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입구 전경. 사진=임진영 기자 imyoung@hankooki.com
[편집자주] 대한민국 가구 중 절반이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중에서도 신축과 대단지 선호현상이 두드러진다. 신축 아파트는 주차 편의성 등에서 단독주택이나 빌라, 오피스텔 및 구축 아파트보다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단지 규모까지 갖추면 커뮤니티 시설의 활성화로 단지 안에서 대부분의 일상생활 향유가 가능해진다. 이렇다 보니 대단지 신축 아파트는 집값 상승률도 더 높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부동산 시장을 리딩하는 주요 아파트 현장을 심층분석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대상 아파트는 국민은행이 매년 연말 선정하는 시가총액 상위 50위 단지인 ‘KB 선도 아파트 50’에 속하는 단지들이다(※시가총액=모든 세대의 집값 총합, 시가총액이 더 높은 곳의 개별 아파트가 고가 아파트라는 것은 아님, 대단지 아파트는 개별 아파트가격은 높지않아도, 시가총액은 높을 수 있음).

[데일리한국 임진영 기자] 잠실주공 5단지 아파트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대치 은마아파트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강남 3대 대단지 재건축 후보단지로 꼽히는 곳이다.

1977년 입주를 시작한 잠실주공 5단지는 2010년 이전에 모두 재건축을 완료한 나머지 잠실주공아파트 단지와 달리 여전히 재건축이 요원한 단지이자, 재건축 시 전체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 잠룡으로 평가받는 단지다.

잠실주공 5단지 모습. 사진=임진영 기자
◇ 준공 당시 유일한 15층 고층 단지로 방 4개 고급화 추구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잠실 주공 1~4단지가 나란히 엘스와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로 재건축 되는 와중에도 잠실주공 5단지는 여전히 재건축이 되지 않은 채 1970년대 후반 지어질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일례로 잠실주공 1~4단지는 모두 최고층이 5층에 그치는 저층 단지로만 구성돼 있었고,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잠실주공 5단지는1970년대 후반 10층이 넘는 아파트 단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던 시절에 유일하게 15층이라는 고층으로 설계됐었고, 엘리베이터를 완비했다.

난방 역시 연탄 난방을 하던 다른 1~4단지와 달리 5단지를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라디에이터 난방을 적용했고, 분양가 역시 1~4단지와 달리 비교적 높은 가격에 분양됐다. 자연스레 거주자들 역시 주로 중산층 이상으로 구성됐다.

실제로 잠실주공 5단지는 3930세대 전 가구가 84㎡ 단일 면적에 세부적으로는 34·35·36평의 세 가지 타입으로만 이뤄져 있어 거주자의 소득 수준이 균일했다.

세대 내부 설계도 시대를 앞서갔다. 현재까지도 30평대 아파트 대부분이 방 3개로 구성되는 것과 달리 잠실주공 5단지는 30평대가 방이 4개까지 나와 있다.

잠실주공 5단지 입주민 소득 수준이 높았던 대표적은 증거가 바로 이 방 4개 구성이다. 이 방 4개 가운데 주방 옆에 붙어있는 쪽방은 당시 ‘가정부 방’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단지에선 입주 가정부를 고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거주민들의 소득 수준이 높았다.

잠실주공 5단지의 입지 조건을 보면 단지 동남쪽 입구가 지하철 2호선 잠실역과 곧바로 맞붙어 있다. 단지 북쪽 길 건너는 한강변을 마주 보고 있고, 롯데월드가 위치해 있다. 또한 단지 대각편에는 롯데월드타워가 위치해 있어 잠실 상업지구의 핵심을 배후에 두고 있다.

교육 여건도 우수하다. 단지 내부에 신천초등학교가 위치한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단지이고, 잠실 3동 주민센터도 신천초등학교와 같이 있어 단지 내부에서 행정 처리 업무가 가능하다.

잠실주공 5단지 내에 위치한 서울 신천초등학교 전경. 사진=임진영 기자
◇ 라디에이터 난방에 녹물·주차 공간 부족…재건축은 ‘요원’

그러나 근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잠실주공 5단지의 거주 여건은 크게 악화됐다.

2010년대 이후 지어진 3세대 신축 아파트의 품질이 1970년대 지어진 아파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된 상황에서 현재 잠실주공 5단지는 확연하게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잠실주공 5단지는 건물 외벽 자체도 곳곳이 낡아있고, 녹슨 곳이 많이 보인다. 나무는 우거져 있지만 녹지 공간의 상당수들이 차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

또한 지하주차장이 없다. 단지 내 지상 공간 대부분이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지만 정규 주차 공간만으로는 차 댈 곳이 부족해 가변도로와 인도에까지 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을 정도로 주차공간 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상하수도 시설이 노후화 돼 녹물이 나오는 가정도 상당수 있고, 1970년대 당시 쓰였던 라디에이터 난방을 아직까지 그대로 쓰고 있는 세대도 많다.

특히 최근 신축 아파트가 20평대도 화장실이 2개가 설계되는 것과 달리 잠실주공 5단지는 전 가구가 화장실이 1개 뿐으로, 거주 편의성이 뒤떨어진다.

잠실주공 5단지는 지하주차장이 없어 지상 공간 대부분이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주차 공간은 여전히 부족해 정규 주차장 뿐만 아니라 사진과 같이 가변도로와 인도 일부에도 차량을 주차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임진영 기자
이에 반해 지어질 당시 잠실주공 5단지보다 거주 여건이 확연하게 뒤쳐졌던 잠실주공 1~4단지는 모두 2010년대 이전에 재건축을 마쳤다.

잠실주공 5단지는 이웃한 1~4단지와 비슷한 시기인 1996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하기 시작해 2000년에 시공사를 삼성물산과 GS건설, 현대산업개발 3곳의 컨소시엄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 이미 거주여건이 악화된 1~4단지와 달리 5단지는 아직 재건축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이 크지 않아 입주민들 간 재건축에 대한 의견이 나뉘면서 재건축 동력이 힘을 잃었다.

이웃의 1~4단지가 2000년대 후반 비슷한 시기에 재건축을 완료하면서 부랴부랴 5단지 역시 2010년 이후로 다시 본격적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기 시작해 2013년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곧바로 2014년 사업시행인가를 앞두고 전 조합장이 뇌물 혐의로 구속되면서 다시 재건축 일정이 차질을 빚었다.

이후 2016년 새 조합장이 선출되는 것을 계기로 잠실주공5단지는 다시 재건축을 본격 추진했다. 이어 2017년 9월 단지 내에 도로를 내는 대신 최고 50층, 용적률 500%를 적용받는 조건으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서 재건축 안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 당국이 서울 강남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면서 사실상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 사업은 올스톱 된 상황이다.

잠실주공 5단지 아파트는 건물 곳곳의 노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사진=임진영 기자
◇ “조합원 대부분 ‘존버’…일부는 던지기 성 급매물 내놓기도”

정복문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 조합장은 “지금 조합원들은 녹물이 나오고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최악의 거주환경 속에 살고 있다”며 “정부가 2017년에 서울시가 허가한 도계위 원안을 지키지 않고, 재건축을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 조합장은 “이럴 바에 차라리 조합 문을 걸어닫고, 이 정부(문재인 정부)가 끝날 때 까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버티자는 조합원들도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는 기존에 통과시켰던 서울시 원안(50층 재건축)을 약속대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 상황이 사실상 지지부진하지만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잠실주공 5단지의 가장 최근 실거래가는 지난 7월 27일 매매된 84㎡(34평) 23억원이다. 같은 타입이 6월 20억8300만원, 7월에 21억대에 3건이 거래된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재건축 기대감이 잠실주공 5단지 시세를 받쳐주고 있는 셈이다.

잠실주공 5단지 내 잠실중앙상가 모습. 단지 대각편으로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사진=임진영 기자
잠실주공 5단지 인근 H 공인중개사 대표는 “잠실주공5단지 34평이 재건축되면 소유주는 42평 신축을 받게 된다”며 “주변 단지 시세와 비교해 보면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단지 42평 시세는 최소 4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조합원들도 상당수가 미래에 재건축 하나만을 보고 열악한 거주 환경을 참고 버티고 있는 상황인 만큼 웬만해선 매물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며 “4000세대에 가까운 이 대단지에 거래 가능 물건이 34평이 3개, 35평이 1개, 36평이 2개로 총 6개 뿐으로 사실상 조합원들이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의미)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들어선 재건축이 사실상 올스톱 된 만큼 일부 던지기 성 급매물이 나오기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잠실주공 5단지 인근의 또다른 C 공인중개사 대표는 “살기가 불편하고, 워낙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상황이 불투명하다 보니 소수의 급매물이 있다”며 “실제 잠실주공 5단지를 팔고, 거주여건이 더 나은 인근의 엘스나 리센츠 40평대로 평수를 넓혀가는 사례가 다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인근의 J 공인중개사 대표도 “현재 잠실주공5단지 34평 매물 1개는 22억5000만원에 나와 있다”며 “이 타입 최근 실거래 가격이 23억원인데 호가가 이보다 더 낮은 상황은 사실 이례적인 일로, 던지기 성 급매물로 판단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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