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 데일리한국 금융부 기자
“공포에 사서 환희에 팔아라”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의 말이라고도 하고 아니라고도 하고, 출처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꽤 오랫동안 믿어진 월스트리트의 격언이다. 공포로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회복기 안전 마진을 확보하라는 거다.

그런데 시장에는 공포에 팔며 환희를 만끽하는 이들이 있다. 공매도 세력이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미리 매도한 뒤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매수해 되갚는 투자방식이다. 그래서 공매도 주체는 폭락장에서 돈을 번다.

지금 시장은 분명 공포에 질렸다. 지난해 말 2197.67이던 코스피는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지난달 말 1987.01로 추락했다. 이달 9일 현재 1950선대로 주저 앉았다. 두 달 열흘 만에 11% 이상 폭락한 것이다.

외국인과 기관들은 무섭게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평균 공매도 거래대금은 5091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평균인 3180억원보다 60.1% 증가했다. 공격적으로 공매도를 늘리자 주가 하락은 거세졌다.

공매도 주체는 대부분 기관과 외국인이다. 신용도와 자금력 등에서 개인이 증권차입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코스피의 일평균 공매도 거래대금 중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49.9%, 49.2%를 차지했지만 개인은 0.9% 수준에 그쳤다.

외국인은 공포에 팔고 개인은 공포에 사고 있다. 코스피 1960선이 깨진 9일에만 개인은 1조2800억원을 샀고 외국인은 1조3080억원을 팔았다. 앞으로도 뚜렷한 호재가 보이지 않는다면 공매도 주체는 공매도로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할 것이고 그로 인해 증시 하락이 가속할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동안에도 그들은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일 것이다.

그러자 골드만삭스 공매도 미결제 사건 등에서 나타났던 공매도 폐지론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과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8개월가량 시행된 적이 있는 한시적 공매도 금지를 시행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도 잇따라 등장했고 여당 국회의원도 한시적 공매 제한 조치를 요구했다. 정부는 11일부터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제도를 일시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답했다.

물론 정부와 금융당국은 공매도의 순기능과 지금 시장의 불안정성을 모두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개인 투자자가 시장 참여자의 70%를 차지하는, 사실상 주식을 전혀 보유하지 않은 상태(空)에서 주식을 매도하는 '네이키드 공매도'까지 가능한, 공매도 세력에겐 미국보다 더 활짝 열린 우리 '시장의 문'을 전면적으로 손 봐야 할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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