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부 안병용 기자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입법은 없고 정쟁만 있다는 정치1번지 여의도 국회. 이 같은 부정적 평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20대 국회.

이런 국회를 이끌어가는 국회의원들에게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법안 통과를 호소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듯한 일부 선량(選良)들의 태도를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국민이 내미는 손을 거칠게 뿌리치면서 짜증을 내는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의 태도는 최근 발생한 '국민 (개)무시 드라마'의 대표적 사례라 할 만 하다. 권 의원의 몰상식적인 모습은 여러 언론의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겨 지난 11월 28일 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됐다. 권 의원의 야멸찬 모습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된 일곱살 조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저거 실화야?” 설마 저 동영상이 사실은 아니겠지 생각하면서 던진 어린 조카의 질문에 참담한 정치현실을 떠올리며 끝내 아무런 답변도 해줄 수 없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조차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하고 냉대한다면 그들이 아무리 중요한 입법 활동을 한다한들 '법안 제조기'라는 기능공 이상의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권 의원이 법안 통과를 호소하는 국민을 외면하고 무시한 행태는 권 의원을 포함한 20대 국회의원 300명이 ‘본연의 임무’인 입법에 얼마나 충실할까 하는 의문을 던지기에 충분해 보인다.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어린이집 급·간식비 인상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문자를 보내온 한 시민단체 회원에게 “스팸 보내지 말라. 계속하면 더 삭감하겠다”며 해당 문자를 ‘스팸’으로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협박성 답신까지 보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드러난 것은 일부에 그치지만 이렇듯 ‘입법 갑질’에 맛을 들인 국회의원이 제법 될 것이라는 의구심 아래 전체 국회의원들의 입법 실적을 한번 살펴봤다. 국회의원들의 입법 활동 지표이자 법안 처리율을 확인하기 위해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점검해보니 11일 현재 20대 국회(2016년 5월 30일 이후)에서 발의된 2만 4457건의 법안 중 처리된 법안은 7758건(31.7%)에 불과했다. 요컨대 법안 3건 중 1건 정도만 통과됐다는 얘기다.

법안 처리율이 이 정도 수준에 그친다면 법안의 효율성과 적합성을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들이 제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데, 합당한 이유를 대면서 법안 통과를 바라는 국민이 왜 자신들의 '공복(公僕)'인 국회의원에게 무시와 겁박을 당하는 처지가 됐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정기국회 폐회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던 지난 11월 19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의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김초희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른바 ‘민식이법’ 통과를 요청하며 눈물로 호소했다. 민식이법은 김씨의 사망한 아들, 고(故) 김민식군의 이름을 따서 발의된 법안이다. 법안 통과는 당연히 입법부인 국회의 몫이다. 민식이 어머니는 오죽 답답했으면 행정부 수장인 문 대통령에게 아들의 이름을 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을까.

문 대통령이 국회에 협조를 당부한 덕분인지 민식이법은 20대 국회의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 10일 본회의에서 가까스로 통과됐다. 물론 이는 문 대통령의 언급 이후에도 민식이 부모님이 국회 논의 일정을 챙기면서 지속적으로 국회를 방문해 의원들을 설득하고 법안 통과를 호소한 끝에 얻어낸 귀중한 결과물이다. 민식이 부모님은 “우리 아이가 왜 협상카드가 돼야 하느냐”며 법안 통과를 둘러싼 여야 간 정쟁에 대해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국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정치가 신뢰를 얻지 못하면 국가의 가치도 덩달아 하락하기 마련이다. 노선이 같은 정치인들끼리 진영 논리에만 매몰돼 있으면 정작 해야 할 주요 과제나 현안은 후순위로 밀린 채 정쟁만 격화된다. 입법부가 입법 문제로 지적당하는 일은 20대 국회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내년 4월15일 총선후 새롭게 출범할 21대 국회는 부디 입법이라는 본연의 임무와 과제에 대해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굳은 결기로 끝까지 책임과 의무를 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상식이 통하고 양심적인' 국회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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