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인사위 설치는 공무직의 ‘공무원과 같은 지위 상승’ 예고"

공무직 “공무직의 불안정한 신분과 열악한 임금·처우 개선이 시급해”

서울시공무원노조합원들이 '공무직 조례안' 철회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주현태 기자] 서울시의회의 ‘공무직 차별 금지 조례안(이하 공무직 조례안)’ 처리가 가시화한 가운데 서울시 공무직과 공무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조례안이 과연 오는 6일 본회의에 상정돼 통과될 수 있을지 공무원들과 공무직원들이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공무직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 근로자를 말한다. 공무직의 주 업무는 청소, 경비, 기계 정비, 도로 보수, 주차, 사무실 업무보조, 매표 등이다.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23일 제289회 임시회를 개회해 상임위원회별 활동을 거쳐 15일간 안건을 처리할 방침이다. 이번 임시회 처리안건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서울시 공무직 채용 및 복무 등에 관한 조례안’을 꼽을 수 있다.

해당 ‘공무직 조례안’ 가운데 △서울시 공무직 고용안정과 권익보호 △체계적인 권리와 차별적 처우 금지 등은 서울시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크게 반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례안에서는 동종·유사업무 종사 공무원보다 보수·복무 등 노동조건에서 불리한 차별적 처우를 받는 것에 대한 금지와 공무직 권익보호를 위한 공무직 인사관리위원회 설치 내용도 포함돼 있다.

현재 국회에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직근로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공무원노조측은 조례안 내용과 관련해 “공무직 인사위원회가 설치되는 것은 ‘공무직’에 대한 상위 법령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직종을 서울시가 창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서울시라는 지방자치단체가 법령 범위 밖에서 조례를 제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인사위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공무직에 대한 임면권만 서울시장이 맡고 나머지 △공무직 정원조정 △채용·해고 △전보결정 △고충처리 같은 사항 등의 권한을 인사위원회가 행사토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꼽고 있다. 이는 공무직이 공무원과 다를 바 없는 ‘공식적인 지위 상승’을 예고하고 있어 문제가 적지 않다는 주장인 셈이다.

반면 서울지역공무직 노조 측은 “공무직의 불안정한 신분과 열악한 임금·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며 “공무직은 상시·지속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사업소별이나 부서별로 임의적·자의적 기준에 따라 활용인력을 배치해 왔다"고 지적했다. 즉 공무직 노조측은 "이에 인사관리위원회를 설치해 통합적·합리적 관리의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무직 노조 관계자는 “공무직 결원 발생 시 적시에 채용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과도하게 다른 업무까지 맡아서 해결해야 하므로 과부하가 발생하곤 했다”며 “공무직 직종분류가 현실과 맞지 않은 점, 인사·급여·복무관리 시스템 미비, 신분증·경력증명서 발급의 어려움 등은 인사위원회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공무원 노조를 대변하는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이 공청회에서 '공무직 조례안’에 대한 진술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시의회TV 캡처

특히 이번 조례안에는 20년 이상 공무직 근속자는 정년 전 퇴직하는 경우 명예퇴직수당을 받는다고 명시돼 있어 또 다른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용산구청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공무직들이 그렇게 공무원들이랑 비교하고 싶으면 시험을 보고 들어오면 될 일이지 공부하고 싶지는 않고, 대우는 받고 싶다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면서 "지금도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당당히 공직에 들어오는 40대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공무원을 희망하는 사람은 보통 퇴직 후에도 받게 되는 안정적인 퇴직금을 첫번째 장점으로 꼽는다"면서 "헌데 공무직이 명예퇴직수당 등 공무원의 퇴직금 제도 마저 따라하려고 한다면 문제가 아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포구청의 한 주무관은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공무직원들이 정상적으로 채용되기도 하지만 구청장이나 기초의원들의 추천이나, 고위공무원의 추천으로 채용되기도 한다"면서 "그렇다면 공무직이 별정직(단체장 보좌업무) 공무원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솔직히 공무원 체계를 허물어뜨리는 악성 조례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모 팀장은 “몇 주요 인물의 추천을 받아 채용되는 공무직원들을 알고 있다. 공무직에게 이런 혜택을 다 제공해놓고, 공무원들이 거세게 반발한다면 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이 감당할 수 있겠냐”고 되묻기도 했다.

공무원들이 공무직의 처우 개선에 대해 반발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힘들게 공부해 필기·면접 등 높은 관문을 뚫고 공무원이 된 반면 공무직은 청소 경비 등 단순노무직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 환경이 만들어지는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서울시 공무원노조가 8월 초 공무직 조례안의 주요 내용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공무원들의 다수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2001명 중 94%(1880명)는 공무직과 공무원을 비교해 차별 여부를 따지는 데 대해 반대의 뜻을 나타냈으며, 86.1%(1722명)는 명예퇴직 수당 지급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는 얘기다.

공무직 조합원들이 공무직 조례안의 요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모 구청에서 화장실을 청소하는 공무직 직원에게 공무직 조례에 관해 물었다. 그 직원은 “최근에 친했던 공무원들의 싸늘한 시선에 이유모를 억울함을 느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됐다”며 “공무원분들이 왜 싫어하는지 이해는 하겠지만, 몸이 아픈 동료가 갑자기 일을 그만둬서 남겨진 동료의 업무를 내가 맡아 힘든 부분도 있으니 그런 점들을 잘 헤아리고 이해해주면 고맙겠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우리(공무직)는 업무 자체가 몸으로 하는 힘든 일인데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환경에서 나름 열심히 일해왔다”며 “열심히 사는 우리공무직들을 조례라는 제도를 통해 더 챙겨준다는데 당연히 좋을 수 밖에 없다”고 환영의 뜻을 전했다.

중재역할을 해야 하는 서울시의 경우 난감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의원들의 뜻을 수용해 원안을 통과시키자니 공무원 노조 반발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반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천명해온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정 운영방침을 감안하면 공무직 처우 개선에 발벗고 나설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현실과 마주친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무직을 2012년부터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위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왔다”며 “공무직 조례제정 기본 취지는 동의하지만, 서울시 집행부는 매년 공무직과 단체 교섭을 통해 공무직 처우 개선을 해오고 있는 만큼 조례안의 근로조건이나 보수는 사적 자치의 원칙과 다소 합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공무직 역시 시민에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라는 점에서 공무원과 동일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민간 근로자보다 더 높은 복무 규범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공무원과 공무직간 갈등이 고조되자 지난달 22일 서울시, 시의회, 공무원노조, 공무직노조 등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공청회를 열기도 했지만 견해 차이를 좁히기에는 간극이 너무 커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23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는 공무원 400여명이 모여 ‘공무직 특혜 조례 강행 규탄 및 철회 축구 결의대회’를 개최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같은 날 시의회에서 500m 떨어진 서울광장에서는 서울지역 공무직지부가 ‘공무직 조례’ 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상황이 연출됐다. 한 지붕 두가족의 '맞시위'가 거의 같은 공간내에서 이뤄지며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공청회 결과를 바탕으로 조례안을 상정한다는 계획이지만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한 상태다. 이에 오는 6일 '공무직 조례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조례안은 이미 다수 시의원이 찬성 의견을 밝혀 통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공무직 조례안’을 강력하게 찬성하는 서울시의회 모 의원은 “공무원들과 공무직을 합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 ‘공무직’ 하나만 봐야 한다”며 “현재 대부분 합의를 이뤄냈지만 좁히지 못한 부분이 있어 논의중”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그는 “조례안은 상정되고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공무직에 대해 공무원과 같은 조건을 부여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서울시를 만들기 위해 이 조례안은 반드시 본회의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 내 공무원 정원은 올해 1월 기준 시청 공무원 1만157명, 지자체 공무원 3만3007명으로 총 4만3164명이며, 공무직 직원수는 올해 4월말 기준으로 총 205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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