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부 안병용 기자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 8일 청와대 브리핑으로 인해 모처럼 ‘심쿵’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개각 명단을 전하며, 장관 내정자들을 ‘출생지’ 대신 ‘출신고’ 중심으로 분류해 발표한다고 설명했다. 좁게는 정치권, 넓게는 한국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학연·지연·혈연’ 정서 가운데 지연(地緣) 중심 문화를 탈피하기 위한 것이라 부연했다.

기자로서가 아닌 ‘국민’으로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개각 때마다 인사 배경을 놓고 인물의 자질이나 전문성이 아닌 영남과 호남 등 지역별로 몇 명 ‘낙점’ 받았는지부터 우선적으로 따지고 보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치·언론 문화에 5000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김 대변인의 발표 직후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진 조선일보 기자의 장관 내정자 ‘출생지’ 요구 장면을 목도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음 한편으로는 울컥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출생지 요구가 해당 기자의 자의적 판단보다는 ‘사측의 지시’였겠거니 하는 소소한 바람도 있었으나, 평소 그의 논조를 봤을 때 무리한 생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수 언론 기자가 ‘너무도’ 궁금해 한 장관 후보자들의 출생지는 보수 정당인 자유한국당에서도 ‘당연히’ 궁금한 사안이었던 모양이다. 윤재옥 한국당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장관 일곱 분 개각이 됐는데, TK(대구·경북) 출신은 한 명도 없다”며 의견을 물었다.

윤 의원이 이러한 질문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장관 내정자 7명을 출생지로 분류해 봤을 때 TK는 1명도 없고, 호남은 4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출신고로 분류했을 때는 호남은 0명이다. 이를 두고 한국당은 ‘청와대가 속였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한국당이 초점을 맞춘 지점은 바로 ‘TK 홀대론’인 듯 했다. TK는 ‘보수 적통’을 자임하는 한국당이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생존할 수 있는 보수 세력의 근간이 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TK 홀대론’은 한국당이 무척이나 예민해 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청와대로선 문재인정부 초대 행안부 수장인 김 장관이 김 대변인처럼 ‘지연 탈피’와 같은 개혁성이 담보된 설명을 하길 기대했을지 모른다. 아니, 당연히 그러리라 여겼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장관은 여권 내에서 ‘지역타파의 상징’으로 불리며 지역주의 정치 허물기 최선봉에 서왔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군포시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는 일념 하나로 안정적인 지역구를 떠나 여권의 불모지로 불리는 대구에 도전해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각각 한차례씩 낙선한 끝에 총선을 통해 수성구갑에 안착한 이력이 그의 모든 정치 인생을 대변하고 있다.

김 장관의 ‘지역주의 타파’ 행보는 우리나라의 해묵은 숙제인 지역주의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이끌어왔던 ‘3金(김대중·김영삼·김종필) 정치’ 청산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서울 종로에서 부산으로 ‘도장깨기’에 나섰던 故(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기 힘들었던 비주류 정치인의 반기라는 점에서 가히 박수 받을 만하다.

정치인으로서 늘 대구의 김부겸이 부산의 노무현과 비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물론적으로 봤을 때 TK가 ‘홀대론’을 주장한다고 한들 또한 이에 동조하는 한국당이 ‘청와대가 속였다’고 분개한다고 한들 단단한 내공의 김 장관이 쉽사리 흔들릴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한국당의 질문에 대해 TK를 지역구로 둔 현역 국회의원인 김 장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비판의 칼날을 청와대로 겨눴다. 그는 “늘 하던 방식이 아닌 그런 발상을 정부 내에서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치졸하다”고 아픈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 정말 몰라서 ‘모르겠다’고 한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서 1년7개월째 동고동락 하고 있는 김 장관의 대담한 발언에 간담이 서늘해졌다면 기자가 지나치게 민감한 것일까. 김 장관의 발언은 일종의 난(亂)에 버금가는, 즉 ‘역린’을 건드린 작심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장관이 표현한 ‘치졸한 발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최종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은 지난 1월25일 더불어민주당 원외지역위원장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지역주의 정치를 끝내는 것이 정치에 뛰어든 목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김 장관이 모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기에 ‘치졸’이라는 발언이 더욱 의아하게 다가온다.

물론 김 장관이 인사 관련 실무진의 다소 엉뚱한 발상이었을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또한 출생지 대신 출신고를 기준으로 발표한 것을 편법이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잘못을 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가 장관급 인사 즉 개각을 통해 전하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지연 탈피’라는 별도의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직 장관이 치졸하다고 표현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제된 표현은 아닌 듯 싶다.

김 장관에게 묻고 싶다. 청와대가 정치권이 지역주의 정치에 몰두하는 문화를 탈피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에 대해 ‘치졸’한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한국당이 5000만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1000만 TK의 민심만을 대변해 부처 수장의 입장을 캐묻고 추궁하는 행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답변을 듣고 싶다.

장관 인사 때마다 ‘후보 검증’이라는 본령(本領)을 떠나 ‘낙마시키기’가 일상화되다시피 한 인사청문회 분위기를 감안할 때 ‘TK 국회의원’인 김 장관의 ‘치졸’ 발언은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찌감치 일부 장관 내정자들을 겨냥해 벼르고 있는 일부 야당의 ‘낙마 작전’에 동조하고, 청와대를 향한 정치적 공세의 빌미를 제공해준 모양새가 연출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김 장관이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도 궁금하다.

한국 정치 최대 난제인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김 장관이 자신의 정치 인생과 판이한 잣대를 왜 하필 퇴임 직전에 청와대에 공개적으로 들이대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민주당 출신인 김 장관은 마지막 국회 업무보고에서 “(청와대가) 앞으로 그런 식으로 하면 제가 그 문제에 대해선 앞장서겠다”면서 여야 국회의원들을 향해 “여의도로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 달라”고 언급했다. 친정 식구에게도 국회의원으로서 따끔하게 할 일은 분명히 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취지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관행’과 ‘개혁’에 대해 분명한 선긋기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당과 TK측만 ‘국회의원 김부겸’을 쌍수로 환영한다면 여의도 복귀행의 빛이 바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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