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회장 연임 위해 시한부 1년 임기" 의혹 속 내부 견제까지 이겨내야

권광석 행장 내정자 17일부터 외부 집무실로 출근해 주요 현안 챙기기

권강석 우리은행장. 사진=우리은행 제공
[데일리한국 임진영 기자]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고객 비밀번호 도용 사태 등 연달아 악재가 터진 우리은행에 새로운 수장이 선임되면서 새 행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흔들리는 우리은행호(號)를 새롭게 이끌게 될 차기 행장은 권광석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사업 대표다.

한일은행 출신의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자신이 겸직하던 우리금융지주 회장직과 우리은행장직을 분리하기로 결정했고, 상업은행 출신인 권광석 대표가 행장에 내정됐다. 의외의 결과였다.

손 회장은 최측근이자 오른팔로 분류되는 김정기 우리은행 부행장을 차기 행장에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비주류'로 분류된 권광석 대표가 예상을 뒤엎고 차기 행장에 추천됐다. 사외이사들이 권 대표를 밀었다는 게 금융권의 정설로 돼 있다.

손 회장의 당초 뜻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우리은행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 회장은 권 행장의 임기를 1년으로 결정했다. 그래서 손 회장의 '뒤끝 작렬'(?)이라는 말이 은행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손 회장은 권 행장을 견제하고, 차기를 도모하기 위해 권 행장 임기를 1년으로 줄였고, 김정기 부행장을 우리금융 사업부문 부사장으로 '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그럴듯하게 나오고 있다.

손 회장이 금융당국과 법적인 다툼까지 벌여가면서 자신의 차기 회장직 연임을 강행하려는 '모험' 을 펼치면서 우리은행장에 자신의 최측근을 앉힐 경우 당국에 불필요한 꼬투리를 잡힐 수 있다는 우려를 막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권 행장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손 회장의 연임이 결정되는 민감한 시기인 올 1년여간 권 행장에게 우리은행을 맡겨 회장과 행장을 확실하게 분리시켜 당국에 꼬투리 잡힐 만한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시도로 읽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16일 “손 회장이 김정기 부행장을 지주 부사장으로 인사발령 낸 것은 자신이 연임을 마친 후 차기 회장으로 김 부사장을 밀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손 회장의 연임 강행으로) 금융당국과 당분간 불편한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올해 한 해만 권 행장이 잠시 우리은행을 무탈하게 맡아달라는 것이 손 회장의 뜻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 “손태승 회장 연임 위해 단발성 구원 투수로 등판한 ‘권광석’…내부 견제까지 이겨내야”

일반적으로 시중은행장은 2년이나 3년의 임기가 보장된다. 보통 연임할 때에만 1년씩 연장돼 왔다. 하지만 권 대표는 출발부터 1년짜리 '시한부' 행장이 된 셈이다. 1년 짜리 행장이 조직을 제대로 장악할 수 있을 지 벌써부터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권 행장이 ‘1년의 결과물’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엔 주어진 임기가 너무 짧다는 목소리가 높다. 통상적인 행장 임기의 절반 수준인 1년의 임기만 권 행장에 주어진 것은 손 회장이 권 행장을 ‘단발성 구원 투수’로 세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은행 안팎의 상황이나 분위기가 어찌됐든, 권 행장으로서는 짧은 4계절 내에 확고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을 갖게됐다. 권 대표는 17일부터 남창동 우리은행 서울연수원에 마련된 외부 집무실로 출근해 각종 현안을 보고받을 예정이다.

오는 3월말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 임기가 시작되는 권 대표가 공식적인 취임 일정 보다 5주 정도 일찍 우리은행으로 출근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은행에 쌓여있는 과제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권 행장은 우리은행의 실적 신장 외에도 미묘한 내부 견제까지 이겨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고 밝혔다.

한편,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손태승 회장도 처음 우리은행장 선임 당시 1년 임기로 선임 된 후 호실적을 거둬 3년 임기를 보장받았다”며 “권 행장 역시 1년 동안 우리은행을 안정시키라는 목표를 부여 받았고, 이후 실적 등 결과 여부에 따라 연임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권 행장의 선임이나 임기는 손 회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며 “권 행장의 선임이나 임기 기한 여부는 손 회장의 연임 여부 등과는 하등 상관없는 얘기”라며 ‘내부 견제설’ 등의 시각에 대해 일축했다.

◇ 경쟁자인 하나은행에 비해 6000억원 이상 뒤쳐진 실적…한 해 만에 뒤집을 수 있나

우리금융은 최근 공시한 실적발표 결과 지난해 순이익 1조9041억원을 거뒀다. 이는 2018년보다 6.3% 줄어든 수치다. 우리금융측은 지난해 초 우리은행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데 따라 회계상 순이익이 1344억원 줄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경쟁사와 대비했을 땐 아쉬운 실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리딩뱅크’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신한금융과 KB금융 다음으로 3등 자리를 놓고 경쟁중인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의 실적은 확연히 갈렸다. 하나금융이 지난해 순이익 2조4084억원을 거두면서 우리금융을 5000억원 이상 차이로 넉넉하게 앞섰다.

금융그룹 핵심 계열사인 은행 실적도 하나은행이 2조1565억원을 기록하면서 같은 기간 순이익이 1조5408억원에 그친 우리은행을 6000억원 차이로 앞서나갔다.

악재가 겹친 우리은행의 분위기를 추스려야 하는 권광석 행장 앞엔 경쟁사보다 확연히 뒤쳐진 우리은행의 실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어려운 과제마저 주어진 셈이다.

서울 명동 우리은행 본점. 사진=연합뉴스
2018년만 해도 우리은행의 순이익은 2조190억원으로 같은 해 2조820억원의 순익을 거둔 하나은행과 실적 차이가 630억원 정도였다.

그러나 한 해 만에 그보다 열 배인 6000억원 이상 하나은행과 실적 차이가 벌어지면서 우리은행을 새롭게 맡게 된 권 행장이 이 차이를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극복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물론 2019년 우리은행의 실적 부진은 금융지주 체제로 전환한 첫 해라는 일회성 이슈가 있었다. 이에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지 둘째 해이자 지주사 체제가 안정기에 접어든 올해 새롭게 우리은행장을 맡은 권 행장이 하나은행과의 격차를 어느 정도까지 좁힐 수 있을지가 최대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원래 하나은행과 엇비슷한 실적을 내왔던 은행인 만큼, 올해는 (하나은행과) 다시 격차를 좁히는 것도 크게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초 지주 전환에 따른 회계상의 순이익 감소분 1344억원을 포함하면 실제 순이익은 약 2조원을 초과하는 규모”라며 “이를 감안하면 지난해 실적은 경상 기준으로, 사상 최대실적을 거둔 것으로, 전체 상장사 중에서도 실적 기준 9위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실적이 하나은행에 뒤쳐졌다는 부분에 대해선 “(경쟁사인)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해 실적의 상당 부분이 사옥 매각에 따른 일회성 요인이 발생하면서 수익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은행의 실적이 (하나은행에 비해) 크게 뒤쳐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권 행장 앞에는 하나은행과의 격차를 줄여야하는 것외에 조직 재정비와 고객 신뢰를 회복이라는 더 큰 과제가 있다. 권 행장이 안팎의 견제와 장애물을 극복하고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실력'을 보여줘야 롱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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