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 총력전’ 文정부의 과제는…“외교서 자존심 내세울 필요 없어

민족·국가 이익=한반도 평화 안정. 북미, 계속 설득·유지 노력해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돌아가다 뒤돌아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로 마무리된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갖고 있는 비핵화 의지의 속내에 대한 해석이 외교가에서 분분하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선대의 북측 지도자와는 결이 다르다”며 ‘신뢰’를 기본적인 전제로 두고 비핵화 협상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김 위원장은 시간끌기 식의 협상에 골몰하는 듯한 태도를 한미 지도자들에게 공공연히 드러내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12일 소식통에 따르면 북미 실무협상 당시 미국 측은 북한 측의 비핵화 보상 요구에 대해 석탄·섬유 등의 제재 조치를 일정기간 유예해주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미측이 북측으로부터 원하는 영변 핵시설 폐기와 핵 신고 및 반출 등의 물꼬를 트기 위한 선제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북측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에 대해 최대한의 경제 보상과 완전한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하며 미측의 제안에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거부했다. 그들은 “미국이 빈손으로 나왔다. 새로운 방법이 없었다”며 미측의 협상 태도에 대한 불만을 노골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측이 그간 고수해온 ‘일괄타결’ 방식을 수정해 ‘단계적 접근’을 새롭게 제안한 반면 북측은 하노이회담 당시 영변 핵시설 폐기에 5개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과 마찬가지의 전략으로 이번 스톡홀름 협상에 임했다는 점에서 정작 빈손으로 나온 것은 북측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북측의 실무협상 방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압박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는 ‘톱다운’ 딜 방식을 위한 의도적인 시간 끌기 의도가 담긴 것으로도 읽힌다.

실제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는 빌미가 미국 내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탄핵 여론이 급증하면서 재선 가도에 먹구름이 잔뜩 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에 나섰던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앞으로 북미대화의 운명은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면서 “그 시한은 올해 말까지”라며 연내 제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숨기지 않은 것 역시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특히 궁지에 몰려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대북 정책 성과를 위해 북측에 일부 양보를 하면서 ‘톱다운 딜’ 성사를 노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의 의도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외교가의 진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딜(No Deal)’이 ‘배드딜(Bad Deal)’ 보다 낫다는 전략을 지난 하노이회담에서 보여주며 사업가 출신다운 기질을 여지없이 드러낸 바 있다.

현실적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영변 핵시설 폐기에 핵심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배드딜’을 성사시킬 경우, 미국 내에서 심각한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미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북측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압박 전략을 쓰고 있다. 특히 북측은 “끔찍한 사변”을 거론하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재개까지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ICBM 발사는 북측에게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신들이 천명한 ‘2020년 가시적 경제성과’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외교·안보적으로도 혈맹국인 중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명분까지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김정은 위원장의 자국 내 정치적 위상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북미 협상 중재에 올인하고 있는 청와대는 “협상의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연내 대화의 문을 열길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략적 노딜’에 기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북측에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현준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는 “비핵화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북미 양국이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외교에서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는 없다. 민족과 국가 이익이 한반도 평화의 안정이라는 기조 하에 북미 양국을 계속 설득하고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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