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책 1호는 추경…할당관세 및 화학물질 인허가 단축과 연장근로 인정도 검토

2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의 강제징용 사죄 및 경제보복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일본 아베 총리의 모습을 합성한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일본 정부의 ‘한국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가) 제외’ 조치가 지난 24일 의견 수렴 절차까지 마무리되면서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수출 제품에 대해 지금까지는 3년에 한 번 포괄적으로 받던 허가를 매번 받아야 한다. 대상 품목은 식품과 목재를 제외하고 무려 1100여 개나 돼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의견 수렴에 앞서 개정안에는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뺄 필요가 있다”고 적시됐다.

개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핵심 내용이 바뀌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체적인 일정 확정만 남았을 뿐, 일본 내에서의 잠정적인 결정은 끝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결정이 현실화될 경우,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반발해 지난 1일 기습적으로 발표한 수출규제 조치에 이은 ‘추가 경제보복’이 가해지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통상적 절차에 따라 허가를 내준다고 밝히고 있지만, 작위적으로 판단해 불허할 수 있기 때문에 원활한 수출거래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한국을 경제위기 국가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큰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 결정은 우리의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각의 결정과 공표를 거쳐 3주 뒤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시행 시점은 8월 하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일본총리의 마지막 결심을 막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는 연일 아베 총리를 겨냥한 비판적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반복해 남기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핵심소재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국가적 과제가 됐다”고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다. 이낙연 총리 역시 “만약 일본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면 예기치 못한 사태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한일관계의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관련 고위관료들이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인한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하기 위해 다양한 대응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 투톱’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수출규제 발생 초기부터 현장 기업들과의 활발한 접촉을 통해 지원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단 당청의 ‘일본 화이트리스트 제외’ 대응책 1호는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로 모아지고 있다. 추경은 국회 제출 석달째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통과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야 합의 시 조속히 증액·삭감 심사를 완료할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은 "상반기 조기 집행에 따른 하반기 재정 보강을 위한 추경안의 신속 처리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경기 하방 리스크가 더 확대되는 상황에서 추경 신속 집행을 통해 적시에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올 경우, 관세를 깎아주는 ‘할당관세’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특정 수입 품목에 대해 최대 40%의 관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해주는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할당관세는 국가가 아니라 품목 기준으로 적용돼, 시행하게 되면 일본에서 수입하는 제품까지 관세를 면제해주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외 정부는 경제보복에 대응할 단기대책으로 기업들의 주요 화학물질 연구개발(R&D)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필요시 신규 화학물질의 신속한 출시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아울러 실증 테스트를 위한 특별연장근로 인정과 R&D 인력의 재량근로제 관련 지침도 이달 말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핵심 기술의 ‘탈(脫)일본’을 앞당기겠다는 구상을 다지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8·15 광복절과 이달 말께 이뤄질 일본의 개각, 10월 일왕 즉위식 등이 추가 경제보복 사태 전개 과정에서 중대한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따라 위기에 빠진 한일 관계의 국면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또한 최근 참의원 선거를 치른 일본이 9월 중에 개각을 단행하면 수출 규제 장기화에 관한 정책 전환이 이뤄질 여지가 남아 있다는 분석도 유력해 보인다.

다만 일왕 즉위식이 예정된 오는 10월22일 이전까지 한일관계의 경색이 풀리지 않을 경우, 이웃 국가인 한국의 축하 사절단이 없는 즉위식이 열리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 간 치열한 '수 싸움'이 예상된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은 이날 “정부는 정책적으로 단기적 효과를 떠나 수입선 다변화 등을 구상해 한국을 자립적인 수입·수출 국가로 만들어가야 하고, 수출규제의 직적접인 대상인 기업들은 정부보다 한발 더 자발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우리 정부가 일본에 대해 압박을 유지하되 준비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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