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민 데일리한국 산업2부 기자.
[데일리한국 박창민 기자] 19일 오후 5시 15분 서울중앙지법 513호 법정 앞. 재판을 앞둔 심명섭 전 위드이노베이션 대표는 5층 벤치 한켠에 홀로 앉아 굳은 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초 오후 5시 열릴 예정이던 위드이노베이션의 야놀자 정보 크롤링(분산된 데이터 추출 기술) 1심 재판의 결심공판은 한 시간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최종진술 차례가 되자 이날 검찰로부터 징역 3년을 구형받은 심명섭 전 대표가 증인석으로 나와 미리 써둔 글을 읽어갔다.

심 전 대표는 "한때 저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회사 일로 재판을 받게 돼 송구한 마음"이라며 "크롤링은 기업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시장조사며 우리나라에서만 크롤링이 금지된다면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심 전 대표는 숨을 고른 뒤 종이를 보던 시선을 판사를 향해 옮기고는 "재판장님께서 누군가 책임져야한다고 한다면 대표인 제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리로 돌아오는 심 전 대표의 상기된 얼굴은 그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와 함께 초기 숙박앱 시장을 개척해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위드이노베이션을 5년여만에 3000억원의 기업가치를 가진 회사로 성장시킨 그다.

심 전 대표는 최근 경영 복귀와 매각을 놓고 9개월간 고민하다 결국 투자 유치를 위해 ‘오너 리스크’가 있는 자신의 경영 복귀가 아닌 매각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심 전 대표는 지난해 대표직을 내려놓고 올해 자신의 지분 전량을 글로벌 사모펀드 CVC캐피털에 매각하며 경영에서 자유로운 신분이 됐음에도 2016년 사내 임직원에 지시한 크롤링으로 재판장에 선 것이다.

여섯 차례 공판 일정을 취재하며 옆에서 지켜 본 심 전 대표에게서 느껴진 감정은 위드이노베이션 임직원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재판 전후 같이 온 회사 전·현직 임직원이자 피고인들의 식사를 챙기거나 공판을 마칠 때마다 이들에게 '다음 재판 일정 오기 힘들지 않아?'라고 묻는 심 전 대표의 모습은 그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후 7시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와 어두운 건물 복도를 걷는 심 전 대표의 뒷모습을 보며 다사다난했던 숙박앱 경쟁 ‘1라운드’가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놀자와 여기어때의 숙박 예약 서비스가 본격화된 2015년 이후 양사는 외적 성장과 함께 서로에 대한 의혹 제기와 고소로 얼룩져왔다. 경쟁사 스티커 무단 수거(2016), 댓글부대 운용 및 찌라시 배포(2017), 크롤링 고소(2017), 인격권 침해 소송(2018), 특허침해 소송(2019) 등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기간 다른 스타트업 분야의 대표 경쟁사끼리 공식적으로 의혹 제기나 고소 등을 한 사례가 2건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숙박앱 간 이전투구 양상은 유독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스타트업 업계 일각에서 야놀자와 여기어때의 관계를 '물과 기름'으로 정의하는 농담섞인 비유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크롤링 사건이 마무리되면 지난 9월 여기어때 대표에 취임한 최문석 체제에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이는 여기어때의 해외진출 등 시장 변동과 맞물려 국내 숙박O2O플랫폼들은 새 국면을 맞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 ‘성장통’을 겪은 야놀자와 여기어때가 경쟁 ‘2라운드’에서는 더욱 클린(Clean)한 경쟁으로 '숙박문화를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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