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장서희 변호사] 최근 배우 윤정희에 관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화제가 되고 있다. 청원인은 윤정희의 동생들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들은 2019년 파리지방법원이 백건우 부녀를 윤정희의 후견인으로 지정한 데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해 소송을 이어왔다. 1심에 이어 지난해 11월 파리고등법원이 맡은 항소심 역시 백건우 부녀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들 간의 법적 공방은 마무리된 상태이다.

이처럼 가족들 사이에 법률분쟁을 촉발한 프랑스의 보좌(curatelle)·후견(tutelle) 제도는 우리 나라의 성년후견제도에 대응한다. 법률상 후견은 친권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미성년자 또는 장애·질병·노령 등으로 인해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에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이다.

과거에는 성년자 보호를 위해 금치산·한정치산제를 두고 있었으나 그 범위가 경제적 문제에만 한정되고, 금치산·한정치산자의 권리 제한이 과도하다는 등 문제가 많아 현실에서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이에 2012년 개정 민법에 따라 2013년부터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재산보호 뿐 아니라 의료행위, 거주지 결정 등 신상에 관한 지원도 가능하고 피후견인의 잔존능력이 존중되는 등의 장점이 있다. 지속적으로 후견인이 필요한 경우에 이용되는 성년후견인 외에도 한정 및 특정후견인 제도를 통해 생활의 일부분 또는 원하는 일정 기간에만 후견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민법 제9조, 제12조, 제14조의2 및 제959조의14).

피후견인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청구에 따라 성년후견 심판이 개시되는데, 가정법원은 직권으로 후견인을 선임하며 사정에 따라 복수의 후견인을 둘 수도 있다. 금치산·한정치산제와 달리 후견인의 자격이나 순위에 제약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성년후견제도의 이용은 갈수록 늘어 이미 연간 청구 건수가 7000여건에 이를 정도이다.

영화 ‘아가씨’에서 김민희가 연기한 히데코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조선에 건너와 이모부 코우즈키의 학대 속에서 피폐하게 살아온 아가씨이다. 조선인 사기꾼 후지와라는 아가씨의 막대한 재산를 노리고 일본 백작 신분을 가장해 그녀에게 접근하고, 숙희는 그런 후지와라의 사기결혼을 돕고자 아가씨의 하녀가 된다. 그리고 코우즈키는 처조카이자 자신이 후견하고 있는 아가씨의 재산을 손에 넣으려고 그녀와의 결혼을 노린다. 영화는 이러한 범상치 않은 네 사람의 얽히고 설킨 미묘하고도 드라마틱한 관계를 긴장감 가득 그려낸다.

그 시절 조선에서는 일본 민법이 의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아가씨의 죽은 이모는 생전에도 자기 조카의 후견인이 될 수는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의용 민법은 결혼한 여자의 행위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모의 권리는 호주였던 이모부 코우즈키가 행사하게 되므로, 고아가 된 어린 아가씨의 미성년후견을 이모가 아닌 코우즈키가 맡는 것은 그 당시 법에 합당한 설정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추측 속에서 의문이 드는 것은 왜 코우즈키가 이미 다 큰 아가씨의 후견인인가 하는 점이다. 후견은 친권자가 없는 미성년자를 위한 제도이므로 피후견인이 성년에 도달하면 종료된다. 그리고 성년후견은 피후견인에게 후견을 요할 정도의 정신적 제약이 있어야 할 텐데 아가씨는 딱히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혐오스럽기 그지없으며 아가씨의 재산이나 노리는 코우즈키가 이미 성인이 된 그녀의 후견인인 것이다. 어찌된 것일까? 그저 후지와라가 과거의 후견 사실을 현재형으로 잘못 표현한 것 뿐인 걸까? 아니면 결혼을 해야만 상속재산을 받게 된다는 원작의 설정을 가져오느라 발생한 변용인 것인가? 잠시 후견제도를 돌아보면서 들었던 아주 사소한 의문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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