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기획 > 전문가 칼럼
  • [전문가 칼럼] 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자는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 기자 승인시간승인 2019.02.25 19:01
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 변호사 "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가 고귀하게 지켜온 민주주의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 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 변호사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 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 변호사]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최해 국회에서 열린 소위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 쏟아진 발언을 놓고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폭동’이라며, 5·18민주유공자를 ‘괴물 집단’, ‘세금을 축내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했으며 애기와 할머니, 할아버지도 ‘북한 특수군을 돕는 게릴라 세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5·18민주화운동을 훼손하고 부정한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법률과 판결을 중심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복기해봤다. 대법원 판례를 참조해 시간별로 압축해봤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12월 국회는 여야 합의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과 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특례법을 제정해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반란과 내란을 처벌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 이듬해인 1996년 2월에는 헌법재판소가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완비되게 됐다.

1995년 12월 국민의 요구에 따라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해 군사반란과 내란죄 등으로 전두환 신군부 34명을 기소했다. 전두환은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12·12는 군사반란이고,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 등 일련의 무력행사는 내란이라고 판결했다.

전두환 신군부는 12·12군사반란으로 군을 장악한 뒤,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1980년 5월 초순경부터 '시국수습방안' 등을 마련하고, 그해 5월 17일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강압하고 병기를 휴대한 병력으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고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시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의결·선포하게 했다.

이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공직자 숙정, 언론인 해직, 언론 통폐합 등을 대통령과 내각에 통보해 시행토록 함으로써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켰다.

신군부가 정권을 잡기 위해 무력을 동원해 했던 일련의 행위들이 국헌문란이요, 내란이다. 이것이 바로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민들이 전두환 신군부의 국헌문란 행위에 항의해 한 시위는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전두환 신군부의 주장을 하나하나 판단해 배척하고 군사반란과 내란을 인정했고, 5·18민주화운동을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판결했다.

5·18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0·26 사건으로 사망하자 국민들은 민주화를 기대하였으나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국민들의 소망은 좌절되고 말았다.

5·18민주화운동은 비록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지만, 전두환 정권은 5·18민주화운동이 원죄가 되어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됐다. 5·18민주화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6·29선언, 직선제 개헌에 이르기까지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동기와 힘을 제공한 정신적 지주였다. 5·18민주화운동이 보여준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정신, 인권정신, 평화정신은 오늘날까지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5·18민주화운동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23일 간의 단식투쟁을 하면서, “나는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백 수천 명의 민주시민이 광주에서 무참히 살상 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한 자책과 참회의 뜻을 표시하고자 단식투쟁을 한다”고 선언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7년 4월 전두환 신군부에 대한 대법원 유죄판결이 나자 5월 18일을 ‘5·18민주화운동기념일’로 지정했다. 그해 5월 18일 정부 주관 아래 첫 기념행사를 가졌고 그 후로 역대 정부는 국가 기념일로 정해 행사를 개최해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반란과 내란을 단죄하고, 5·18민주화운동의 법적인 기반과 역사적 평가를 완료한 업적을 남겼다.

2002년 1월 5·18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이 제정됐고, 2011년 5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게 됐다.

이처럼 5·18민주화운동은 법적인 판단과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건이다.

이번에 제기된 북한군 개입설과 가짜 유공자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따져보자.

북한군 개입설은 여러 차례 허위사실로 판명됐지만 특히 박근혜 정부에 의해 허위사실로 선언됐다. 박근혜 정부의 정홍원 국무총리는 2013년 6월 대정부질문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부의 판단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반사회적 글에 대해서는 방통위 심의를 거쳐 삭제 등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에 대해 검찰에 고발돼 수사가 진행 중으로, 검찰이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5·18민주유공자 중에 가짜 유공자가 있다는 주장은 5·18민주화운동의 본질과 무관한 내용이다. 5·18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에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유공자가 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부산을 떨 것 없이 가짜 유공자를 한 건이라도 발견했다면 국가보훈처에 신고하면 될 일이다. 국가보훈처가 지원하고 있는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고엽제후유(의)증환자, 특수임무유공자, 제대군인, 참전유공자 관련 법률에도 동일한 내용의 규정이 있다.

혹자는 5·18민주유공자에 대한 교육 및 취업 지원에 대해서도 마치 유독 특별한 혜택을 해주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국가보훈처가 지원하는 교육 및 취업 지원은 5·18민주유공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국가유공자, 보훈보상대상자, 고엽제후유(의)증환자, 특수임무유공자에게도 제공되고 있다. 이런 내용은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서 당장 확인할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훼손하고 부정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반하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주장이다. 단기적으로 정치적 이익을 챙길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이런 주장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에게 큰 손해를 입히는 부메랑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은 부마민주항쟁,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숭고하고 고귀한 민주주의 역사다. 5·18민주화운동을 훼손하고 부정하는 일은 더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자는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 변호사 프로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29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19기)을 수료했다. 1993년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초임 검사로 첫발을 내디딘후 법무부 법무심의관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형사제2부장검사, 인천지검 제1차장검사,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동민 대표변호사로 활동중이다. 강직하면서도 겸손해 인맥이 두터운 편이다. 법·제도를 통한 민생(民生) 개선이 관심사이며,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기자소개 다른기사보기
데일리한국 뉴스스탠드
본 기사의 저작권은 한국미디어네트워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시간 : 2019/02/25 19:01:04 수정시간 : 2020/02/07 14:03:46
데일리한국 지사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