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면 사고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익추구라는 가속장치 성능뿐 아니라 준법과 윤리경영을 위한 브레이크 성능 역시 고도화시켜야"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 세계 최초의 자동차 사고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면 모를까 세계 최초의 자동차 사고라니 하고 의아하게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있다.

먼저 세계 최초의 자동차가 어떤 차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진 자동차는 250년전인 1769년 프랑스 포병 장교인 퀴노(Nicolas Joseph Cugnot)가 제작한 파디에르(Fardier)라는 세 바퀴 증기자동차라는게 정설이다. 증기를 내 뿜으며 달리는 이 묵중한 자동차는 마차보다 느리고 심지어 사람이 걷는 속도보다 느린 시속 3.2㎞도 되지 않는 속도였기 때문에 브레이크 조차 장착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라고 해도 브레이크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사고는 필연적이었다.

퀴노가 파디에르를 타고 마을 외곽에서 시험주행을 하다가 언덕길에서 정지하지 못하고 남의 집 담에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동차 역사를 거슬러올라간다면 이것이 아마도 세계 최초의 자동차(그림 참조) 사고로 기록될 것으로 관측된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로 불리는 자동차의 그림. <출처=삼성화재 블로그>

자동차의 본질은 바로 달리는 것과 멈추는 것에 있다. 이 두가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돼야 자동차를 믿고 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허벌판에서 자동차를 운전한다면, 비록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도 차 사고를 일시적으로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나 도쿄,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차를 몰고 도로로 나온다면 누구나 미친 짓으로 생각할 것이 뻔하다.

자동차 대신 기업을 놓고 한번 생각해 보자. 기업을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가속장치는 이익추구 행위라고 할만 하다. 기업은 이익을 낼 수 있어야 존속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주식회사라면, 주주들에게 배당을 줄 수 있고, 투자자들에게 주가상승을 통한 이익회수도 보장할 수 있다.

문제는 가속장치만 있고 브레이크가 없다면 반드시 자동차 사고가 나게 되어 있는 것처럼, 이익추구장치만 작동하고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기업도 반드시 스캔들을 일으키거나 휘말릴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기업의 브레이크 장치를 우리는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법규 예방 시스템) 이라고 부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온갖 기업 관련 사고나 스캔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익추구를 위한 조직과 기능은 매우 고도화되어 있는 반면, 준법과 윤리를 위한 조직과 기능 즉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갑질 문제의 핵심은 바로 사회의 발전 속도에 못 미치는 기업윤리 의식과 제도에 있다고 봐야 한다. 최근 우리 재계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한진그룹 사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행각, 유명 프랜차이즈회사, 제약회사 등 기업의 규모나 업종을 불문하고 갑질이 만연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허허벌판이었던 곳이라도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정비되면 운전과 관련된 각종 규칙이나 규제가 필연적으로 촘촘하게 설계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기업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다수의 기업들이 마치 허허벌판에서 나홀로 운전하듯 '멋대로 경영'의 함정에 빠져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기업스캔들이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규명된 바 있다. 심지어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스캔들이 아니라 하도급법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입찰참가 자격 제한 요청 대상이 된 경우에도 기업의 수주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된 적도 있다.

일례로 현행 하도급법령에 따르면 법 위반행위에 대한 처분시 벌점을 부과하고, 3년간 벌점 누적 점수가 5점을 초과하게 되면 ‘공공 입찰 참가 제한’을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요청하도록 규정돼 있다.

최근 GS건설이 공공 입찰 참가 제한 요청 대상이 됐다는 공정거래위원회발 언론보도가 떠오른다. 법위반 유형을 살펴보면 서면 미발급과 대금 미지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도에 공사 하도급을 주면서 계약서를 작성해 교부하지 않았다거나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가 적발된 경우 등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S건설은 건설사로서는 2018년말 기준으로 시공능력 순위 국내 5위로 약 12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액을 달성한 대기업인데도 불구하고 거래의 기본인 계약서 교부나 대금 지급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사실상 브레이크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 자동차를 운행한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도 법위반 이후 특단의 조치를 취해 '준법'을 위한 시스템 정비에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앞으로도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GS건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달리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멈추는 것에는 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

멈추기 위한 투자에 인색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숨어 있다. 달려서 얻은 이익은 자기 주머니에 들어오지만, 멈추지 못해서 발생한 비용은 많은 주주들이 입게 된다. 문제는 이같은 사실을 주주들이 모르거나 설령 안다고 해도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점 때문에 기업의 법 위반행위는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익추구라는 가속장치만 성능을 높일 것이 아니라, 준법과 윤리경영을 위한 브레이크의 성능 역시 고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올들어 지난 1월 23일에 있었던 ‘공정경제 전략추진 회의’에서 공기업에 대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프로그램' 도입 확대를 언급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컴플라이언스는 준법경영 정도로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면 사고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멈출 수 있어야 제대로 달릴 수 있다.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 프로필

경북대학교 법학과와 同 국제대학원(국제법학)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2년 행정고등고시(36기, 법무행정) 합격후 1994년 공정위 약관심사과 사무관으로 임용된 이후, 하도급총괄과, 전자거래팀, 표시광고과 서기관, 약관심사팀장까지 공정위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6년 두산그룹 전략기획본부 법무실 상무로 자리를 옮긴 이후 2015년 4월까지 경영혁신본부 동반성장지원팀장(전무)으로 일했다. 2015년 말부터 법무법인(유) 지평의 고문으로 재직중이다. 공정위 업무에 두루 해박한것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특히 기업과 공정위간 민감한 이슈에 대해 매우 정통해 이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