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 독립·정책지원 전문인력 확보…지자체와 협력·견제하는 지방의회

김정태 단장 “현 지방의회는 시스템 자체가 잘못돼…의회 직렬 독립해야”

서울시의회 임시회 본회의가 개회된 모습. 사진=서울시의회 제공
[데일리한국 주현태 기자] 지난 3월29일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지방자치분권시대로 향하는 길이 좀더 넓어졌다. 그동안 중앙에만 집중돼 있던 통치 권한이 각 지방정부로 분산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가시화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통치권과 행정권 일부가 중앙정부에서 지방 자치단체 등으로 이전되면 시장, 군수, 구청장 등 지자체장은 자신의 지역에서 결정권이 확대되는 등 위상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국회의결까지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하다. 지방분권화시대를 앞두고 지방의회와 지자체단체장과의 미묘한 힘겨루기 등 속사정을 두루 짚어본다.<편집자주>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법률안’에는 주민자치의 강화, 지방자치단체 조직구성 자율성 확대, 특례시 신설, 중앙-지방협력회의 구성 등 지방의 권한과 자율성을 늘리는 진일보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지자체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특히 새로운 법률안에는 그동안 기초·광역 의회의 숙원사업으로 꼽히던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 전문인력 확보’ 내용도 포함돼 있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정부가 지방의회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의회의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 전문인력 확보’가 실현되면 현 지방정부의 가장 큰 난제를 풀고 지자체의 실질적 위상과 영향력 제고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지방의회가 안고 있는 최대 고민으로는 사무직원의 임용이 지방자치단체 소속 지방공무원 중에서 전보되거나 파견되는 등의 형태를 띨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우선 꼽을 수 있다.

이같은 한계 때문에 지자체장으로부터 발령받은 공무원이나 전문인력 등은 지자체 의원들을 보좌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늘 승진 등 자신의 미래를 위해 지자체장의 눈치를 이리저리 살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A구청 구의회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의회에서 지내다 보면 공무원들은 두 가지 길로 나뉘게 된다”며 “튀지 않고 조용히 업무를 보는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승진에 대한 강한 욕구때문에 구청장과 친한 구의회 의원이나 구정에 영향력이 있는 구의원에게 로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의회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두 부류로 갈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후자의 경우 가장 큰 문제점은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구청장한테 충성을 다할 것인지, 현재 모시고 있는 구 의원의 말을 열심히 따라야할 지 눈치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직원도 “몇몇 구의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경우 나중에 구청으로 복귀했을 때 승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한다"면서 "구청장이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해 비판하고 지적하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수위 조절 등 일종의 '진정제' 역할도 겸해서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직원은 진정제 역할의 구체적 사례와 관련, "예를 들어 A의원이 B조례안을 만들고 싶을 때 보통 전문위원들을 찾아 상담을 받곤 한다"면서 "그런데 전문위원이 이때 적극적으로 답을 찾아주지 않고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약간의 차질이 불거질수도 있다"면서 "아마도 A 의원의 경우 조례안을 발의하기 위해 혼자서 많은 것들을 여기저기 알아봐야 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방자치법 제91조에 따르면 지자체와 지방의회는 상호견제와 균형·국민주권·민주주의 원리를 위해 지방의회 의장 추천을 통해 사무직원을 데려오는 추천권에 대한 권한을 조례의 제정을 통해 부여할 수 있다.

이에따라 대다수 지방의회는 인사권으로 눈치를 보는 공무원과 전문인력의 원활한 의회 업무를 위해 ‘의회 직원 추천 등에 관한 조례’를 따로 마련해 운영중이다.

이 조례안을 통해 지자체장들은 의회 사무과 직원을 대상으로 인사를 하는 경우, 구의회 의장의 추천을 받게 된다. 조례안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의장이 추천한 직원에 대한 인사를 거부해서는 안 되며,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사유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조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의 업무처리에 불만이 있는 지자체장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의회 직원에 대한 인사를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일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지자체장들이 인사권을 무기로 의회 직원을 입맛에 맞게 교체함으로써 의회를 마비시키는 일종의 전횡을 낳기도 한다. 지자체장이 의회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일종의 '인사 복수'인 셈이다.

또한 지방의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인사권을 비롯해 지방의회의 의회 전문인력이 너무 적다는 점이 꼽힌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경우 1인당 9명의 보좌직원을 둘 수 있다. 반면 광역의원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어 시간선택제로 전문직을 채용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물론 시간선택제 직원도 상임위원회 예산으로 채용하기는 한다. 다만 시간선택제 직원 한 명이 3명의 구의원을 지원하고 보좌하는 역할을 해야하므로 힘에 부칠 수 밖에 없다.

특히 기초의회 의원의 경우 단 한명의 보좌 요원도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경우 의정활동을 제대로 펼칠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기초의원들에게도 맡은 바 지역의 문제 해결사로서 해야 할 역할이 요구되고 있으나, 혼자만의 힘으로 는 이같은 요구를 파악하는 것 조차 버거울 수 밖에 없다.

만약 의회 직원에 대한 인사권이 지자체장이 아닌 의회 의장에게 있었다면, 또한 이들이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아니라 의회 직렬의 전문인력 공무원이었다면 ‘지자체장의 인사 복수’와 ‘굼벵이 의정활동’이라는 불편한 상황이 불거지지는 않았을 터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 전문인력 확보’라는 양대 축은 지방의회 의원들과 직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걸음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에 묻혀 그동안 존재감이 약하던 ‘지방의회’를 부각시킬 수 있는 계기로 만들수도 있다. ‘협력·소통과 견제·감시가 함께하는 지방분권’을 구체화하는 실질적인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태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지방분권TF 단장. 사진=주현태 기자 gun1313@hankooki.com
이런 점에서 김정태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지방분권 TF단장과의 본지 인터뷰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김정태 단장은 7일 “지난해 정부의 지방분권 로드맵과 추진계획에 이어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 초안도 나왔지만, 지방의회에 관련해서는 한 구절도 없었다”면서 “이에 서울시의회 지방분권TF 단장을 맡고 있던 제가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차원의 연합TF 구성을 제안했고, 송한준 회장(경기도의회 의장)이 이를 받아들여 구체화됐다"고 소개했다.

김단장은 "이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과 지방의회법 제정안을 준비하고 지금까지 달려왔다”고 강조했다.

김단장은 “지방의회 일반직 공무원들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업무의 연속성과 업무 역량의 축적이 어렵고 지방의회 업무의 전문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현재의 지방의회는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상태”라고 직격탄을 던졌다.

김 단장은 “현재 지방의회가 요구하는 것은 과하게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국회의원처럼 9명이나 되는 개인 보좌인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의회사무처에서 공개 채용하는 의원 1명당 1명 수준의 정책지원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일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본적인 인력 확보와 독립된 인사권을 갖고 필요한 인재를 뽑을 수 있는 구조를 원할뿐"이라며 “기술직 공무원처럼 ‘의회 공무원’ 직렬을 독립시켜 의회 공무원들만의 인사·교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김 단장은 지방의회 사무직원에 대한 임면·승진 등이 지자체장에게 부여돼 있는 것은 ‘기관대립형’ 제도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김 단장은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의 경우 잦은 인사이동에 따라 업무의 연속성은 물론 업무역량의 축적이 어려워 지방의회 자체의 전문화를 확보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이라며 "지방의회에서 업무를 보는 공무원들은 지자체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어 의회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더 나아가 지방의회는 ‘지방의회법’ 제정을 갈망하고 있다"면서 "국가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지역 경쟁력이 더욱더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지방분권화가 더욱 강력히 이뤄져야 한다"면서 "지자체장이 제대로 권한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으로 분할된 권한을 감시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의회도 발맞춰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방의회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국회의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중앙정치의 벽, 지방의회에 쓰이는 예산에 대한 주민들의 부정적인 인식 등 걸림돌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김정태 지방분권TF 단장이 강조한 ‘지방의회법’ 제정이 단기간 내에 이뤄질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다만 이번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방의회는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 전문인력 외에도 인사권 자치입법권, 청렴을 위한 지방공기업 이사장 인사청문회 등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의원들은 지방의회가 독립된 기관인 ‘의회’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끊임없이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은 의회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지방의회 실현과 진정한 주민자치시대를 구현하기 위해 의원소환제 등 제도적 보완과 함께 투명한 의정활동 등을 다짐하고 있다.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법률안’의 국회 제출이 지방분권화를 실질적으로 앞당기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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