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개 저축은행 2018년 당기순익 전년비 3.9%(423억) 늘어난 1조1185억

예보료·예대율·금융결제망 차별 등 각종 규제에 묶이자 역차별 불만 ‘팽배’

“저축은행에도 핀테크 업체만큼 숨통 틔워주고 경쟁 유도해야 할 것 아닌가”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 내부 풍경.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임진영 기자] 저축은행 업계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지만 호실적에 따른 축배를 들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업권에 대한 각종 고강도 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어 갈수록 영업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은 규제로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도 쉽사리 당국 등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 보기에 바쁜 모습이다.

‘고금리 장사’나 ‘일본계 대부업’과 같은 뿌리 깊은 부정적 인식에 더해 당국의 규제로 인해 저조한 실적이 전망되던 저축은행 업계가 예상을 뒤엎고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면서 업계 스스로도 규제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하기 ‘민망’한 상황이 연출된 탓이다.

당국에서도 유독 저축은행에 대해 일견 ‘가혹’해 보이는 규제를 펼치는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지난 2011년 터진 저축은행 부실사태로 국민경제가 크게 흔들린 ‘상흔’이 있어 저축은행들엔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 밀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영업 중인 대형 저축은행 대부분이 저축은행 부실이 터진 2011년 이후 영업을 시작한 신생업체들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 저축은행들로서는 이미 과거에 사라진 부실 저축은행들의 ‘과오’로 자신들이 과도한 규제를 받고 있어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 저축은행 업계, 지난해 순이익 1조원 넘겨 역대 최대 실적

26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현재 영업 중인 79개 저축은행들의 2018년 당기순이익은 전년(1조762억원) 대비 3.9%(423억원) 늘어난 1조118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저축은행 업계 사상 역대 최대 실적이다. 저축은행 업계는 2017년 처음으로 당기순이익 1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올해는 더욱 보폭을 넓혀 또 다시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금융당국의 저축은행 대출 금리 규제 등으로 저축은행 업권의 실적 부진이 예상됐지만 영업력 확대로 저축은행들의 대출 규모가 더욱 커지면서 이자이익이 크게 늘어난 것이 실적 경신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이처럼 저축은행 업권 실적이 역대 최대치를 넘어서는 등 호황을 보이고 있지만 저축은행들의 속내는 마냥 밝지만은 않다.

서울의 한 저축은행 지점 모습. 사진=연합뉴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당국의 규제 등으로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예상보다 높은 실적을 거뒀다”면서도 “다만, 이로 인해 당국에서 더 강한 규제를 시행할까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우선 저축은행 측은 당국이 갈수록 저축은행 업계를 대상으로 예금보험료(예보료)와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금잔액 비율)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다 타 업권과의 차별까지 더해지면서 갈수록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호소했다.

예보료는 금융사의 도산이나 폐업 등 부실 사태 발생 시 예금자의 원금을 최대 5000만원까지 보호해 주기 위해 금융사들이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적립해 놓은 ‘비상금’ 성격의 자금을 말한다.

현재 저축은행의 예금보험료율은 0.4%로 은행권이 예보료율 0.08%에 비해 5배나 더 높다.

이처럼 저축은행 업권의 예보료율이 은행권 대비 특히 높은 것은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당시 저축은행에 예금을 넣어둔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예보료가 지출된 데 따른 것이다.

예보료는 비상 상황 발생 시 은행권이나 보험, 증권업 등에서 모은 예보료도 타 업권에 보험 지급을 위해 쓰일 수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 만에 저축은행 115개사가 문을 닫았다. 이때 저축은행 업계에 투입된 예보금이 7조2892억원에 달한다. 이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16개 저축은행이 추가로 폐업하면서 이 과정에서 예보금 1조4412억원이 또 투입됐다.

그리고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터지면서 31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으면서 3조6279억원의 예보금이 지급됐다.

이처럼 최근 20년간 저축은행 부실로 인해 240여개 저축은행 중 162개가 사라졌고, 현재는 79개사만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축은행 예금자 보호를 위해 투입된 예보금이 12조3583억원에 달한다.

10조원이 넘는 예보금을 저축은행들이 낸 예보료만으로 충족할 수 없어 은행권 등에서 걷은 예보료가 부실 저축은행들을 정리하는데 사용됐다.

그 댓가로 현재 은행권이 0.08%, 증권업과 보험업이 0.15%의 예보료율을 적용받는 것과 달리 저축은행 업계는 0.4%의 예보료율을 적용받고 있다. 은행 대비 5배, 증권·보험 대비 2.5배 높은 예보료율을 적용받는 셈이다.

◇ 숨죽이던 저축은행 업계, 새 중앙회장 취임 계기 조심스럽게 ‘목소리’ 내는 중

그간 저축은행 업계는 타 금융업권 대비 수배 더 높은 예보료율을 적용받아 왔지만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는데 조심스러워했다.

우선 과거 부실사태로 인해 타 금융업권의 예보금 지원을 받아 부실업체를 정리한 ‘원죄’가 있는데다 높은 대출 금리나 일본계 대부업체가 뿌리가 된 몇몇 저축은행들에 대한 부정적인 대국민 이미지가 저축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저축은행 업계가 타 금융업권과의 차별을 문제삼으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최근 저축은행 업계를 대변하는 저축은행중앙회 수장이 새로 선임되면서 중앙회가 앞장서 타 금융업권과의 예보료율 형평성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1월 21일 새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으로 선임된 박재식 회장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예보료율 인하를 내세웠다.

지난 1월 21일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에 취임한 박재식 회장이 취임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저축은행중앙회 제공
취임 직후 박재식 회장은 곧바로 취재진에게 “규제 완화 1번은 예금보험료”라며 “제일 저축은행들이 아파하고 어려워하는 문제인 만큼, 해결은 쉽지 않지만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박 회장은 취임 이후 예보료율 인하를 위해 대내외적으로 부지런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저축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재식 회장이 취임 후 저축은행 회원사 및 업계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을 만나 예보료율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중으로 안다”며 “우선 적절하고 합리적인 예보료율 수준을 파악해 당국을 설득하는데 나서는 게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저축은행들의 또 다른 아픈 아킬레스건은 예대율 규제다. 지난 19일 금융위원회가 ‘상호저축은행업 감독규정’ 개정안을 통해 예대율(예금 잔액 대비 대출금 잔액 비중)을 시중은행과 동일한 100% 수준으로 낮추도록 한 것이다.

이는 대출금 잔액이 예금 잔액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으로, 저축은행 예대율이 10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할 경우 대출금 감축 예상 규모는 올해 6189억원, 내년 1조2617억원 등 앞으로 2년만에 총 1조8806억원의 대출 잔액 감소가 예상된다.

고금리 대출 상품 판매를 통한 이자수익으로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저축은행 업계로서는 대출금 규모가 예금 잔액 규모를 넘지 않도록 하려면 대출금 규모를 줄여 이자수익의 감소를 감수하거나 상대적으로 저금리인 예금 상품을 많이 판매해 예금 잔액 규모를 늘려야 한다.

결국 어느 쪽이든 어느 정도의 수익 감소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2월 25일 금융위원회가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은행 금융 결제망을 간편결제나 간편송금 서비스를 운영하는 핀테크 업체가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준 것에도 일부 대형 저축은행들을 중심으로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재 저축은행들은 저축은행중앙회의 금융결제망을 이용하고 있는데, 만약 핀테크 업체가 막강한 은행권 금융결제망을 사용해 금융사업을 영위하면 전통적인 여수신 업무를 맡고 있는 저축은행들이 오히려 금융사업에 있어서 영업범위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1월 16일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핀테크 현장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실제로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예금과 대출 업무를 하는 저축은행의 손발을 규제로 다 묶어두고, XX페이 같은 핀테크 업체에는 은행 결제망을 이용하라고 길을 열어주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억울해 했다.

또 다른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도 “핀테크 업체가 은행 금융결제망을 이용하게 되면 그만큼 저축은행 업계가 설 자리는 줄어서는 것”이라며 “적어도 저축은행에도 핀테크 업체만큼의 숨통은 틔워주고 경쟁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호소했다.

◇ 당국, “저축은행 부실사태 절대 막아야” VS 업계, “과거 부실사태 우리와 관계없는 일”

이 같은 저축은행 업계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의 강한 규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IMF외환위기부터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까지 최근 20년 사이 부실 저축은행들이 국민 가계 경제에 미친 악영향이 너무 컸다는 문제 인식이 금융당국의 기본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저신용자 대상의 고금리 대출이 빈번한 저축은행 업계에선 언제나 부실 우려가 상존하고 있다”며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저축은행 업계에선 언제든지 대형 부실 사태가 터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저축은행 업계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규제에 나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저축은행 업계는 많은 저축은행들이 탄탄한 자본력을 갖추고, 대출 금리를 선제적으로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행보가 너무 ‘걱정이 앞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들 스스로 당국의 규제가 내려오기 전에 먼저 대출 금리를 인하하고 대출 심사도 엄격히 해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대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많은 저축은행들이 부실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본금도 충실히 갖추도록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국의 우려는 지나치게 걱정이 앞서는 감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로 이미 문제가 있던 저축은행들이 대부분 정리된데다 현재 대형 저축은행 대부분이 2011년 이후 영업을 시작한 신생 업체들이란 측면에서 과거 업계 ‘원죄’에 현재 저축은행들이 갇혀 있어 억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현재 자산 규모 기준 저축은행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이 2013년, 2위 OK저축은행이 2014년 출범한 것을 비롯해 개인금융(리테일) 중심의 대형 저축은행인 웰컴저축은행도 2014년, JT친애저축은행이 2012년, 애큐온저축은행이 2014년 등 주요 저축은행 대다수가 2011년 이후에 설립됐다.

2014년에 설립된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우리 저축은행은 2011년 터진 저축은행 부실사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국이 과거에 저축은행 부실사태를 이유로 손발을 묶고 있다”며 “당국 조치에 앞서 대출 금리를 인하하고 자본금을 확충했는데도 이러한 노력은 전혀 봐주지 않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업계 전체적으로 역대 최대 실적에 해당하는 호황을 거두면서 규제 완화 목소리를 외칠만한 명분이 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실적이 잘 나오다 보니 오히려 규제 완화 등 업계가 요구하는 바를 강하게 요구하기에도 모양새가 곤란해졌다”며 “더 강한 규제가 내려올까 조심하고, 당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표정 관리’에 들어간 채 중앙회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업계가 지난해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올해는 대출 규제 등으로 정말 업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열심히 노력해 호실적을 거뒀는데도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에 저축은행들이 스스로 위축되고 있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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