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 안현수 목사의 <율보 이야기>
중증장애자 미즈노 겐조·박승일, 눈 깜박여서 표현

안현수 목사의 '율보 이야기'
[데일리한국 동효정 기자] 눈을 깜박여서 시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한마디 말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안현수 수지광성교회 담임목사는 아픔과 고난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책 <율보 이야기>(쿰람출판사)를 최근 펴냈다.

"오래 전에 읽은 시 중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시가 있다. 일본의 미즈노 겐조라는 중증 장애를 지닌 기독교인이 쓴 시인데, 읽으면서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그는 이웃에 있는 교회 목사님의 전도로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신앙적인 고백을 시에 담아 주옥같은 시집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글자에 손을 대면 눈을 깜박이는 것으로 표현해 시를 완성하였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박승일이라는 젊은이가 그와 비슷한 처지에서 책을 냈다. 그는 루게릭병에 걸려 오랜 세월을 고통 중에 누워 있는 젊은이다. 그는 1990년대 대학농구 황금기를 주도했던 연세대 농구팀에서 활약한, 혈기왕성한 선수였다. 현역 시절 2미터의 큰 키와 건강한 몸으로 코트 위를 호령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자기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눈동자밖에 없다. ...중략...건강했던 그가 하루아침에 농구 코치직을 사퇴해야 했고, 더 가슴 아픈 것은 인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마저 떠나보낸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지만 그에게 포기나 절망이란 단어가 없다. 현재 그는 유일한 수단인 눈꺼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그가 글자판을 보고 겨우겨우 눈꺼풀을 움직이면 곁에 있는 가족이 이를 받아 적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눈꺼풀을 움직여 쓴 글을 통해 루게릭병 전문요양소 건립 기금을 마련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눈꺼풀로 쓴 <눈으로 희망을 쓰다>라는 책에서 "눈동자를 굴릴 수 있는 힘만이라도 남겨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위대한 감사의 고백이다."

안 목사는 두 사람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고난 중에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드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교정위원으로서 '교정 선교'도 맡고 있는 안 목사는 서울구치소를 정기적으로 찾아 사형수 등을 만나 위로한 내용들도 꼼꼼히 전했다. 그는 여성 수감자들을 위한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구치소로 갔다가 구속된 제자를 만난 일화도 소개했다. 안 목사는 1990년대 초반에 고교 교목을 지낸 적이 있다. 그날 집회 장소에서 청소를 하던 여자 수감자는 안 목사에게 다가와 "목사님! 저는 여고 3년 때 목사님께 배운 이수영(가명)입니다. 제가 목사님이 해주신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입니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안 목사는 무슨 일로 구치소로 오게 됐는지 묻지 않고 "그래, 먼저 인사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의자에 같이 앉아 그녀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기도하는 동안에 그 제자는 계속 흐느꼈다.

안 목사는 서문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광나루 강가에서 빠져 죽을 뻔 했던 일과 교통사고로 숨질 뻔한 일들을 소개하면서 "누구에게나 크고작은 시련이 있다"면서 시련 극복의 의미를 전했다. 안 목사는 이어 "율보는 내가 공연했던 연극의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이라며 "약간 바보스럽지만, 그래서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고 이용을 당하지만 이 시대를 살면서 정말 보고 싶은 그리운 친구"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율보 연기에 몰입한 탓에 연극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율보처럼 말을 더듬었던 추억도 더듬었다.

안 목사와 가깝게 지냈던 정대철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홍준표 경남지사, 가수 최성수씨 등은 추천의 글을 썼다. 정 고문은 추천의 글을 통해 "어느날 교정 선교를 위해 서울구치소로 오셨다가 나를 면회하고 기도해 주셨는데, 그때 많은 은혜와 위로를 경험했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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