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인공지능은 바둑격언들을 쓰레기 통으로
밀어넣으면서 바둑인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해준 일등공신"
"인간은 차츰 인간+인공지능의 협동바둑 대전을 꿈꾼다"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인공지능 ‘알파고’의 적수 이세돌 프로가 바둑계를 은퇴했다는 소식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2016년 3월에 개최된 이세돌-알파고’ 바둑대전은 인공지능 기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이세돌은 인공지능 ‘알파고’를 호선바둑으로 이긴 마지막 인간이 됐고 이 기록은 앞으로 절대로 깨지지 않을 듯 싶다. ‘알파고’가 그 이후에도 자기학습을 거듭하며 ‘알파고 제로’로 진화한 후 바둑에 관한한 더 이상의 발전 단계는 없다고 선언하고 바둑계를 은퇴했기 때문이다.
‘알파고’ 등장 이전만 해도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들은 프로기사들에게 두 점 접바둑을 둬야만했다. 하지만 ‘알파고’가 소스코드를 공개하자 강력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으론, 중국 텐센트가 개발한 ‘줴이(絶藝, FineArt)’, 중국 칭화대가 개발한 ‘골락시(Golaxy)’, 한국의 NHN이 개발한 한돌, 벨기에 지안-카를로스 파스커토의 릴라고(LeelaGo), 한국 고등과학원의 바둑이, 일본 글로비스의 AQZ 등이 있다.
프로기사들을 상대로 두 점 이상의 접바둑을 두어도 승률이 90% 이상되는 실력들을 발휘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철석같이 믿어왔던 바둑격언들을 보란듯이 무시하며 그동안 구축해왔던 바둑 정석들을 완전히 새로 쓰게 했다.
인공지능은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해줬다. 프로기사들은 인공지능을 상대로 절묘한 수순을 익히며 새로운 기예를 닦고 있다. 인공지능이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두어도 그 수가 묘수인지 오류인지 알길이 없어 헤매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기도 한다.
인간의 두뇌예술이라 불리던 바둑의 오묘함이 더 이상 인간만의 몫이 아니라는 자조 섞인 말이 들릴 정도다. 인공지능은 인간과의 격차를 늘리려 하지만, 인간은 인공지능의 허점을 파고들어 격차를 줄이는 묘미를 즐기게 된다. 인공지능이 바둑기법을 바꿀 수는 있어도 인간의 추격을 완전히 따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은 차츰 인간+인공지능의 협동바둑 대전을 꿈꾸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증강된 프로들만의 대전이다.
사물지능시대의 초기에는 사람들이 사물의 판단에 간섭하기도 하겠지만 점차 사물의 판단을 신뢰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바둑에서처럼 사물이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모른 채 사물의 판단을 추종하게 될 것이다. 절차가 정해진 업무는 물론이고 절차가 가변적인 업무까지도 목표가 뚜렷하면 인공지능이 스스로 알고리즘을 만들어 일처리 하는 단계로 진화될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채택된 기술들은 점차 기업의 고용 수요를 잠식하게 되고 오류가 없는 한 인간의 작업이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인간의 관점이 도중에 바뀌게 되면 컴퓨터는 곧바로 목표나 절차를 정하는 알고리즘을 자동으로 바꾸어 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등장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의 도움이 없이는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뒤처지는 시대에 있다. 영역별로 특화된 알고리즘은 금융투자, 범죄수사, 기업경영 나아가서는 정부의 행정업무들까지 인간의 지적역량을 뛰어넘는 판단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지극히 좁은 영역의 업무이다.
즉, 금융투자에 뛰어난 실적을 발휘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자동차를 자율적으로 운전할 수는 없다. 만약, 인공지능이 영역을 확장해서 다방면에 걸쳐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일처리 능력을 보이게 된다면 이를 특정업무 지능과 대비해서 범용 지능이라 부르고 인간의 지적능력과 대비하는 시도를 한다.
인간 지능처럼 일반적인 알고리즘으로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컴퓨터의 급속한 학습능력으로 언젠가는 모든 방면에서 인간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초월적 지능을 갖추게 되는 상상을 하는 게 초(超)지능 인공지능 개념이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하게 되고 이 같은 기계지능이 사회경제적 또 나아가서는 정치적 판단을 주도한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복지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많은 공상과학영화에서 기계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일하는 상황이 가능하다고 보는 이유이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2029년이 되면 인간의 두뇌 역량을 뛰어넘는 범용 인공지능이 등장한다고 예측해왔다. 그의 주장은 한 영역에서 깊은 전문성을 가진 인공지능이 발달하게 되면, 여러 영역을 관장하던 전문 인공지능들을 합쳐서 동시에 여러 영역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통합형 범용 인공지능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세상이 오면 대부분의 일을 인간두뇌 대신에 컴퓨터가 수행한다고 한다.
컴퓨터가 인간의 도움 없이도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배우고 또한 생성시킬 수 있게 된다. 물론 영역 별 데이터가 충분하고 계산능력이 막강해진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알파고를 개발했던 구글의 딥마인드도 바둑에 정통한 알파고의 알고리즘을 장기나 체스에도 통용될 수 있는 범용 알고리즘으로 확장시켜서 ‘알파제로’를 개발한 바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인 2020년대를 격동적 기술변화시기로 바꿀 수 있다. 레이 커즈와일의 예언이 아니라도 이미 세상은 많은 비즈니스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컴퓨팅 속도와 메모리 처리 속도의 향상은 물론이고 데이터 증폭 및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발달은 온 세상의 기술, 비즈니스, 그리고 정부까지도 그 역할과 기능을 혁명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기술혁명의 핵심은 모든 사물의 인지능력에서 나온다. 사물들이 서로 연결되고 주변을 감지하며, 인공지능이 사물에 삽입되게 되면 지능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이미 생활 속에 스며든 스마트 스피커, 스마트 시계, 스마트폰, 각종 가전기기들은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일부 지역에선 자율자동차가 운행되고, 안면 인식으로 모든 장소의 통제가 자동화된 세상이다. 음성으로 기계를 조작하고, 회의 참가자들의 홀로그램을 가상공간에 불러서 글로벌 원격회의를 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이런 식의 기술발전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면 지금은 감히 상상도 못할 새로운 세계가 향후 10년 동안에 펼쳐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같은 전망은 인공지능이 모든 인지적 업무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판단을 하는 날이 온다는 기본 관점이 있다. 물론 가능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같은 일들은 분석적 일처리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범용 인공지능이 마치 인간처럼 세상을 경험하고 터득한 내재된 상식이나 직감 또는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볼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인간의 성정이 인공지능의 판단결과보다 더 인간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판단력을 기계에게 모두 맡길 수만은 없는 이유는 사람마다 선호하는 개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준다고 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감정을 부여할 수가 없다는 의미다.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느끼고, 인식하고 또 경험하는 지각능력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범용 인공지능이 과연 지각능력을 가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는 인공지능이 개성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스스로 독창적인 가치기준을 세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같은 일이 실현되려면 인간이 인체의 두뇌작용을 인공지능 속에 설계해 넣어야만 한다.
따라서 이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만 이 같은 두뇌의 생물학적 작용을 복제하는 대신에 이를 우회적으로 재현시키는 별도의 기술을 창안해 낼 수는 있다고 본다. 인간의 두뇌와 똑같은 원리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인간이 사용하는 인공지능 별로 각자 사용자의 개성이 반영된 인공지능이다. 즉 사용자 별로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인공지능 속에 학습시키면서 다방면에 활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인공지능을 보유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자신의 생물학적 두뇌와 컴퓨터지능을 활용해 획득할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을 결합시켜 자신만의 합작품을 완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다른 누구와도 차별화된 자신만의 범용 인공지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말 그대로 증강지능인간으로의 탈바꿈이 되는 세상이다. 보통사람뿐이 아니다. 기업인이나 정치인 또는 행정가들도 개성 넘치고 특화된 범용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경영활동이나 정치·외교·행정력을 증강시키는 신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진짜 신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미래는 가랑비에 옷젖듯 그렇게 소리없이 우리 생활속으로 쑥 들어올 것이다.
■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 미래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이 뛰어나 '미래탐험가'로 불린다.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객원교수, 포항공과대학 겸직교수. 포항산업기술연구원 연구위원, 지식경제부 기술지원(금속부문)단장 등을 역임했다.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요즘은 미래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과학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