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장서희 변호사] 프랑스 여배우 오드리 토투라고 하면 ‘아멜리에’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로맨스 영화에 강한 오드리 토투가 역시나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히 러브스 미’라는 영화가 있다.

그러나 그녀의 상큼한 포스터에 끌려 로맨틱한 전개를 상상했던 관객들은 영화 중반에 이르러 큰 배신에 부딪히고 만다. 유부남 의사 루이와의 연애가 잘 풀리지 않아 힘들어 하는 줄 알았던 오드리 토트가 알고 보니 혼자 망상에 빠진 나머지 루이를 일방적으로 스토킹하던 스토커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렇게 비련의 여주인공 시점과 스토킹 피해자의 시점으로 나누어 전개되며 반전의 묘미와 서늘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오드리 토투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그녀 특유의 상큼발랄함 조차 스토킹이 주는 섬뜩함을 끝내 상쇄하지는 못했던 기억이다.

스토킹이라는 행위가 법률상 명확히 범죄행위로 규정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스토킹 처벌법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직장·학교 그 밖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전화·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말·그림·부호·영상·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등의 행위를 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스토킹 관련 법안은 최초 발의된 지 무려 22년이 흐르도록 입법되지 못하고 있다가 2021년 3월 24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서야 스토킹 범죄를 과태료 대상이 아닌 형사 범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토킹 처벌법은 2021년 9월에 이르러서야 시행된다. 이러한 뒤늦은 입법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최근 스토킹 범죄자가 피해자 여성의 일가족을 무참히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만일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 중에 있었다면, 범죄자가 살인 전에 저지르던 스토킹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범죄 행위로 규율되었을 것이며, 긴급 조치가 가능했을 것이다.

스토킹 행위 신고를 통해 현장의 응급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고 필요에 따라 100m 이내 접근금지나 통신매체 이용 접근금지 등 긴급 조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토킹 범죄가 재발할 우려가 있는 경우 검사는 스토킹 행위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유치하는 잠정 조치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가 스토킹 근절에 충분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목격한 참극을 방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뼈아픈 아쉬움이 든다.

현재의 스토킹 처벌법은 내용상으로도 여러 한계를 드러낸다. 스토킹 범죄를 여전히 개인 간의 애정 문제로 치부하는 시각 탓인지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아니한다는 의사 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그러하다. 이런 경우 범죄자 측에서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2차 가해가 벌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피해자 보호에 관한 내용을 분리해 피해자 보호법을 따로 제정하기로 했기 때문에 피해자 보호의 실효적 내용이 부재하다는 점도 문제이다. 잠정적이라고는 하나 입법의 부재 속에 피해자 보호를 방기하는 동안 또 어떠한 끔찍한 스토킹 범죄가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스토킹 범죄나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같은 명백한 범죄 행위를 그저 사인들의 애정 문제나 집안 문제로 치부하고 눈 감아버리는 반인권적인 의식을 하루 빨리 바로잡는 것이 폭력의 피해자 양산을 막는 첫 걸음일 것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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