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업체, 중구 쪽방민 이주지역으로 용산구내 건물주와 고시원 계약 체결

용산구, 쪽방민 183명 이주 시 ‘복지비용’ 월 1억원 이상 부담 등 곤란한 처지

중구 “내부적인 상황,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나몰라라 방관 입장

남부경찰서 뒤 쪽방촌. 사진=주현태 기자 gun1313@hankooki.com
[데일리한국 주현태 기자]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행정에 ‘사회복지’에 관련된 과는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려고 있는 것인데, 오히려 복지비를 아끼려고 다른 행정담당으로 쫓겨내는 것과 같다”

25일 본지가 확인한 결과 서울 중구 남부경찰서 뒤편에 거주하고 있던 쪽방 주민들이 졸지에 ‘철거민’처럼 용산구로 쫓겨날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부경찰서 뒤편은 골목 쪽방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도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재개발 추진과 취소가 반복된 지역이기도 하다.

최근 A업체 관계자가 중구청을 찾아가 중구 재개발 지역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재개발추진 건설업체인 A업체는 이 지역 재개발 사업을 위해 쪽방촌 내 6개의 건물에서 거주하는 쪽방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계획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는 183명에 이르는 중구 쪽방민들의 이주를 준비하기 위해 용산구청 담당인 후암동 동자동, 갈월동 등 건물에 있는 건물주들과 용산구도 일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에 따르면 A업체는 중구에 거주하는 183명의 쪽방 주민을 용산구 담당 건물을 얻어 그쪽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중구측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는 용산구 내 7개 건물을 임대해 수리한뒤 중구에 거주하던 쪽방 주민들에게 5년간 방 한 칸당 월 25만원으로 임대를 해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구에 거주해온 쪽방 주민들을 새로운 구민으로 맞이하게 된 용산구는 이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쪽방 주민들은 쪽방에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고시원 거주를 반길 것이다?

A업체가 추진하고 있는 이주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은 쪽방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곳이 주거환경이 개선된 곳이 아닌, 쪽방촌과 비슷한 고시원으로 보낸다는 사실이다.

중구 관계자는 “쪽방 건물보다 오히려 안전하고 쾌적한 고시원으로 이주하는 것이므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안일한 설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 입장에서 자신의 구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매우 이기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일부 쪽방 주민은 결국 쪽방을 리모델링해 보다 깨끗한 용산구의 다른 쪽방으로 옮기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얘기도 새나오고 있다.

쪽방 주민들이 용산구 고시원 건물로 이주해도 문제가 남는다.

현재 중구 쪽방촌은 ‘시설 노숙인·거리 노숙인 주거’로 돼 있어 노숙법이 적용되는 곳이다. 이곳 주민은 ‘쪽방’이라는 최저 주거에서 거주하며 거리 노숙인과 같은 법률 보장을 받으면서 ‘쪽방상담소’를 통해 다양한 지원과 혜택을 받고 있다.

쪽방삼당소는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되고 있는 복지전문기관으로, 쪽방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쪽방주민 취업연계 △맞춤형 복지 △교육 등 혜택을 제공하는 곳이다.

◇ 용산구 “재개발에 관련한 집단 이주에는 지자체 간 협의가 있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쪽방 주민 이주소식에 용산구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용산구가 180명 이상의 복지대상자가 대거 용산구로 이주할 경우 국·시비를 포함해 월 1억원 이상을 지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A업체는 서울시가 펼치고 있는 ‘저렴쪽방’ 사업과 비슷하게 이주계획을 준비하고 있으면서 마치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더 싼 값에 방을 제공한다는 말로 쪽방 주민을 속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업체의 전화 한 통도 온 적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중구와 A업체의 문제는 쪽방 주민 이주대책을 미리 다 세워놓고 빠져나갈 구멍까지 만들어놨다는 점"이라며 "사업 계획도 명확하게 꺼내놓은 것이 없어 다른 이유를 들먹이며 빠져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중구청은 건축자(A업체)가 이주할 곳을 구해 놓은 건물이 타당한지 여부를 검토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번 이주준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말을 바꿔 타당하지 않다며 발을 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체측은 용산구에 이주할 곳만 준비만 해놨을 뿐, 중구의 쪽방 주민들이 용산구로 갈지 안 갈지 ‘자율적’으로 선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일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쪽방 주민들에게 선택권이 있을지 조차 의구심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대부분이 복지비를 수급하고 있고 정부와 행정의 보살핌이 없으면 자립 조차 힘든 이른바 불우이웃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구 기존 쪽방지역에서 뚜렷한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지만 벌써 5명의 쪽방 주민이 용산구로 이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쪽방 주민들이 소식을 듣고 용산구쪽으로 둥지를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쪽방촌 주변인 중구, 용산구의 월세가 이미 오를 만큼 올랐고 지금도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는 곳이라고 전했다. A업체가 이주를 추진해온 한 건물주는 월세로 25만원을 받는다고 약속해 놓은 상황이어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쪽방 주민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기자가 지난 24일 쪽방촌을 찾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이번 이주조치에 불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금세 느낄수 있었다. 쪽방 주민 이모씨는 욕설과 함께 “중구에서 용산구로 간다는 것 자체가 여기서 쫓아내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감사의 선물로 내 시체를 내주겠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또 다른 쪽방민 김모씨는 “정말 아무 얘기도 들은 바가 없다"면서 " 나는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이 절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만약 용산구로 이주 후에도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나라에서 나와 주민들에게 죽으라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쪽방민은 “돈만 많이 주면 갈 생각이 있다”거나 “친한 이웃과 같이 가면 가겠다” 또는 “그냥 가만히 우리를 둬라” 등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쪽방주민 이주와 관련, 중구청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중구 도심재생과로 연락했지만 “내부적인 상황으로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또한 A업체 대표에게 수차례 통화연결을 시도했지만 무위에 그첬다.

쪽방촌 주민들이 모여서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주현태 기자 gun1313@hankooki.com

◇ 쪽방 주민들이 이주하는 용산구 지역도 ‘재개발 추진’ 지역

중구 쪽방 주민이 이주하려는 용산구 갈월동, 동자동, 후암동도 사실은 쪽방촌이 많은 동네로 재개발지역에 포함된 곳이다. 즉 용산구에서도 재개발이 추진되면 용산구에 이번에 오게되는 쪽방 주민들은 다시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지난해 12월 마포구 아현2구역에서 연속되는 재개발로 인해 30대 남성 박모씨가 자살하는 사건까지 불거진바 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거주지를 잃은 데 따른 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박씨가 거주했던 아현2구역은 지난 2016년 6월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후 재건축이 진행됐고, 지난 8월부터 24차례나 강제 퇴거 집행이 이뤄진 곳이다.

박씨는 지난해 11월30일 마지막으로 이주한 곳까지 또다시 강제집행으로 철거되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산구 관계자는 “쪽방 주민들이 이주하고 얼마 안돼 용산구 쪽방 지역에서도 재개발이 이뤄진다고 하면 고시원 건물주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하다. 용산구에서도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쪽방 주민을 또 다른 쪽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인데 나중에 그들이 서 있을 곳이 과연 어디겠는가”라며 “지금부터라도 그들의 안락한 주거환경을 위해 긴밀한 협의와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한 복지전문인은 “누구나 거주 이전에 개인적인 자유가 있다"고 전제한뒤 "도시환경정비사업만을 위해 당사자인 쪽방 주민의 의견을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만큼 이번 이주계획은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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