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상호 비난’ 없는 북미관계…문 대통령 ‘중재역 분발’ 시사

문 대통령, ‘통상전문가·미국통’ 김현종 전면 배치…靑 “김현종, 美이 두려워하는 인물”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73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한 뒤 신임소위, 해군사관생도들에게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 뒤 가장 신경 썼던 국정 과제 중 하나는 ‘한반도 평화’였다. 여기에는 북한의 비핵화가 최우선으로 전제된다. 특히 비핵화 과정이 본격화되기 위해선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한국과 북한이든, 미국과 북한이든, 주고받는 ‘협상’이라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해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된 배경이다.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적지 않은 시간동안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머물다가 이를 극적으로 벗어나 지난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은 지난해 남북미 간 ‘비핵화’ 문제를 계기로 이뤄진 모두 4차례 정상회담의 ‘결과물’을 낳게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속에 그야말로 ‘세기의 담판’이란 평가를 받으며 치러졌지만, 결과적으로 헛물을 켠 것에 불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이 ‘결렬’될 것으로 예측한 외교 전문가와 언론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비핵화와 제제완화 수준에 대해 상호간 그저 얼마만큼 주고받을지 ‘빅딜이냐, 스몰딜이냐’에만 주목하고 전망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 문제의 당사자이자 북미 관계의 중재자를 자임한 문 대통령의 실망감은 더욱 컸을 것이라는 게 이번 회담 과정을 바라본 내·외신의 평가이기도 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복기해볼 때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여정에 진전이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북미정상 간의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비핵화 로드맵’이 도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핵화는 한국과 미국, 양국 모두 한반도 평화의 최우선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목표다. 그렇다면 ‘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항구적 평화체제’가 골자인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는 위기가 찾아온 것일까?

당장으로선 위기는 아니더라도 문 대통령의 평화구상이 ‘고비’를 맞은 것은 분명한 사실로 분석된다. 일각에서 제기했던 ‘종전선언’은 차치하고서라도 가능성이 높게 여겨졌던 ‘북미 정상의 일정 수준 대북제재 완화 합의’를 발판으로 철도·도로 연결,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경제협력(남북경협)에 탄력을 붙이겠다는 구상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남북경협은 문 대통령의 평화구상에서 남북통일로 가는 핵심 길목에 있는 장밋빛 구상이기도 하다.

더욱 불안한 것은 문 대통령 구상의 무산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고비의 ‘핵심’이 아니라는 데 있다. 여기에는 ‘한반도 정세’라는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대북 제재가 계속 이어지고, ‘완전하고 불가역적 비핵화’를 원하는 미국의 요구에 엇나가고 있는 북한의 협상 교착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지난 65년을 이어온 ‘불안한 평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실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새로운 길”을 언급하며, 더 이상 협상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다만 다행스러운 점도 분명 존재한다. 북미 정상이 상호 대화의 여지를 여전히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관계는 좋다”고 강조했고, 이에 김 위원장은 발언을 삼가고 있지만 북한 내부 어디에서도 ‘합의 결렬’의 책임을 물으며 미국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북미 정상 간의 이 같은 관계는 문 대통령으로 하여금 한반도 긴장이 다시 고조되지 않도록 대화의 동력을 잇게 해야 한다는 ‘중재역’으로서의 분발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분석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안보전략연구실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북한 양측이 다 동의해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양측의 기대수준을 조금 낮추는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양측이 중간지점으로 오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가 중간지점으로 오는 길을 만들어서 제시하고 갭을 메워줄 수 있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 실장은 이어 “이를 테면 남북경협을 우리가 하겠다는 식으로 미국의 부담을 줄여주고 북한에는 기대를 키워줘서 다시 합의장으로 이끌어 서명하도록 해야 우리의 민족 운명을 우리가 주인이 돼서 개척하는 한반도 운전자론이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 차원에서는 외교·안보라인을 부분적으로 재정비하며 향후 남북미를 둘러싼 비핵화 문제를 대비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국가안보실 1,2차장 동시 교체를 시작으로 지난 6일에는 이들 산하에 배치되는 안보전략비서관과 평화기획비서관에 새 인물을 기용한 것이 그것이다. 안보전략비서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운영을 총괄하면서 남북 9·19군사합의 이행을 군축 사안을 다루며, 평화기획비서관은 북한의 비핵화 관련 업무 등을 주로 맡으면서 남북경협이나 대북제재 완화도 주도한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김현종 신임 안보실 2차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신임 2차장은 노무현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이끌어 타결시키고, 문재인정부에서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트럼프 정부의 FTA 폐기 공세 속 재개정 협상 타결 과정을 총괄하는 등 미국과 질긴 인연을 고리로 폭넓은 관계를 맺어온 ‘미국통’으로 평가된다. 이에 비춰보면 문 대통령은 미국 내 인맥이 두터운 김 신임 2차장을 앞세워 대미(對美) 소통역량을 강화해 북·미 대화 중재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통상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김 신임 2차장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대북 제재완화에 소극적인 미국을 ‘경제’라는 이음새를 통해 설득시킴으로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불가역적인 단계로 진입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다지고 있는 것으로도 보여진다. 실제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신(新)베를린 선언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북경협 등 경제적 요소를 한반도 평화 정착의 핵심 요소로 강조해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김 신임 2차장은 미국이 두려워하는 인물”이라면서 “과거 한미FTA 교섭 과정에서 미국은 김현종이라는 인물의 능력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문 대통령은 이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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