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월요일, 코스피 2% 폭락 및 코스닥은 -7%로 장중 사이드카까지 발동

5조 8000억 규모 추경 통과됐지만 소재 및 부품 국산화는 갈 길 멀어...

정부는 반일 감정 조장 보다는 일본과의 협상카드 고심해 문제 풀어가야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전문가 칼럼=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한국에 대한 2차 경제보복을 감행했다. 사실 이 결정이 이뤄지기 하루 전 한국과 일본의 외교부장관이 태국 방콕에서 회담을 가졌지만 서로의 의견 차만 확인했을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의 중재 역시 미진해 별다른 성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말을 지나고 첫 월요일인 5일이 되자 한국 증시는 그야말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버금갈 정도로 투자심리가 악화되며 쏟아지는 매물 폭탄에 시달려야만 했다. 특히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하루 동안 사라진 시가총액이 약 50조원에 달할 만큼 대폭락 장세가 연출됐다. 코스닥시장에선 사이드카가 발동됐을 정도다. 사이드카는 주식시장에서 가격이 급 변동할 때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고, 거래를 중지시키기 위해 발동하는 긴급조치를 의미한다.

경기선행지수로서 미래의 경기를 미리 반영하는 주식시장에서 나타난 이같은 공포감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전체를 패닉속으로 밀어넣어버렸다. 이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발표한 대책들이 큰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는 시장의 판단이라고 해석할수도 있다.

아울러 부품·소재에 대한 국산화 과정이 멀고도 험한 길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5조 8000억 규모의 추경이 통과됐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금융시장 패닉현상이 나타난 것은 정부정책에 대한 불안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지 청와대는 남북경제협력을 통해 일본경제를 뛰어 넘겠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이번에야말로 절대 일본에게 굴복할 수 없다며 오히려 국민들에게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심정적으로는 이러한 반일감정이 이해가 가지만 시민들이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확연하게 구분돼야 한다. 지금처럼 사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반일감정을 더욱 격화시키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국산화와 수입다변화를 통해 이처럼 엄혹한 현실을 돌파하겠다고 한다면 청와대의 처방은 무모하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올해 2% 초반의 경제성장률 달성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의 태도는 실망스럽기만 하다.

특히 일본이 지금과 같은 무역분야에 대한 공격뿐만 아니라 향후 한국의 금융시장을 교란시키기 위한 3차 경제보복조치까지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사태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상황은 점점 더 첩첩산중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2의 IMF위기가 도래 하는게 아니냐는 우려 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정부가 발표한 대책만으로 이처럼 엄혹한 위기들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정부가 내세운 대책은 일본 소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을 중심으로 국산화에 박차를 가해 산업경쟁력을 키우고 일본의 압박으로부터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을 ‘소재·부품·장비 강국도약을 통한 제조업 르네상스 실현’이라고 표현하면서 다소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결국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그리고 대기업에 R&D 투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뜻이다. 실제 일본과 동등한 기술력을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또한 일각에서는 국내 중소기업도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와 같은 소재에 대해 일본과 유사한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가 존재한다며 걱정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포토레지스트의 경우에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지만 차세대 시스템 반도체에 꼭 필요한 EUV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국산기술을 갖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고순도 불화수소의 경우에도 액체의 경우에는 국산 기술력으로 어느 정도 대체가 가능하지만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기체 불화수소인 일명 에칭가스의 경우 대체 방안이 거의 없는 상태다.

또 다른 대처 방안인 수입다변화는 어떨까? 수입다변화 역시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등 다양한 곳으로부터 대체 가능한 소재 및 부품을 확보하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미 기술력을 검증받은 일본의 소재와 달리 제대로 된 검증을 받지 않은 부품을 사용할 경우 반도체 품질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막대한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한다. 사업을 하면서 눈에 뻔히 보이는 리스크를 선뜻 짊어질 사업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주요 대책들이 사실은 모두 '불확실 '하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경제와 산업과는 전혀 무관한 사안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일명 지소미아(GSOMIA)를 연장하지 않는 방안으로 일본을 압박하겠다는 얘기가 집권여당을 중심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경제문제에 안보문제까지 끌어들여 일본과의 관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우려스럽기만 하다.

물론 지소미아(GSOMIA)의 경우 크게 보면 한·미·일 3국 군사동맹의 한 틀이기 때문에 한국이 연장을 거부할 경우 미국이 개입해 일본과의 갈등을 중재해줄 수 있다는 기대는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만약 미국이 이 사태에 개입하길 꺼려하거나 오히려 일본 편을 들 경우 우리 정부와 국민은 막다른 길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카드는 그야말로 최후의 카드로 남겨둬야 하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

하지만 집권 여당은 이 방법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반일여론에 편승해 합리적이지 않은 각종 대책까지 마치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정부가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해 사태의 장기화를 막으면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카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시민들이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명백히 다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앞장서서 반일감정을 촉발시키는 행동은 지양해야만 한다. 아울러 가능한 한 최대한 빨리 대일 특사를 파견해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 역시 중요해 보인다. 동시에 대미특사를 파견해 미국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도 고려해볼만한 사안이다.

국민들은 정부와 여당이 이번 사태를 내년 총선 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권 유지를 위해 국가경제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면 국민 누구도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국가의 백년대계를 바라보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번 '화이트리스트 사태'를 풀어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조하현 연세대 교수 프로필 :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 금융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경제가 사회현상 뿐 아니라 정치적 흐름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의 광범위한 영향력과 다채로운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