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상은 신뢰 잃지 않으려, 구매자는 작품 되팔기 위해 위작 사실 감춰
명확한 감정은 불가능…작품 이력과 출처 명확히 밝혀야

고(故) 천경자 화백의 추도식이 열린 10월 30일 서울시립미술관에 마련된 상설전시실에서 추도객들이 천 화백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황혜진 기자

[데일리한국 황혜진 기자] 잘 팔리는 제품은 ‘짝퉁’이 필연적으로 만들어진다. 수요가 많고 가격이 높기 때문에 위작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또 그것이 발각돼 이슈로 떠오른다. 한편으로는 작가의 이름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위작 스캔들은 결국 작가의 명성에 해를 끼치고 미술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고가에 거래된 작품이 위작으로 판명됐을 경우 그에 따른 작품의 가격은 당연히 곤두박질친다. 작품의 가치는 작가의 명성에 비례하기 때문에 무명작가가 그린 위작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가격이 폭락한다. 위작인지 모르고 구입한 사람만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이다.


위작의 가격…진위가 가려져도 쉬쉬하는 이유

위작 제작을 의뢰받아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은 작품 한 점당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 가량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그렸다고 주장하는 권춘식(68) 씨의 경우 40만~50만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고 또 다른 위작 작가는 작품 당 200만원을 받고 위작을 그려왔다고 말한 고백한 바 있다.

이는 가난한 무명작가에게는 큰돈일 수 있지만 작품이 거래되는 가격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액수이기도 하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2005~2014년 사이 이우환의 작품이 낙찰 총액 711억 원으로 1위를 차지했는데 작품 평균 가격은 약 1억 2,500만 원이었다. 이우환 작가 역시 위작 유통설에 휘말려 명예에 상처를 입었다. 또 천 화백의 작품은 작년에만 약 9억 9,075만 원 어치가 팔렸는데 평균 호당 가격이 8,250만 원이었다.

미술품이 위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쉬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술품 경매 전문가 김 모 씨는 “비싼 가격의 작품에 위작 의혹이 일었을 경우 그 작품을 판매한 딜러는 물론이고 감정 기관, 작품을 구매한 컬렉터조차 위작인 줄 알면서도 그 사실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며 “딜러나 화랑은 자신들의 전문성과 신뢰도에 타격을 입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위작을 유통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모 씨는 “화랑들 대부분이 매출신고를 하지 않아 작품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고 그림 거래는 구두 계약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위작이 되팔림을 거듭하며 계속해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랑이 밀집해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 사진=황혜진 기자

위작, 전문가도 감쪽같이 속여…진위 감정 더 어려운 현대미술

위작임을 알고도 숨기는 행태도 문제지만 진위 감정의 전문성이 떨어져 신뢰를 잃고 있는 것도 문제다. 위작이 미술 문외한뿐만 아니라 전문가들까지 감쪽같이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뚫고 유통에 성공한 위작들은 미술 시장을 교란시키고 미술계의 침체를 가져온다.

미술품 진위는 안료 분석 등의 과학 감정과 전문가 안목 감정, 출처 분석과 작가 의견 등을 통해 감정된다. 하지만 감정에는 오류가 생기게 마련이고 명쾌하고 확실한 결과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작도 많다. 일각에서는 작품의 출처와 이력을 명확하게 밝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작가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화랑협회에는 '생존 작가이고 정신 상태에 문제가 없는 작가라면 작가의 의견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내부 규정이 있다. 하지만 천경자 화백의 경우처럼 작가가 자신이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진품으로 판명되고, 이우환 화백처럼 작가가 진품이라는데도 위작으로 판명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진위 감정의 어려움은 일반 대중에게는 난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단순하기도 한 현대미술에서 더 두드러진다”며 “고서화나 동양화는 위작이 어렵지만 현대미술은 작품을 처음 만들 때 개념과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게 어렵지 똑같이 따라 그리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감정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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