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훈 산업2부 기자.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비극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를 두고 한 재계 임원이 한 말이다. 짧은 한마디가 왠지 귓전을 오래도록 맴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위해 헌신해온 조 회장은 고국이 아닌 이국땅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조 회장의 별세에 대해 한진그룹뿐 아니라 정·재계에서도 애도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현 정권이 조양호 회장을 죽였다”는 말도 새나왔다. 의도는 다를지언정 조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 믿는다.

조양호 회장의 별세를 일종의 ‘도구’삼아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조 회장의 별세는 정치적으로 악용돼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조 회장의 '비극적' 죽음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조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비춰진 그림자가 정권에 휘청대는 한국기업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살아 생전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적은 있으나, 실제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적은 없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죄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오히려 재계와 항공업계에서는 조 회장의 경영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조 회장은 글로벌 항공사들의 합종연횡과 줄도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키워낸 의지의 경영인으로 통했다.

하지만 지난해 사정기관의 수사 압박은 전혀 결이 달랐다. 조 회장에 대해 마치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이나 능력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듯 강압적인 수사를 밀어붙였다. 지난해에만 11개 사정기관이 한진그룹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수사를 펼쳤고, 관련 압수수색 횟수만 무려 18회에 달했다. 조 회장 자신이 포토라인에 선 횟수도 네 차례다.

올해 3월에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에서 밀려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실패는 국민연금의 반대가 결정타로 작용했다.

특히 목을 조이는 듯한 광범위한 수사 압박은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 회장의 부인과 자녀들의 ‘갑질 논란’ 등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들 논란을 지렛대 삼아 근로자 수십만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한진그룹에 대해 비상식에 가까운 수사를 밀어붙인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국내 항공산업을 이끈 거목이 갑자기 쓰러진 이유는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실패 등의 충격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유독 자신에게 혹독했던 원칙주의자 조 회장은 친분있는 정치인 하나 없었다고 한다. 조 회장은 다소 까칠하고 꼬장꼬장한 성격 탓에 일부 오해의 시선도 받았지만, ‘일을 잘하는 것이 경영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신념 하나로 일생을 워커홀릭으로 살아왔다. 워커홀릭이자 원칙주의자였던 조 회장의 죽음은 정권에 휘청대는 국내 기업사에 '비극'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올해는 대한항공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다. 조 회장은 지난 2008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담담히 말했다. "제 경영 철학 중 하나는 ‘쇼(show)’는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장은 효과가 없더라도 결국엔 ‘한우물을 판’ 기업들이 가치를 인정받겠지요....”

기자소개 이창훈 기자 다른기사보기
데일리한국 5줄 뉴스
데일리한국 뉴스스탠드
본 기사의 저작권은 한국미디어네트워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시간 : 2019/04/09 18:03:31 수정시간 : 2019/04/10 14:56:35
데일리한국 5줄 뉴스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