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노동생산성'이야말로 국가의 명운을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 지표"
한국민의 노동생산성, 시간당 37달러… 독일(72.2달러)과 미국(72.1달러)의 51% 수준 불과
  • 이준정 과학기술 칼럼니스트·미래탐험연구소 대표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국가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꽤 많다. 경제력. 군사력 등 숫자나 파워에 근거한 지표뿐 아니라 지식이나 행복 등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지표 등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간명하게 국가경쟁력을 잴 수 있는 척도를 꼽자면 노동생산성을 들 수 있을듯 싶다. 국민이 땀흘리고 노력한 뒤 벌어들이거나 얻어낼 수 있는 것을 명쾌한 숫자로 구체화한 것이 노동생산성이기 때문이다.

국가 별 노동생산성을 비교한 OECD자료(2017년 기준)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37달러다. 독일(72.2달러)과 미국(72.1달러)의 51% 수준에 그친다는 점을 금세 알 수 있다. 아울러 19개 유로존 국가들(62.9달러), 28개 EU국가들(56.6달러), 그리고 OECD 평균(54.8달러)보다도 훨씬 낮다. 최근 반도체공정의 특수부자재로 무역전쟁을 일으킨 일본(46.1달러)과 비교해봐도 80% 수준에 불과하다.

'노동생산성'이란 투입 노동량 대비 생산가치를 뜻한다. 노동생산성이 높은 국가는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고가상품을 주로 생산하는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의 작업시간보다 노동의 질이 중요하다. 반면 노동생산성이 낮은 산업구조에서는 노동시간을 늘려 생산성을 높이려 한다. 노동생산성은 그 나라의 산업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의 재능이나 지적 수준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국가별 노동생산성 비교는 국가 별 산업구조를 극명하게 투영시켜주는 가늠자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노동생산성이 유럽 국가들이나 일본보다 낮은 원인으로는 우선 '저가상품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를 꼽을 수 있다.

  • 그림2 국가별 노동생산성 비교(2017년 기준)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들의 가격과 용도는 천차만별하다. 유통되는 상품의 특성을 부가가치 측면에서 구분한다면 고품질 상품, 프리미엄 상품, 차별화 맞춤 상품, 지능화 상품의 4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그림 2).

일반적으로 상품을 고르는 기준은 가격이 낮으면서도 품질이 우수한 상품 즉, 가성비가 좋은 상품을 찾게 된다. 불황기나 레드 마켓에선 가성비가 매우 중요한 상품의 경쟁요소이다.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모델과 성능을 갖는 여러 가격대의 상품들로 시장에서 경쟁한다.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원가를 줄이고 성능과 디자인을 높이는 전략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소비자는 브랜드보다 가성비(價性比)를 따지면서 대상 상품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모델이나 성능을 선택한다. 생산자는 원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저임금 국가에 위탁생산하거나 자동화 설비에 의존해 단위 생산성을 높이게 된다. 상품의 마진이 적고 평균가격대가 낮으므로 노동생산성이 낮은 저임금 국가에서 주로 취급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의류, 생활용품, 각종 공산품류가 이에 해당되며 개발도상 국가들이 주로 취급하는 상품 군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비자들 혹은 호황기나 블루마켓의 소비자들이라면 상품가격보다는 고가 브랜드를 선호하고 최고의 성능과 품질을 가진 프리미엄 상품을 주로 찾는다. 생산자들은 생산가격이 높아지더라도 소비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프리미엄 상품을 개발해 가심비(價心比) 경쟁에 뛰어든다.

소비자들로부터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업체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이다. 고난도 제조기술을 활용하거나 특수 성능이 발휘하도록 독특한 상품을 설계해 기술적 차별성이 뚜렷이 드러날수록 상품경쟁력을 높인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제조업체들이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프리미엄 상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려면 당연히 기술력이 높은 고임금 노동자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제조 강국들이 추구하는 상품화 전략이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의 갤럭시 S10, 애플의 아이폰 X 등 고가의 스마트폰이나 고성능의 LG의 올레드 TV 또는 테슬라 전기차 모델 X 등이 이에 해당된다. 다만, 프리미엄 상품일지라도 상품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으므로 합리적 가격 책정이 매우 중요하다.

희귀한 질병을 앓는 환자라면 최고의 명의를 찾아 가서 최고 수준의 맞춤처방을 받아야만 한다. 산업생산에서도 독특한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원·부자재나 생산설비의 독특한 맞춤 처방이 필요하다. 특정상품의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선 반드시 확보해야할 원·부자재의 특성이나 특수 성능을 발휘할 부품 또는 장비가 있다. 예를 들면 반도체 생산기업이 7 나노미터 이하의 초미세 선폭의 고집적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네덜란드 ASML이 개발한 극자외선(EUV)노광장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광이란 설계된 패턴대로 실리콘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그리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때 EUV는 기존 불화아르곤(ArF)과 달리 광원을 여러 차례 반사시켜 웨이퍼에 닿게 하는 구조이므로 빛이 다층박막 특수거울에 반사되면서 광원 손실이 적도록 하는 마스크 보호용 펠리클(pelicle)이 핵심 부품이다. 펠리클은 두께가 50나노미터이하로 아주 얇은 초박막 필름형태로 만들어져야 한다. 일본의 미쓰이화학이 ASML과 협력하여 독점 개발했는데 국내 부품업체들(FST, 에스앤에스텍)이 개발하지 않으면 EUV전용 감광액(photoresist)처럼 일본 업체가 독점 공급하게 된다.

EUV처럼 특수설비엔 부자재들도 설비 맞춤형 특수재들이 공급되어야만 한다. 이 같은 맞춤상품들은 고도의 연구개발력을 기반으로 하므로 부가가치가 매우 높다. 국가의 산업구조가 이같이 특수 원·부자재나 특수설비를 생산 공급하는 경우엔 인당 노동생산성이 매우 높아진다. 차별화 맞춤상품의 특징은 가격 결정력이 판매자에게 있고 구매자는 시장상황이나 가격불문하고 이를 사용해야만 한다. 유럽 국가들이나 일본이 강한 산업영역이다.

차별화 맞춤상품보다 부가가치가 더 높은 상품은 지적재산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노우하우(knowhow), 상표권 상품이다. 고품질 상품이라도 시장에서 인정받는 브랜드가 아니면 경쟁력이 위축된다. 시스템을 구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전체 시장을 지배한다.

예를 들면 구글이 공급하는 안드로이드는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독보적인 통신칩 설계기술을 보유한 퀄컴이나 모바일 CPU를 설계하는 ARM은 스마트폰 판매이익의 상당부분을 로얄티로 가져간다. 제조업에서도 특수 설비제작 공급업체나 제조공법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면 상품생산 이익금의 상당부분을 로얄티로 회수해 간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노동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소프트웨어, 설비 엔지니어링, 특허권 등을 무기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국민 소득이 선진 국가들 수준으로 상승하려면 바로 서구 선진국들이 지배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및 엔지니어링 기술을 보유하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

최근 일본의 아베정권이 반도체 핵심소재들을 무기로 무역전쟁을 일으키면서 부품소재기술력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높이는 기회가 되고 있다. 정부는 전 국가적 역량을 모아 해당 소재들을 국산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차별화 맞춤상품 개발전략에 집중해야 하지만 이 역시 단기적이고 지엽적인 기술개발전략일 뿐이다. 5년 이후를 담보할 수 있는 국가의 미래역량을 구축하려면 전반적이고 포괄적인 지적재산 확보 전략에 치중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노동생산성이 시간당 37달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2020년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노동생산성을 미국이나 독일의 수준인 70달러 이상으로 높이는 미래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전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국민적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과 독일은 물론이고 전 유럽국가들,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도 지금 AI기술개발 전략을 국가기술개발의 핵심전략으로 삼아 미래경쟁력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초·중고등학교에 인공지능 과목을 신설하고, 대학에선 ‘인공지능+X’ 전략으로 전 학문영역에서 인공지능기술을 결합하는 학문적 도전이 한창이다.

특히 전 국민의 인공지능 소양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 교육시스템을 개발, 공급하고 있다. 불행이지만 대한민국은 국력을 모으는 AI 기술개발전략이 없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기술 개발을 강조한 이유를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눈앞의 몇 가지 부품소재만으론 대한민국의 미래가 새롭게 열리지 않는다. 다시금 소프트웨어의 로열티에 옥죄어 살게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서둘러 대통령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국가기술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전 국가의 역량을 여기에 모을 수 있는 전략적 사고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 미래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이 뛰어나 '미래탐험가'로 불린다.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객원교수, 포항공과대학 겸직교수. 포항산업기술연구원 연구위원, 지식경제부 기술지원(금속부문)단장 등을 역임했다.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요즘은 미래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과학칼럼니스트로 맹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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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9/08/21 07:30:18 수정시간 : 2019/08/21 07: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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