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학적 총선 준비도 중요하지만 총선구도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닌 경제라는 사실"

"이를 양 원장이 읽지 못한다면 총선뿐 아니라 차기 대선에서도 약이 아닌 독이 될수도 "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한 것에서 비롯돼"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국회의원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정치권의 시계는 내년 4·15총선을 기준으로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내년 국회의원 선거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중반에 실시되는 선거인만큼 중간 평가 성격이 강하다.

선거 결과에 따라 문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국정 운영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만약에 과반 의석을 달성한다면 하반기 국정 운영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문 대통령은 하반기 권력 누수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범보수진영이 과반을 달성하게 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대통령의 공약 및 혁신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가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에서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 주도권을 가져가기는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2016년 총선 패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진단이 있을 정도로 여소야대 정국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급격한 레임덕에 직면하며 국정 농단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유사한 사례는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으로 사면초가에 놓였지만 탄핵에 대한 국민 여론의 후폭풍으로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2006년 지방선거는 비켜가지 못했다.

낮은 대통령 지지율에다 개혁 과제가 좌초되면서 열린우리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역대급의 패배였다. 지방선거 완패 이후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력은 급격히 기울어졌다. 저조한 대통령 지지율과 지방선거 참패로 노 대통령이 기대했던 개혁 카드는 시도조차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모든 정당에 내년 국회의원 선거는 중요하지만 집권 여당에 있어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래서일까. 최근 여의도 정치권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핫 피플이 바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다.

양 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역임했다. 그래서 양정철 비서관을 줄여 ‘양비’로 부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양비’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양 원장이 보인 최근의 광폭 행보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외형으로만 보면 모든 선거를 다 건드리고 있다. 정보 실세라는 이름표가 붙는 서훈 국정원장과 저녁 회동을 가졌는데 야당으로부터 ‘총선 개입’이라며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양원장은 광화문에서 가진 정치토크에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해 또 한차례 뉴스인물로 부각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이해찬 당대표나 이인영 원내대표까지 언급하지 않는 대선 출마 권유를 공개석상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할 정도로 거침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반이나 남은 시점에 집권 여당의 정책연구원장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는 반응도 있다. 이 때문인지 대통령과 아무런 소통없이 자의적으로 발언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리는듯 싶다.

양원장의 거침없는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광역단체장이자 유력 대선후보들을 연거푸 만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연구원 간 상호 협력을 명분으로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났다. 드루킹 관련 의혹으로 재판 중인 김경수 경남지사도 만났다. 심지어 자신이 지사직에 출마하라고 해서 김 지사가 괜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위로의 말까지 전했다.

이쯤 되면 대선 후보나 당 대표의 행보라고 생각해도 믿을법 하다. 하지만 아직 국회의원 배지를 단 한 번도 달아보지 못한 정당 산하 연구원장의 움직임이라는 점이 오히려 눈길을 끈다.

양정철 원장이 이처럼 광폭 행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정권재창출 때문일 것이다. 이상적 가치를 품에 안고 출발했던 참여정부였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친노 세력은 한때 '폐족'이라는 멍에까지 뒤집어썼다. 노 대통령에게 2006년 지방선거 패배는 뼈아팠다. 임기 후반기 겨우 위안을 삼았던 이슈는 남북정상회담 정도였다.

학습효과도 있다. 2016년 막장 공천으로 선거 경쟁력을 상실한 새누리당의 몰락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전 그리고 무조건 총선이 되는 충분한 까닭이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하반기 국정 운영이 좌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반기 국정 운영에 마비가 와서 문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한다면 정권 재창출은 힘들어 진다. 또 총선 결과는 차기 대권 구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더불어민주당이 성공적인 성적을 거둔다면 범여권 진영의 차기 대권 구도는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사실상의 패배를 하게 된다면 범여권 진영 역시 차기 대권 후보쪽으로 급속히 무게 중심이 이동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총선이후 정국은 차기 대선 후보들간의 전쟁터가 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마지막으로 총선 결과에 따라 보수대통합을 포함한 정계 개편의 속도가 결정된다. 다음 대통령 선거가 후보들간의 대결 성격이 아니라 반(反)문재인 대 친(親)문재인의 성격이 된다면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복잡해진다. 이런 미묘한 시기에 양 원장의 등판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년 총선에 양 원장의 역할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과연 약일까 독일까.

우선 대통령과 민주당이 위기라는 인식에서 양 원장의 등장은 약이다. 내년 총선 결과에 대해 어느 누구도 안심하지 못하는 상태다. 선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대통령 지지율은 답보 상태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전후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대를 넘나들었다.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선거 중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4곳에서 승리한 결정적 배경은 후보 공천이 아니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둔 대통령 지지율은 낙관할 수준이 전혀 아니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실시한 조사(전국 약 1000여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 약 14~20%내외 성연령지역가중치 각 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문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 추이를 분석해 보았다.

지방선거 직후 조사에서 문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79%였다. 국정 운영을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총선을 1년도 채 남겨 두지 않은 가장 최근 조사(6월 4~5일)에서 문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는 46%로 같았다.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내년 선거는 지방선거처럼 ‘문 마케팅(문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보일 때 선거나 정치 이슈에서 문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워 호의적인 여론을 만들어내는 전략)’을 자유롭게 구사하기 어렵게 되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정체 상태인데 정당 지지율마저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황교안 전 총리가 전당대회 승리 후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상승세다. 최근 소속의원들의 막말 논란으로 한 풀 꺾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지난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분명히 달라졌다.

교통방송(tbs)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전국 약 1500여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약2.5%P 응답률 약 5~8%내외 성연령지역가중치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과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중도층 응답자들에게 ‘어느 당을 지지하는지’ 물어보았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직전만 하더라도 중도층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자유한국당보다 두 배 이상 앞섰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의 민생투어직전엔 중도층 지지율에서 두 정당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막말로 지난 두어 달 사이 중도층 표심에 변화가 있기는 했다.

지난 6월 3~5일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중도층 지지율은 40.1%로 자유한국당 보다 11.1%포인트 더 높았다. 차이를 벌리기는 했지만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쏟아낸 막말에 비하면 큰 변화는 아니다. 중도층은 선거 막판까지 어느 후보에게 투표해야 할지 고민하는 경향이 강하다. 박빙 승부처에서 당선과 낙선 여부를 좌우하는 중도층의 결정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중도층 지지율만 놓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다. 현재를 위기로 보는 또 다른 이유는 2016년 총선 트라우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직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23석 당선으로 1위 정당의 위치에 올랐다. 팽팽한 접전 지역에서 대체로 승리한 덕분이다. 비례대표까지 포함해 새누리당을 한 석 차이로 따돌렸다. 그렇지만 비례대표 투표(정당투표)는 사뭇 결과가 달랐다.

총선을 앞두고 창당한 국민의당이 선전하며 더불어민주당은 정당득표 3위 정당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전체 의석수 1위지만 정당 득표는 국민의당보다 못했다. 각 당의 후보가 지역에 출마하는 대결에서는 1표라도 더 얻으면 당선이지만 정당 투표는 전국적인 종합 평가다.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와 있다. 한국리서치가 한국일보의 의뢰를 받아 지난 6~7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4.1%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선거에 투표할 정당과 비례대표 후보에 투표할 정당’을 물어보았다.

일반적인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40%에 육박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 투표할 정당 질문에 23.9%였다. 자유한국당은 18.3%로 나타났다. 오차범위내 더불어민주당이 근소하게 앞서는 수준이다. 큰 차이는 아니다. 비례대표 투표 정당 질문에 더불어민주당 19.2%, 자유한국당 21.3%로 나왔다. 오차범위내 차이지만 자유한국당이 조금 더 앞서는 결과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선봉에 서 있는 정의당은 13.5%였다.

더불어민주당에 2016년 총선 트라우마가 떠오르게 되는 대목이다. 현재의 판세를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절체절명의 위기는 아닐지라도 총선 결과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더불어민주당이 안심하게 되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위기라는 인식에서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양 원장의 존재감은 당에 분명 약이다.

양 원장의 등장은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켜준다는 점에서 총선에 독이 되기보다는 약이 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양 원장을 일컬어 ‘권력디자이너’로 설명한다.

민주연구원장이라는 싱크탱크 좌장 역할을 자임한 배경엔 총선 준비를 일사분란하게 해 나간다는 의미로 읽힌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과 무관치 않다.

2016년 총선 전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를 공공연히 외칠 정도로 혁신 공천을 자신했다. 그렇지만 선거 컨트롤 타워는 없었고 다수의 미숙한 뱃사공들이 난립하면서 선거를 그르쳤다. 선거는 이념, 세대, 지역 기반을 장악해야 승리한다. 먼저 이념 기반이다. 선거에서 중간 지대로의 외연 확대가 아무리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지지층을 놓치면 말짱 도루묵이다. 참여정부는 자기 지지층을 잃고 지방선거에서 대패하면서 열린우리당의 간판마저 내리고 말았다.

양 원장의 존재는 학습 효과로부터 비롯된다. 친문과 친노세력이야말로 반드시 안고 가야할 핵심 지지층이다. 일각에서는 양 원장의 등장이 친문과 친노세력 강조로 비문 및 비노 세력과 갈등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하지만 선거는 다른 이야기다. 핵심 지지층을 다지는 일은 선거 운동의 기본 중 기본이다. 서훈 국정원장을 만난 것이 그저 식사 한 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 이슈를 비롯해 진보층의 지지를 총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지역 기반 역시 마찬가지다. 호남이라는 강력한 지역 기반을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내년 총선 승부처는 수도권과 영남이다. 총선 이후 대통령 선거까지 생각한다면 상징적 가치가 더 큰 지역은 영남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부산지역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부산울산경남 3 곳의 광역단체장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올해 들어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지만 최근 반등 조짐이 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보이고 있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실시한 조사(전국 약 1000여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 약 14~20%내외 성연령지역가중치 각 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영남 지역의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 추이를 분석해 보았다. 작년 지방선거 이후 영남지역의 대통령 지지율은 하락세다.

80% 가까이 올랐던 부산울산경남 대통령 지지율은 창원 성산구 및 통영고성 보궐 선거가 있었단 지난 3월 26~28일 조사에서 31%까지 미끄러졌다. 그러나 이달 4~5일 조사에서 35%로 반등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양정철 원장은 연구원 협력을 명분으로 김경수 경남지사와 회동했다. 지지율을 보면 지극히 전략적 행보다. 이념과 지역뿐 아니라 세대 기반 확보를 위해서라도 전략적인 준비는 매우 의미가 있다. 현 정부 들어 20대 특히 20대 남자 표심은 방향이 다양해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문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한 반응은 그때마다 달라진다.

암호화폐 가상 거래소 폐쇄 관련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발표했을 때 문 대통령의 20대 지지율은 급락하는 현상을 나타냈다.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인 6월 18~22일 실시한 조사(전국1501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2.5%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5.6%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20대 정당 지지율을 분석해 보았다.

20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64.4%였다. 자유한국당은 고작 8%에 불과했다. 그러나 같은 조사기관이 YTN의 의뢰를 받아 이번 달 3~5일 실시한 조사(전국2002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2.2%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6.1%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20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37.7%로 지방선거 직후 조사와 비교하면 30%포인트 가까이 빠졌다. 반면에 자유한국당은 22%로 더불어민주당과의 간격을 약 15%포인트 차이로 줄였다.

20대가 보수화된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인데 자유한국당과 차이가 점점 좁혀진다면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고민은 깊어지게 된다. 이 지점에서 민주연구원의 역할이 더욱 분명해진다.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앞두고 양 원장은 2030세대와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공천에서 청년 후보들의 기회를 강조하고 있다. 하락한 20대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체계적인 대응을 하는 모양새다. 전략적으로 총선을 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 원장의 역할은 문 대통령과 당에 보탬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양 원장의 등판은 총선에 약만 되는 것일까. 아니다. 본인 스스로의 문제로 총선에 그리고 문 대통령에게 위험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3년 전 총선에서 이한구 공천위원장이 새누리당의 운명에 결정적 타격을 줄 것으로 본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경제 전문가이고 중진의원으로 합리적인 의정 활동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시의 막장 공천은 여소야대 정국으로 이어지면서 대통령의 탄핵에 이르는 보수 몰락의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이한구 위원장이 대통령의 복심으로 인식되면서 당시 견제하는 세력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개인의 행동이 당 전체와 보수 진영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출발점이 된 사건이었다. 양 원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당내로 들어온 이후 양 원장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역대 정당 산하 정책연구원장이 양 원장 수준의 행보를 한 적은 없었다.

가깝게는 자유한국당의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과 비교되는 활동 폭이다. 비공개이고 사적인 모임이라고 하지만 서훈 국정원장과 사실상 독대를 한 것은 일개 연구원장의 정치적 범위를 넘는 일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의 비난이 쏟아졌다. 국내 정치 개입이라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지 않지만 양 원장의 행보를 경계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

알앤써치가 아시아투데이의 의뢰를 받아 지난 1~2일 실시한 조사(전국1009명 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6.7%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회동한 것을 두고 국내 정치 개입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결과 ‘주장에 동의한다’는 의견 39.6%,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 45.6%로 국내 정치 개입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전체 의견은 그렇지만 지역별로 살펴보면 온도차가 있다. 호남과 서울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회동’이 국내 정치 개입이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와 비동의 의견이 팽팽한 결과다.

그만큼 양 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예민한 상태다. 초지일관 전략적이고 공공적인 행보를 한다면 모를까 양 원장 자신이 총선을 좌우하는 논란의 중심에 선다면 문 대통령과 당에 도움이 되기보다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양 원장 자신에 대한 문제 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지지층을 결집하고 효과적인 총선 대비를 하더라도 내년 총선의 본질적인 성격을 몰라서는 안 된다.

대통령 임기의 중간 지점에 서 있는 내년 국회의원 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평가다. 남북 문제가 중요한 이슈이지만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기준은 경제다. 양 원장을 중심으로 내년 총선 대비를 지나치게 선거 공학적으로 대응한다면 경기 침체에 분노한 민심을 추스르기는커녕 도리어 악화되기 십상이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실시한 조사(전국 약 1000여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 약 14~20%내외 성연령지역가중치 각 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자영업층의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추이를 분석해 보았다.

임기초에 비해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많아진 응답자 층을 추적해 보면 20대, 영남, 자영업층이다. 이를 줄여 ‘이영자’라고 표현한다. 자영업층은 이들 중 가장 경제에 민감하다. 작년 지방선거 직후 조사(2018년 6월 14일)에서 자영업층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80%에 가까웠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60%에 육박했다. 그런데 미중간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부정적인 경제 지표가 발표되면서 자영업층의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향한 시선은 냉랭해졌다.

경남 지역 두 곳에서 국회 보궐 선거가 있었던 올해 3월 26~28일 조사에서 자영업층의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는 32%로 곤두박질 쳤다. 자영업층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34%로 저조한 결과였다. 이달 들어 자영업층의 대통령 지지율은 회복 조짐을 살짝 보이고 있지만 여당 지지율은 제자리 걸음이다.

정치 공학적인 총선 준비가 중요하겠지만 총선 구도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라 경제다. 이 흐름을 양 원장이 읽지 못한다면 총선뿐 아니라 차기 대선에서 약이 아니라 독이 될지 모르겠다.

미국 주류 정치의 이단아였던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 자리에 올린 두 주역은 보이지 않는 책사 데이비드 엑셀로드와 행동하는 정치인 램 임마누엘이었다. 두 사람의 역할이 없었다면 워싱턴 정치 햇병아리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하원의원 램 임마누엘은 의회내에서 오바마를 지지하는 세력을 구축하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냉혈한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오바마가 당선된 후 백악관에 입성하자 비서실장으로 정권이 안착하는데 큰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빌미로 오바마 대통령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는 전횡을 저지르지 않았다. 정권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미련 없이 워싱턴을 떠나 시카고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데이비드 엑셀로드는 오바마 대통령의 영원한 책사로 처음과 끝을 함께 했다. 아무런 공식적인 보직도 없이 백악관 수석고문으로 성공적인 대통령 리더십의 그림자가 되어 주었다.

양정철 원장은 문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대통령 당선 후에 양 원장은 일절 청와대 정치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긴 침묵을 깨고 집권 여당의 싱크탱크이자 다가오는 총선에 중심 역할을 하는 민주연구원의 장으로 귀환했다. 양 원장에 대한 평가는 지금부터다.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과 집권 여당의 총선 승리에 약이 될지 독이 될 지는 오롯이 양 원장 자신에게 달렸다.

굵직한 정치 공학만이 선거의 물꼬를 바꾸는 건 아니다. 사소한 일이 오히려 더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 페터 비에리의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한 대목은 반드시 새겨 볼만 하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정치컨설팅업체인 인사이트케이를 창업해 소장으로 독립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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