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변호사 "유효수단 쥐고 있는 검찰과 법원이 나서야 산업재해 등 여러 사회문제들이 해결된다"

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변호사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 변호사] 하청업제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27일 가까스로 통과됐다.

'김용균법'은 지난 2016년 6월7일부터 지난해 11월1일까지 제출됐으나 답보상태에 머물던 의원 제출 법안 24개와 정부 제출 법안 3개 등 27개 법안이 정부 법안을 중심으로 종합·조정돼 만들어진 산물이다.

이 법률은 입법 이유를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 사망자 수가 연간 1,000여 명에 이르고 있고, 이는 주요 선진국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적시하고 있다.

산업재해는 기업과 노동계의 이해 대립이라는 구도에서 볼 일이 아니다. 이는 노동자의 생명권 보장에 관한 사안이다. 이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 사망자는 2017년 1,957명이고, 연간 근로자수 1만 명당 발생하는 업무상사고 사망자수의 비율을 말하는 사고성 사망만인율은 0.52이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2015년 기준 사고성 사망만인율은 우리나라 0.53, 일본 0.17, 독일 0.15, 미국 0.35, 영국 0.04로 우리나라가 월등하게 높다.

우리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망사고의 위험에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통계 숫자로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이같은 수치를 접하고도 획기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정부와 정치권의 수치일뿐 아니라 직무유기와 다름 없다고 본다.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산업재해를 줄이는데 발벗고 나서야만 한다.

이번에 통과된 '김용균법'이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며, 진일보된 방안을 담은 내용이라고 판단된다.

문제는 법률이 만들어졌다고 산업재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법률에 얼마나 강도높은 내용이 포함돼 있느냐에 달렸다. 법률을 제대로 집행해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국가의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줘야만 현장의 인식과 풍토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인식과 풍토를 획기적으로 변경하기 위한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산업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특히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을 엄정하게 적용하고 집행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 했다. 검찰은 2017년도 기준으로 산업안전보건법위반 사범 13,187명을 접수해 구속 기소 1명, 불구속 기소 612명, 약식 기소(벌금 기소) 1만 934명을 처리했다. 하나의 죄명으로 한 해 1만3,187명이 입건됐으므로 이는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산업안전보건법위반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법원은 2017년도에 약식명령 절차로 벌금을 선고한 사건을 제외하고 1심에서 710명을 재판해 이 가운데 유기징역 4명, 집행유예 137명, 벌금 478명, 선고유예 12명, 무죄 21명, 기타 58명으로 처리했다.

검찰과 법원의 통계를 정확하게 맞출 수는 없으나, 대략 한 해에 산업재해로 1만1,547명이 기소되는데, 이 가운데 실형 4명, 집행유예 137명, 무죄 등 9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1만1,319명, 약 95%가 벌금형을 받는다고 이해하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 해 2,000여 명이 사망하는데, 이 범죄의 95%를 벌금형으로 처리하고 있는 검찰과 법원의 인식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검찰과 법원이 우리 사회와 충분히 소통하고 있지 못 하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산업화 시기에 산업의 성장과 수출의 견인을 위해서, 그리고 과실 사고에 불과하다는 안일한 인식 때문에 산재사고가 가볍게 다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검찰과 법원이 아직도 과거의 사건처리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용균법'에서 형사처벌 조항은 얼마나 강화됐을까. 현행 법은 안전조치와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고용노동부는 입법예고 당시 처벌을 강화할 목적으로 법정 최저형을 ‘1년 이상’으로 두기로 하고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라고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부처협의 과정에서 법정 최저형을 두는 대신에 장기를 7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정도로 타협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에서 최종 통과된 내용은 현행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은 그대로 유지하되, ‘5년 이내에 재범한 자는 2분의 1까지 가중처벌 한다’고 재범자 가중처벌 조항을 두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김용균법은 법인에 대한 양벌규정에서 벌금형을 대폭 강화했다. 현행 법률은 법인에게 개개 처벌조항에 따른 벌금형을 그대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반해 안전조치와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망사고가 난 경우에는 법인에 대해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김용균법에 법정 최저형 조항이 삭제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법정 최저형이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관건은 김용균 법을 제대로 시행해 그 실효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산업재해 발생과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검찰과 법원의 양형기준을 강화해 엄정하게 김용균법을 집행해야만 한다.

특히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김용균법의 취지를 반영해 하루 빨리 산업안전보건법위반 사건에 관한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위반 사건에 관한 양형기준은 과실치사상범죄의 일부분으로 간략하게 규정돼 있고, 산업안전보건법의 법정형이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 보다 2년이나 무거움에도 오히려 같거나 낮게 규정돼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법위반 사건에 대한 양형기준을 과실치사상범죄로부터 분리하여 독립된 범죄군으로 설정하고, 범죄 유형별로 세분화하고 처벌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양형기준을 재수립한다. 검찰도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산업재해에 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체 양형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오래 전에 산업도시인 울산시에 환경오염이 심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에도 대부분의 환경사범에 대해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했었다. 그러다가 환경오염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검찰과 법원이 엄벌주의로 방향을 틀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자를 엄벌하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급변해 환경오염 사범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울산이 오늘날의 '청정 울산시'로 거듭나는 데는 그같은 아픈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울산시의 사례는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법만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인식과 풍토의 획기적인 변화다.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 검찰과 법원이 나서야 한다. 특히, 사회문제 해결에 어쩌면 가장 주효한 수단을 쥐고 있는 검찰과 법원이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김용균법의 실효성을 살리기 위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하루빨리 산업재해 사건에 관한 양형기준을 강화하기를 기대한다.

◆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 변호사 프로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29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19기)을 수료했다. 1993년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초임 검사로 첫발을 내디딘후 법무부 법무심의관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형사제2부장검사, 인천지검 제1차장검사,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동민 대표변호사로 활동중이다. 강직하면서도 겸손해 인맥이 두터운 편이다. 법·제도를 통한 민생(民生) 개선이 관심사이며,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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