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행 법무법인 '민행' 대표변호사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춘래불사춘 느낌이 짙지만...."

"꽃샘추위와 미세먼지에 몸도 마음도 지쳐 기진맥진한 뒤에야 봄은 비로소 찾아온다"

법무법인 '민행(民幸)'의 조민행 대표 변호사.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조민행 법무법인 민행 대표변호사] 봄이 오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이 표현은 “오랑캐 땅에는 꽃이 없으니(胡地無花草),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春來不似春)”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쓴 소군원(昭君怨, 소군의 원망)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의 주인공 왕소군(王昭君)은 전한(前漢) 원제시절 궁녀로서 고대 중국 4대 미녀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녀가 화친의 의미로 장안을 떠나 흉노의 땅에 살면서 느꼈을 감정을 후대의 시인이 그려낸 표현이 바로 '춘래불사춘'인 셈이다. 이번 주 들어 서울에는 꽃이 피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목련이 피어나고, 개나리도 얼굴을 내민다. 오랑캐 땅과는 달리 여기저기 꽃이 넘쳐나지만 봄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월 28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베트남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은 결국 ‘합의 실패'로 끝났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역시 컸다. 백악관 기자회견장에 가 있던 앵커로부터 “왠지 느낌이 안 좋다”는 메시지를 들었을 때에도 필자는 회담의 성공을 낙관했다. 협상이 끝내 결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도 반신반의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마침 광화문에선 보수 진영의 집회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한 유명 연사가 일장 연설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번 회담 실패로 드디어 우리 민족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남남 갈등의 골이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3월 내내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했던 북미관계가 회복 조짐을 보이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 재무부의 추가 대북 제재 조치를 철회했다. 아울러 자신의 정치적 족쇄였던 ‘러시아 스캔들’ 특검에서 혐의를 대부분 벗어남으로써 향후 보다 자신 있게 북·미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개성 연락사무소에서 전격 철수했던 북측 인력들도 사흘만에 일부 복귀했다. ‘상부 지시'라며 전격 철수했던 북측 인원 일부가 연락사무소로 복귀한 것이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의견이 분분하다. 작년과 올해를 돌이켜보자. 대체로 역사는 반복되고, 내일의 답은 어제에 있거나 숨어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2017년 11월 29일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은 이 미사일이 화성-15형으로 최고 고도 4475㎞, 사거리 950㎞로 53분 간 비행했다면서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이 실현됐다”고 선언했다.

우리 국방부도 “정상 각도 발사시 1만3000㎞ 이상 비행 가능하다”면서 “이는 사거리 면에서 워싱턴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러다 핵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기이하게도 2018년 내내 민족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넘실댔다. 북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했고,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선언, 그리고 6·12 싱가포르 선언을 낳은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최초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희망과 기대 속에 맞이한 2019년 새해, 많은 이들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오리라고 믿었다.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던 선배 한분은 사석에서 우스갯소리로 이제 자신이 진보쪽으로 전향했다며, “개성에 법률사무소를 내고 싶다”고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신년사에서 세계를 향해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해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왔습니다.” 당연히 2월 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분단 이후 70년 열전(熱戰)과 냉전(冷戰)의 역사를 모두 마감하는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예견됐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정상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역설적이지만 2018년도 한반도를 지배한 화해와 협력 분위기는 북한 핵무력의 완성에 기인한다. 북한이 보유한 ‘절대반지’인 핵무기를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절박한 상태가 미국으로 하여금 ‘전략적 인내’를 내던지고 북한과의 협상 장에 나오게 만들었다.

북한 핵무력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상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결국 대화가 재개될 것이다. 지지부진한 대화 시도와 지루한 기다림이 당분간 계속될 지라도 결국 북미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 모두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마음대로 내릴 수도 없다. 날아가는 새가 갑자기 후진할 수 없듯이,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은 불가역적으로 한반도 평화의 신시대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핵무기가 갖는 국제정치적인 함의도 바로 이것이라고 믿는다.

필자는 보름여전 강원도 고성 화암사를 찾았다. 때 아닌 눈이 내려 금강산의 가장 남쪽 봉우리인 신선봉에 눈이 쌓이는 모습이 어슴프레 보였다. 하지만 겨울에도 못보던 눈을 3월에 보는 느낌은 참으로 묘했다.

봄은 결코 성큼성큼 단박에 오지 않는다. 꽃샘추위와 미세먼지에 몸도 마음도 지치고 지쳐 기진맥진해야 비로소 봄이 다가온다. 이번 주말에는 모처럼 한강변으로 산책을 다녀올 생각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새풀옷 입으시고 제 오시는 봄처녀’ 마중을 나가는 마음으로 말이다. '춘래불사춘'을 뛰어넘어 한반도에 진짜 봄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조민행 법무법인 '민행' 대표변호사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근무했고, 사법시험도 통과해 현재 법무법인 민행(民幸)의 대표 변호사로 재직중이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남북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새로운 세계를 여는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한반도종단철도(TKR)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돼 남북경협과 북방경제협력이 본격화되는 날을 꿈꾸는 '실천적 이상주의자'로 통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