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서훈 대북특사 파견해 5·26 남북정상회담과 1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이끈 전례

중재자→촉진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노선 수정…“북미 간 직접 대화할 역할 중요”

좌측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그래픽=최승훈 기자(seunghoon@hankooki.com)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달 28일 2차 북미정상회담 ‘비핵화 합의’ 결렬 이후 한반도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미국은 여전히 전면적 비핵화를 압박하고 있고, 이에 북한은 ‘새로운 길’이라는 벼랑 끝 도발 카드를 꺼내들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긴장감을 높이는 양국의 강대강 기싸움은 자칫 남북관계가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의 대치 국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 협상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북한은 최근 중국과 러시아, 유엔 등 주요국 대사를 소환했다. 대미정책 방향과 협상 전략을 고심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미국은 자국 내 16개 정보기관 수장인 댄 코츠 국가정보국 국장을 한국으로 보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게 했다. 대북정책 방향을 재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수정·보완하기 위한 사전 점검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외 북미 양국의 협상 전략은 베일에 휩싸여있지만 단 한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영변 핵 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단계적 접근’을 원하는 반면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 해제는 없다며 일괄타결 방식, 이른바 ‘빅딜’을 고집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지난 1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며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던 코츠 국가정보국장을 한국에 보낸 것은 ‘빅딜’ 전략의 유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북미 양국이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해 사례를 살펴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어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 전 회담 무산 위기 속에서 대북특사를 파견해 돌파구를 마련한 전례가 있다. 일종의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이었다. 이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5·26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결과적으로 1차 북미정상회담 개최까지 이끌어냈다. 현재는 당시보다 더 엄혹한 상황인 만큼, 문 대통령이 북미 간의 대화국면 재조성을 위해 다시 한번 ‘대북특사’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정상이 직접 회담까지 한 마당에 실무진의 물밑접촉보다는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날 수 있고, 성공 전례도 있는 특사가 답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대북특사 파견의 시점에 대해서는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신속한 파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협상 최종 결렬을 선언하는 상황까지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북특사로 나설 인물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특사 투톱’으로 활약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유력한 가운데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중책이 맡겨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다만 조 장관은 이미 후임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어 시기적으로 대북 정책 전면에 나설 때는 아니라는 점에서 정 실장과 서 원장에 다시 한번 무게가 실리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 직후 통화를 갖고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자”라고 합의한 만큼, 이른 시일 내에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해 줄 것도 요청했기에, 4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명분은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정한범 국방대학교 안보정책학과 교수 역시 4차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높게 내다봤다. 정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탐색하려고 하지 않을까 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4차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면서 “다만 북한의 입장이 어느 정도 정해져야 열릴 수 있기 때문에, 개최 시기는 다소 유동적”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남북정상의 집무실에 각각 개설된 ‘핫라인’ 통화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직접 만남을 조율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핫라인 통화에 대한 북측의 감청 우려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남북 핫라인 통화에 다른 나라의 감청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부는 올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의 노선을 수정했다. 외교부의 ‘2019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그간 북미 관계에 있어서 자임해온 ‘중재자’ 역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방침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간 대화 동력을 살리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한범 교수는 “중재자는 양측을 직접 오가면서 플레이어로 뛴다는 의미라면 촉진자는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는 의미가 조금 더 강하다”면서 “정부는 3자 중재도 중요하지만 북미가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모멘텀을 제공하는 촉진자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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