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국내외 기업들의 위기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감염병 예방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단기간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면서도 다양한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후속신약 개발에도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는 분위기다. 미래 먹거리와 신약개발에 전사 역량과 R&D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의 현주소를 체크해봤다.

GC녹십자 본사. 사진=GC녹십자 제공
[데일리한국 김진수 기자] 국내 생명과학 선도 기업인 GC녹십자는 지난 반세기 동안 축적된 알부민, 면역글로불린 등 '혈액제제'와 독감과 수두 등 '백신' 분야에 이르는 필수의약품 국산화를 이끌어 왔다.

이는 혈액학과 면역학 분야의 기술력 축적을 가져와 기존 품목의 업그레이드는 물론 혁신 신약개발과 연구개발 시설의 현지화로 이어지고 있다.

◇ 유전자재조합 B형 간염 면역글로불린 'GC1102'(헤파빅-진)

기존 품목 업그레이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현재 상용화를 위한 최종 임상을 진행 중인 유전자 재조합 B형 간염 면역글로불린 'GC1102'(헤파빅-진)이다. 이 약물은 그동안 GC녹십자가 혈우병치료제, 헌터증후군 치료제 등을 개발하면서 축적해온 세계적 수준의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B형 간염 면역글로불린은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작용을 하는 단백질 성분으로 혈액(혈장)에서 분리 정제해 의약품으로 만들어진다. GC녹십자의 '헤파빅'이 대표 제품으로, 통상 이 약물은 간이식 환자의 B형 간염 재발을 예방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헤파빅-진'은 기존 제품인 '헤파빅'에 유전자를 뜻하는 ‘진’(gene)을 붙여 만든 명칭에서 보여주듯이 기존 혈장유래 방식과 달리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만든 B형 간염 면역글로불린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인슐린, 성장호르몬 등 의약품 개발에 널리 쓰이지만,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B형 간염 면역글로불린에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적용된 성공 사례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에 가장 근접해 있는 '헤파빅-진'이 의약계에서 큰 관심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헤파빅-진'은 기존 혈장유래 제품보다 항체의 순도가 높고 바이러스 억제 능력도 뛰어나 약물 투여시간을 기존 제품의 60분의 1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이 약물은 이러한 개선점을 인정받아 지난 201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와 유럽의약국(EM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 받기도 했다.

이와 같은 환자 편의성 개선 외에도 '헤파빅-진'의 상용화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은 더 있다.

기존 제품의 원료인 특수 혈장의 한정적 수입 문제가 없어지기 때문에 제품의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처가 가능해진다. 이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통한 제조비용 절감으로도 이어져 환자의 약값 부담까지 낮아질 수 있다.

현재 GC녹십자는 '헤파빅-진'을 두 가지 적응증으로 개발하고 있다. 앞선 간이식 환자의 B형간염 재발을 예방하는 용도 외에도 아직까지 완치가 불가능한 만성 B형 간염 치료를 위한 임상도 병행 중이다.

지난해 임상 2상의 첫 환자 투여가 이뤄졌으며 만성 B형 간염 치료를 극대화하기 위해 '헤파빅-진'과 핵산 유도체 경구용 항바이러스제의 병용 투여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진=GC녹십자 제공
◇ GC녹십자 첫 프리미엄 백신, 의약품 본고장 미국에서 개발 도전

GC녹십자는 지난 2018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신규 법인 ‘큐레보’(Curevo)를 설립하고 미국 현지에서 차세대 대상포진백신 'CRV-101'의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CRV-101은 기존 제품보다 진일보한 차세대 대상포진백신으로 기초 백신에 집중하던 GC녹십자의 첫 프리미엄 백신 개발 과제다.

큐레보는 백신 임상개발 경험이 풍부한 미국 현지 연구기관인 이드리(IDRI)와의 협업을 통해 지난해 CRV-101 임상 1상의 중간결과를 발표했으며 해당 임상은 계속해서 순항하고 있다.

중간결과에서는 안전성 측면의 유의미한 연구 성과가 공개됐다. 항원과 면역증강제의 용량을 달리해 56일 간격으로 두 번 백신을 접종한 결과, 높은 안전성이 확인됐으며 3등급 이상의 중증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임상 1상 연구는 CRV-101가 차세대 백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평가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소규모의 초기 임상이지만 앞서 시판 중인 다국적 기업 제품들보다 우월하다는 결과를 내놓으면 상용화 전에 제품 가치나 외부 관심이 급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연스럽게 좋은 협업 기회로 이어져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는 대규모 후기 임상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 차세대 혈우병치료제 개발

혈우병(hemophilia)은 X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선천성 또는 유전성 돌연변이로 인해 혈액 내의 응고인자(피를 굳게 하는 물질)가 부족해 발생하는 출혈성 질환이다.

혈우병은 약 1만명 중 한 명 꼴로 발생하는데 혈액 내 응고인자가 없거나 부족해 발생하는 선천성 출혈질환으로 부족한 응고인자의 종류에 따라 혈우병A·B·C로 나뉜다.

전 세계 혈우병 환자 수는 약 40만명 정도며 2017년 혈우병백서에 따르면, 국내 혈우병 환자는 2398명이다. 2020년에는 혈우병 치료제 시장 규모는 약 9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GC녹십자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한 그린진에프는 3세대 유전자재조합 A형 혈우병 치료제다. 제조 공정과 최종 제품 모두에 알부민과 혈장단백이 포함되지 않은 의약품으로 사람 혹은 동물 유래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잠재적인 위험성을 완전히 제거해 안전성을 한층 높였다.

또한, GC녹십자는 혈우병 환자들의 보다 나은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차세대 혈우병치료제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임상 1상 첫 환자 투여를 개시한 혈우병 항체치료제 'MG1113'이 있다.

MG1113은 부족한 혈액 내 응고인자를 주입하는 기존 치료 방식과 달리 응고인자들을 활성화시키는 항체로 만들어진 혈우병 항체치료제다. 항체치료제 특성상 기존 약에 내성이 생긴 환자도 사용이 가능하며 A형과 B형 혈우병에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GC녹십자에 따르면 이 약물은 기존 약보다 반감기가 긴 고농도 제형으로 피하주사가 가능하고 약물 투여 횟수와 통증이 줄어 환자 편의성이 획기적으로 개선시킨다.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의 전자현미경 사진. 사진=질병관리본부 제공
◇ 코로나19 치료제 ‘하반기 상용화’ 목표

GC녹십자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이슈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혈장치료제 ‘GC5131A’의 올해 하반기 상용화를 위한 속도를 내고 있다.

‘GC5131A’는 코로나19 회복환자의 혈장에서 다양한 항체가 들어있는 면역 단백질만 분획해서 만든 고면역글로불린(Hyperimmune globulin)이다. 일반 면역 항체로 구성된 대표적인 혈액제제 면역글로불린(Immune globulin)과는 코로나19에 특화된 항체가 더 많이 들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GC녹십자가 코로나19 혈장치료제의 하반기 상용화를 자신하는 이유는 이미 상용화된 동일제제 제품들과 작용 기전 및 생산 방법이 같아서 신약 개발과 달리 개발 과정이 간소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GC녹십자에 따르면 이미 회복환자의 혈장 투여만으로도 과거 신종 감염병 치료 효과를 본 적이 있어서 이를 분획 농축해 만든 의약품의 치료 효능도 이미 결과가 나와 있는 셈이다.

허은철 GC녹십자 사장은 “치료적 확증을 위한 임상을 조만간 시작할 것”이라며 “치료제가 가장 시급한 중증환자 치료와 일선 의료진과 같은 고위험군 예방(수동면역을 통한) 목적으로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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