느낌이다.

작가는“하늘은 회색같이 불투명한 미래죠. 새빨간 사과에 대한 동경을 안고 검푸른 두려움을 피해 가며 망망대해를 서로 의지하듯 함께 날고 있는 가냘픈 두마리의 하얀 나비. 힘든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서 덜 외롭고 힘이 되는 것이겠죠”라고 표현했다.

92×64㎝, 한지에 연필, 목탄, 먹물과 유화, 2016

그의 작업은 한지 앞면 뿐 아니라 뒷면을 통해서도 밖으로 드러난다. 그는 그림의 깊이를 더욱 우려내기 위해 독창성으로 캔버스에 옷을 입힌다. 마치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과 갈망 그 무언가를 토해내듯 바로 한지 뒷면에 먹(墨)이 뿌려진다. 먹물의 농담(濃淡)을 살리면서 거침없이 흩뿌려지는 모습은 새로운 자아의 신세계에 대한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한 작가는 “극히 한국적 재료인 한지에 유화의 하얀 사과와 어울림은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면서 "먹물과 한지 그리고 유화의 만남은 또 다른 차원에 대한 갈증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먹물의 번짐과 삐쳐 나오는 유화성분은 나를 환호하게 만들었으며, 묻어 두고 지우고도 싶지만 쉽게 되지 않는 뒷면은 지난날의 상처같이 모든 것이 투명하게 앞면으로 생생하게 수면위로 떠오르듯 나타났다"며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듯 떼어 놓을 수 없는 숙명인 것처럼”이라고 속내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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