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 대신 러시아로 시선 돌린 北

북미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선 ‘남북대화’가 전제돼야

문재인 대통령의 ‘4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의지에 김정은 대답은..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 앞마당에서 남북공동성언인 '판문점 선언'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꼭 1년 전 오늘인 2018년 4월27일, 남북한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로 전격 합의했다. 분단-전쟁-정전상태로 점철돼온 지난 70년의 적대적 대결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역사적인 결정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한이 비핵화와 교류협력에 방점을 찍자는 합의를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결의하기 위해 공식 문서에도 각자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바로 ‘4·27 판문점 선언’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11년 만에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을 토대로 채택된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을까. 아쉽지만, 평화는 아직 여물지 못했다. 북한은 군사합의 이행에 응답하지 않고 있고, 잇따른 군사행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비핵화 협상을 진행 중인 북미 간에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토대로 계획된 판문점선언 합의 사항들이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제반절차를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남북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핵심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호 적대행위를 중지하자’는 내용이다. 이는 남북이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필수적이라는 데 공감한 데 따른 합의사항이다. 특히 양측 국방장관이 양국 합의서에 서명한 것은 상호 적대행위 중지조치에 관한 이행력까지 담보된 것으로 평가된다. 65년간 지속돼온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역사적인 첫걸음을 뗀 셈이다.

판문점선언을 토대로 한 2019년의 시작은 희망적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며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 의지를 밝히자,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더 큰 폭의 속도 진전을 바란다고 화답한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핵 문제가 평화 진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지난 2월,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 절차와 방식에 합의하지 못했다. 남북·북미 비핵화 협상 진행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안에 대해 미국은 포괄적인 ‘빅딜’ 요구 입장을 거두지 않고 있다. 영변 핵실험장 폭파 등을 근거로 제재완화를 원하는 북측에게 미국은 ‘플러스 알파’를 포함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를 원하고 있다. 이는 4·27 판문점 선언에 비핵화 시한과 구체적인 로드맵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역시 ‘남북대화’가 전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26일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1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의 불확실성을 지워낸 경험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식적으로 4차 남북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별도로 전달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공개 메시지’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김 위원장의 ‘결단’ 뿐인 셈이다.

그러나 남북대화의 동력을 살리기는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은 이날 북한의 시선은 한반도가 아닌 러시아로 향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러정상회담의 결과 분석과 향후 대응책 마련에 모든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북한이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식에 불참한 이유로 풀이된다. 1주년을 기점으로 남북 분위기 반전에 대한 기대를 품고 갖가지 행사를 준비해온 우리 정부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원하는 단계적 비핵화 방안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집중적으로 캐 물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으로서는 러시아의 지지를 확인하게 되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적잖이 이용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하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흐름이다.

북한의 전통적인 혈맹국으로 분류되는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지지는 한반도 정세가 양분 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입장 확인과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 대통령이 북러정상회담과 같은 날인 지난 25일 러시아 안보 수장인 니콜라이 파트루쉐프 연방안보서기를 면담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 정부는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계기로 4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총력을 기울여 고비를 타개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5일 국회에서 열린 4·27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 정책세미나에 참석해 “지난 11일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확인된 대화 모멘텀을 살려 나가고, 북미대화가 조속히 재개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4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세 번째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져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청와대 역시 4차 남북정상회담에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각오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같은 날 남북정상회담 4차 이행추진위원회에서 “판문점 선언은 위대한 출발이지만 평화의 한반도로 가는 첫걸음일 뿐”이라면서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4차 남북정상회담을 차질 없이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현준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는 “아직 북미관계가 답보상태에 있기 때문에 당분간 관망하면서 기다릴 필요가 있는데, 너무 기다릴 수는 없다”면서 “이미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에 제시할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대북특사 등을 준비할 것으로 보여진다”며 4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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