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전 한국일보 부국장,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 출간

'청렴·결단 리더십 vs 핵폭탄 투하'…트루먼을 향한 엇갈린 역사적 재평가

"진실이란 원칙으로 마이너리티를 극복한 대통령…소통을 실천한 지도자"

[데일리한국 김소희 기자] '대통령은 호랑이 등에 탄 사람과 같다. 계속 타고 가거나, 떨어져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거나 둘 중 하나이다.' 한국전쟁 전후에 미국 대통령을 지낸 해리 트루먼(1884~1972)은 두 권으로 된 회고록 하권 첫 페이지를 이같은 글로 시작한다.

트루먼 전 대통령의 이같은 명언은 3김씨 중 한 사람인 김종필 전 총리에 의해 우리나라에 잘 소개됐다. 김 전 총리는 5.16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유를 떠났을 때 미국 미주리주에 있는 트루먼기념도서관에서 트루먼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JP가 교훈을 들려달라고 하자 트루먼은 "국민을 호랑이로 알라, 맹수로 알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JP는 1995년 자민련 창당 이후에 출입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권자인 국민이 무섭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트루먼 얘기를 종종 들려줬다. JP는 "내가 국민를 위해서 이렇게 했으니 날 알아주겠지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건 미련한 거다. 국민이 호랑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트루먼은 아무리 잘해줘도 비위 거슬리면 사육사를 물어 죽이는 호랑이처럼 국민도 대통령과 정치인을 쫓아낸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에서 사회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낸 정숭호 신문윤리위 전문위원이 최근 펴낸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인간사랑)에는 대통령 리더십과 관련된 내용들이 실려 있다. 정 위원은 트루먼에 대해 "마이너리티로는 노무현 이상, 원칙주의로는 박근혜 이상이었으나 소통에서는 두 사람 모두를 뛰어넘은 지도자"라고 높게 평가했다. 이는 저자가 강조한 트루먼의 '소통 리더십'이 훗날 미국인으로부터 역사적 재평가를 받도록 한 원동력이 됐다는 의미다.

변방 출신에 고졸 학력을 가진 전업 농부, 거기에 남성용품점 운영 실패의 경력을 갖고 대통령이 돼서 임기 말 지지도가 23%까지 추락한 사람이 있다. 또 2000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미국의 저명한 학자 132명에게 의뢰한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조사에서 8위를 차지한 인물이 있다. 주목할 것은 이 두 사례 모두 같은 인물의 이력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두 얼굴을 지닌 미국의 33대 대통령 트루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지도자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적을 이뤄낸 인물이다. 그는 동시에 핵폭탄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는 상반된 평가를 함께 받고 있다.

트루먼은 한국전쟁이라는 고리로 우리나라와 연결된 인물이다.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많은 60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트루먼을 북진을 고집한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경질한, 그리고 남북통일을 방해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언론과 논객들의 주장을 통해 미국의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이야말로 진정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아준 인물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이것은 트루먼의 첫 번째 역사적 재평가다.

트루먼은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그리고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결코 녹록지 않은 길을 걸었다. 미주리라는 미국의 정치적 변방 지역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농장을 하던 아버지의 실패와 본인의 사업 실패 등으로 인한 경제적 한계는 트루먼의 발목을 잡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민주당 정치 거물인 톰 팬더개스트(Tom Pendergast)의 후원을 통해 정치권에 데뷔해 부정부패를 일삼은 팬더개스트의 심부름꾼이라는 오명까지 감내해야 했다. 이런 정치적 한계가 루즈벨트 대통령의 런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했을 때도 작용했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서 무시를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트루먼의 이러한 한계는 청렴한 정치의 밑거름이 될 수 있었고, 훗날 두 번째 재평가를 가능케 했다. 당시 팬더개스트의 조직 대부분이 비리로 수사를 받았지만, 트루먼은 수사선상에서 제외될 정도로 오직 자신이 맡은 일만을 감당했다. 트루먼은 팬더개스트의 후원을 받았지만 그룹 내의 핵심 인물이 되지 못했으며, 팬더개스트 역시 그를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게 오히려 빛을 발한 것이다. 그의 성실함과 정직함이 대선 런닝메이트 지명을 가능하게 했고, 루즈벨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얼떨결에 대통령직을 물려 받게 되는 결과까지 만들게 됐다.

트루먼은 냉전기 시작과 함께한 미국 대통령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원자폭탄 일본 투하, 이스라엘 국가 인정, 그리스와 터키의 지원 등을 통한 소련의 팽창 저지, 이스라엘 국가 공인, 한국전 참전, 맥아더 경질 등과 같은 시대의 굵직한 상황 등을 결정해야 했다. 그는 결코 인기 대통령은 아니었다. 부담스러운 사안이든 아니든 모든 것을 직접 책임지려 했던 결과다.

트루먼은 회고록에서 "원자폭탄의 투하 목표와 투하 시기 결정은 나의 임무였다.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원자폭탄을 하나의 무기로 생각했으며, 이것을 사용함에 있어 어떤 의문도 갖지 않았다"고 썼다. 전쟁을 조기 종식해 25만 명의 미군 목숨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트루먼은 자신을 향한 비난의 근거가 됐던 모든 것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려 하지 않았다.

저자는 진실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섬김과 배려', '정직과 청렴', '용기와 결단'의 리더십을 보여준 트루먼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대통령이 나오길 희구하는 마음을 이 책에 녹아냈다. 요즘 정쟁에만 매몰된 우리나라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을 호랑이처럼 여기면서 소통을 중시했던 트루먼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트루먼은 "결정했으면 뒷일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은 언제나 인기를 끌 수 없다", "언론이 날 때리는 걸 중단할 때는 내가 뭔가 틀린 짓을 하고 있을 때다" 등과 같은 주옥같은 어록을 남겼다. 정치인으로 살 때는 과감했고, 은퇴 후에는 품위 있고 소탈하게 삶을 영위했던 그를 향한 미국인의 역사적 재평가는 현재 진행형이다.

■ 저자 정숭호 전문위원 프로필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사에 입사해 24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사회·경제부장, 부국장, 심의실장 등을 지냈다. 뉴시스 논설고문으로 재직 중에는 '억지로라도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정숭호의 ‘억지사지’를 집필했다. 지금은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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