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판덱스 원사. 사진=효성그룹
[편집자주]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며 해외에서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기업을 많이 가진 나라는 대체로 잘 사는 편이다. 선진국은 오랜 전통의 기업들과 새로운 시장에서 성과를 낸 기업들이 명맥을 이어가며 경제성장과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세계시장에서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내 대표기업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비전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매출액이 많은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올해 창립 55주년을 맞은 효성그룹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그룹 내 수뇌부의 입지를 한결 강화했다. 아버지 조석래 명예회장의 뒤를 이은 장남 조현준 회장이 오는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그룹(기업집단) 동일인(총수)에 드디어 이름을 올린다. 2017년 회장으로 취임한지 4년 만으로,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공식 총수’가 되는 셈이다. 지난 2월에는 3남인 조현상 총괄사장 역시 4년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17년 경영권을 내려놓은 조 명예회장이 진정한 의미의 퇴진을 하고, ‘회장 조현준·부회장 조현상’으로 대표되는 효성의 3세 경영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조현준 회장이 사업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 3대에 걸친 기술경영과 도전정신

효성(曉星)은 사명에 삼성(三星)과 같은 별 성(星)자를 쓰지만, 앞 글자는 달리한다. 창업주인 조홍제 전 회장이 이병철 전 삼성 회장과의 14년에 걸친 동업을 청산하고 효성을 만들며 기업 간 동질감과 차별성을 동시에 뒀기 때문이다.

효성은 조 전 회장이 1966년 창업한 동양나이론 당시부터 모태산업인 섬유를 기반으로 55년째 한 우물을 파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 효성이 현재 재계 순위 20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섬유산업으로 한국 수출을 견인해온 조홍제·조석래·조현준 회장의 3대에 걸친 기술 경영과 도전 정신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조 전 회장과 조 명예회장은 ‘독자적인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강조하며 업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기술력의 기반을 다지도록 당부했다. 조 전 회장이 1971년 국내 최초로 민간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배경이다. 이를 조 명예회장이 그대로 이어받아 1983년 전자연구소와 1986년 강선연구소를 추가로 만들었다. 조 전 회장과 조 명예회장의 기술력에 대한 집착은 효성이 1992년 세계 4번째이자,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스판덱스의 독자 개발에 성공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

선대 회장들이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성과를 내자 조현준 회장은 시선을 해외로 돌렸다.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무대에서 기술력과 사업성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 회장은 1997년 부장으로 입사한 이후 2007년 사장을 달기 전까지 10년간 효성의 중국과 베트남 진출을 진두지휘하며, 주력 사업인 스판덱스 부문이 2010년 세계 시장 점유율 23%로 1위를 차지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조 명예회장이 세 아들 가운데 조 회장을 일찌감치 후계자로 점찍은 이유가 거침없는 사업적 기질에 있다는 점은 재계에 익히 알려져 있다. 부친의 기대에 부응한 조 회장은 사장에 취임한 지 10년 만에 회장직에 올랐다.

조현준 회장이 2018년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인터텍스타일전시회에서 제품을 살피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 ‘1조 클럽’ 다시 노린다

효성은 올해 영업이익 1조 클럽 재도전에 나선다. 지주사 체제 전환 첫 해인 2019년 1조102억 원을 달성한 이후 3년 만에 다시 1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연신 벼르고 있다.

효성은 조 회장 체제 출범 직전인 2016년 영업이익 1조163억 원을 달성하며 사상 첫 연간 영업이익 1조원 시대를 활짝 열었지만, 이후 2019년을 제외하곤 아쉬운 실적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지주사 체제 전환을 마무리하면서 재무구조가 탄탄하게 개선된 만큼, 올해 반등을 기대할 만하다.

효성의 실적을 끌어올릴 만한 호재는 역시 자사 톱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은 의류소재 스판덱스가 될 전망이다. 스판덱스를 주력으로 하는 효성티앤씨는 지난해 매출액 5조1616억 원, 영업이익 2666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각각 13%, 17% 감소했지만 코로나19 덕을 보면서 하반기로 갈수록 실적이 좋아졌다.

실내에서 운동하는 ‘홈트족’이 늘면서 의류 수요가 회복되며 스판덱스의 수익성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효성티앤씨는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4분기에만 한 해 영업이익의 절반가량인 1301억 원을 달성하며 실적을 선방했다.

스판덱스의 호조는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수급이 타이트한 가운데, 요가복과 레깅스의 수요가 견조하게 이어지는 등 구조적으로 성장세”라면서 “계획된 신·증설이 대부분 연말에 집중돼 있어 최소한 연말까지는 스판덱스 시황 호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효성은 지난해 ㈜효성 차입금의 70% 가량을 차지해온 효성캐피탈을 매각해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며 신사업을 추진할 동력도 얻었다. ㈜효성의 총차입금을 2019년 말 2조5016억 원에서 2020년 말 8403억 원으로 감소시키면서, 순차입금도 2조3123억 원에서 5933억 원으로 줄였고, 차입금 의존도 역시 38.3%에서 19%까지 낮아진 것이다. 효성은 캐피탈 매각으로 발생한 매각대금 3752억 원을 친환경과 수소 등 신사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효성티앤씨가 공개한 친환경 의류 브랜드 G3H10. 사진=효성티앤씨
◇ 원사 제조만 잘해? ‘NO!’…패션 제작도 ‘Yes!’

효성은 그간 원사 제조를 잘하는 생산 업체로 자자한 명성을 얻어왔다. 그러나 조 회장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사업을 확장 재편했다. 그 첫발은 자체 친환경 의류제작이다. 그간 패션업체에 원사를 공급만 해온 구조를 넘어 직접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종합섬유업체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친환경 의류 제작의 이면에 담겨 있다.

지난 2월8일 효성티앤씨는 국내 섬유 기업 중 처음으로 친환경 의류 브랜드 ‘G3H10’을 전격 공개했다. 효성티앤씨는 ‘G3H10’를 친환경 의류라는 이름에 걸맞게 페트병을 재활용해 생산한 리젠 섬유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목화에서 뽑아낸 오가닉코튼으로 만들어 소비자의 눈길을 끌었다. 2017년 국내 섬유업체로는 최초로 패션디자인센터(FDC)를 설립한 뒤 열과 성을 다해 내놓은 첫 작품이다.

효성 관계자는 “고객이 원하는 환경 문제 해결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다양한 친환경 제품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9년 6월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렸던 ‘2019 대한민국 수소엑스포’에서의 효성그룹 전시 부스. 사진=효성그룹
◇ 수소분야 선두 기업으로

효성은 미래 신사업의 핵심으로 분류되는 수소 사업에 관심을 보이며 친환경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도 도모하고 있다. 최근 재계의 화두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발맞춰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2030년까지 범정부적으로 추진되는 수소 경제 육성에 국내 기업들이 43조원을 투자키로 한 가운데 효성도 1조2000억 원을 투입하는 등 관련 산업 생태계 조성에 동참하는 결정을 내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효성은 수소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주력 자회사들을 적극 활용하며 수소 밸류 체인((Value-Chain)을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2023년까지 연산 1만3000톤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 건립 사업에 나서는 효성중공업과 2028년까지 연간 탄소섬유 생산량을 2만4000톤으로 끌어올릴 계획인 국내 유일의 탄소 섬유 제조업체 효성첨단소재가 그룹의 수소 사업 확대 전략에 앞장서는 계열사다.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인 한국판 뉴딜의 세부 계획인 그린뉴딜 정책은 수소 등 효성의 친환경 사업 추진에 날개를 달아줄 전망이다. 조현준 회장은 “수소 분야의 선두기업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효성은) 섬유와 화학, 중공업 등 전통 기반 산업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으나, 향후 수소사업 등으로 친환경 에너지 시장 진출을 본격화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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