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올해 경제성장률 2.6%로 하향 조정, 불확실성 증대 원인

산업에 대한 규제개혁 및 시장친화적 정책 통해 탈출구 찾아야

美中 무역협상 시한 연장, 큰 고비는 넘겼으나 과도한 기대는 금물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전문가 칼럼=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2.6%로 하향 조정하면서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피치(Fitch)는 이보다 낮은 2.5%라는 전망치를 제기하면서 한국정부가 펼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과 정부 주도의 재정지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민간투자 위축과 수출 둔화로 인해 저성장을 막는데 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이유까지 댔다.

사실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오던 주요 수출산업들이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는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고용유발효과가 큰 조선업과 자동차 제조업은 이미 구조조정 부진과 노사갈등은 물론 대내외적인 경영환경 악화로 인해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강한 반발로 매각이 지체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이는 거대 국내 조선기업들이 합병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다시 제고하고 경영을 정상화한다는 측면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인수 추진 등이 노조 등 외부변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약 21%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 역시 하락 사이클에 접어들면서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도체 수출액이 지난 1월 전년 동기대비 23.4%나 감소하면서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그동안 타 업종 대비 높은 이익률을 보이던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서 한국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혁신 정책의 일환으로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해 제4차 산업혁명에 부합되는 신산업 정책을 육성 및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규제개혁에 공감하고 기업들의 고충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규제 샌드박스의 승인 기간을 지금보다 더 단축하고 좀 더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도 나서야 한다.

현행 규정들은 원칙적인 금지를 위주로 하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그러나 향후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사업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개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다른 시급한 부분은 위축된 민간투자를 회복하는 일이다. 설비투자와 건설이 전년보다 각각 4% 및 5% 감소한 상황에서 최근 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면서 약 24조원에 이르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민간투자도 함께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일부 지역사업도 함께 포함된 것은 향후 정부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같은 점을 두루 살펴볼때 거시경제의 중요한 두 축인 수출이나 투자 부문이 정체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민간소비 부분은 완만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최근 민간소비는 작년에 비해 2.8% 증가했고 2005년 이후 처음으로 경제성장률을 넘어섰다.

작년 경제성장률은 2.7%였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경제성장률이 낮아짐에 따른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작년의 경제성장률은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민간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넘어선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민간소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안정적 고용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 1월 실업자 수가 122만명에 육박하고 실업률이 4.5%로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정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고용지표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재정을 투입해 만든 공공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결국 일자리는 민간기업들이 시장의 수요와 공급 원리에 맞게 만들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소득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최저임금인상 등 소득을 높여 성장을 하겠다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오히려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 하위 20% 저소득층에 대한 상위 20% 고소득층의 소득비율이 재작년 4.6배에서 작년 5.5배로 상승함으로써 오히려 소득분배가 악화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같은 기간중에 고소득층의 소득은 10% 증가한 반면 저소득층의 근로 소득이 37% 감소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최저임금을 주로 적용받는 저소득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인상되면서 오히려 실직되거나 근무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 각각 16.4%와 10.9%로 최저임금이 두 자리 수로 인상된 만큼 향후 인상속도를 늦추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처럼 고용과 소득이 모두 불안정한 상황에서 앞으로 이자율이 상승하는 경우 1,5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의 뇌관까지 터진다면 민간소비 역시 수렁으로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기존 정책의 과감한 전환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대외적인 환경을 짚어보면 그동안 불확실성을 높여 왔던 미·중 무역전쟁이 90일 간의 무역협상을 거치면서 다소 우호적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협상시한이 최근 연장되면서 향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주석이 3~4월경에 회담을 갖고 무역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다만 여전히 핵심 쟁점에 관해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기업과 정부부는 경계심을 결코 늦춰서는 안 된다.

오는 5월 중순부터 취임 3년차에 접어드는 현 집권층은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서는 안 된다. 기존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흐름 속에서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 대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작금의 각종 위기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 최고책임자의 올바른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이야 말로 집권층이 자신들만의 논리에 경도되기 보다는 시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시장 우선원칙에 더욱 충실해야 할 때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선택, 그리고 결단을 기대한다.

■ 조하현 연세대 교수 프로필 :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 금융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경제가 사회현상 뿐 아니라 정치적 흐름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의 광범위한 영향력과 다채로운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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