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부’ 억지 돕는 국내 언론·정치인들 각성해야
‘을사오적’도 일본과의 관계 염려하며 ‘을사늑약’ 찬성
  • 정치사회부 김동용 기자
[데일리한국 김동용 기자] “일본정부와 한국정부는 두 국가를 결합하는 이해공통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한국이 실지로 부강해졌다고 인정할 때’까지 아래에 열거한 조관(條款)을 약정한다.”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 체결된 외교권 양도 조약인 ‘을사늑약(乙巳勒約)’의 서문(序文)이다. ‘을사조약(乙巳條約)’으로도 불리는 이 조약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는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한국이 실지로 부강해졌다고 인정할 때까지’라는 문구다. 일본의 ‘조선 침탈’ 야욕을 ‘조력자’로 포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 조약에 찬성한 을사오적(乙巳五賊)이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완용 학부대신(現교육부장관)은 조약 체결 후 약 한달이 지난 1905년 12월 16일 고종 황제를 찾아가 “신들(을사오적)이 묘당(廟堂·조선시대 중앙행정기관인 의정부)에 있는 것은 염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시국을 보건대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것”이라고 변명했다.

이완용은 특히 “오늘날에 와서 갑자기 후회하면서 스스로 새 조약을 파기하고, 옛날의 권리를 만회하겠다고 할 수 있단 말이냐”며 “나중에는 국교 문제에서 감정을 야기시키지 않을 수 없으니, 어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일본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반발해 대(對) 한국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 조치로 보복에 나섰다. 이에 우리정부는 즉각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촉구하는 동시에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등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분주한 실정이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과의 경제 마찰은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이 가장 먼저 꺼내든 ‘수출 규제 품목’이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의 소재라는 점은 더욱 뼈 아픈 대목이다.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일본과의 원만한 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다만 일본 ‘아베 정부’의 억지 주장을 돕는 일부 국내 언론 보도와 정치인들의 발언은 ‘이완용의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진다면 무리일까.

앞서 아베 정부는 지난 10일 ‘한국에서 전략물자 불법 수출이 3배 증가했고,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 조선일보의 기사를 인용하며, 수출규제를 대북제재와 연관시키는 데 악용해 논란이 됐다.

이에 청와대가 ‘유엔 검증’을 제안하며 강경하게 대응하자, 일본정부는 ‘수출규제의 이유가 한국의 북한 밀반출은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섰지만, 논란의 계기를 마련한 언론 보도가 일본이 아닌 국내에서 나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착잡함을 떨칠 수 없었다.

일각에선 일본 관광을 취소하거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국민들을 지적하거나 조롱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살펴보면 ‘경제력이 앞서는 일본에 감정적인 대처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힘의 논리’가 우선이 되는 시각을 전제로 한 주장이다.

또한 한국인은 ‘감정적 대응에 치중’하는 민족으로, 일본인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민족으로 구분한 뒤 ‘이래서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얄팍한 선민의식이 내재된 언론 사설도 종종 눈에 띈다. 타국의 불합리한 경제보복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국민 개개인의 애국심을 역으로 계몽하려는 불편한 권위의식이 깔려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일부 보수단체가 개최한 ‘문재인 하야 촉구 집회’에서는 일본정부의 경제보복을 두고 “문재인정부의 모습이 해도 해도 너무해 참지 못해 보낸 메시지”라는 궤변까지 나왔다. 이에 열렬히 환호하며 박수를 보낸 집회 참석자들의 모습도 놀라웠지만, 해당 집회 영상이 게재된 유튜브에는 ‘빨갱이 보다 차라리 일본의 식민지가 낫다’는 등의 막말성 댓글 마저 게재돼 더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일각에선 일부 국내 정치인들이 현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과거에 발이 묶인 한일관계”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연방제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민족 주체의식이 부족한 자들로 몰아붙이려는 속셈”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한 무소속 이언주 의원, “결국 외교문제의 사법화가 낳은 비극”이라며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 등은 비교적 정제된 표현일 뿐, 결국 지향점은 ‘반(反)정부’로 귀결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결과만 놓고 봤을 때, 그간 과거사 관련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정부의 대일 외교 방식과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은 지적 받을 부분이 적지 않다.

다만 이는 모든 국민이 힘을 모아 현 상황을 타개한 후에 ‘시시비비’를 따져도 늦지 않다고 본다. 또한 한일 분쟁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직 ‘정쟁을 위한 비판’이나 ‘소모적 논쟁’에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오는 18일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청와대에서 머리를 맞댄다. 이번 회동에서 여야가 힘을 모아 국난(國難)을 헤쳐나갈 진정한 해법을 마련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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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9/07/17 08:15:17 수정시간 : 2019/07/17 08: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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