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용 정치사회부 기자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언제부터인가 아침 기상을 시계 알람이 아닌 출입처인 정당의 문자 알림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업적 특성에서 비롯된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 이 같은 습관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띠리링’ 문자 울림에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햇살보다 눈부신 스마트폰의 환한 불빛을 마주하다보니 자주 보이는 단어가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특히 ‘문재인’과 ‘북한’이란 두 단어가 가장 많이 눈에 띈다.

이 두 낱말은 함께 붙어서 비슷한 내용으로 작성돼 익숙한 기계적인 시간에 맞춰 스마트폰에 수십, 수백 통씩 쌓여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주장이 담긴 보도자료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아침마다 눈과 귀를 통해 스마트폰에서 머릿속으로 차곡차곡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 꽤나 오래전 일인 듯 싶기도 하다. 언제부터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2018년 1월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때부터 그런 기미가 보였던 것 같다.

문자를 보낸 당사자는 정치권의 여소야대 주역들 가운데 4개 정당으로 구성된 야당이다. 집권여당과 정부를 견제하는 그들의 문자량은 제법 많다. 그 중에서도 ‘문재인+북한’ 문자 공세는 김정은 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올해 무술년(戊戌年)부터 그의 서울 방문이 유력시 되는 내년 기해년(己亥年)을 코앞에 둔 올 크리스마스(25일) 직전까지 근 1년간 계속되고 있다.

그 중의 한 문자 내용은 지나칠 정도로 도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대변인?’ 자국보다 북한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야유가 담긴 자극적인 도발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한지 불과 1년여 만에 11년 만의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성공하고, 한 해 동안 3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사상 첫 ‘북한 최고 지도자 남측 방문’이란 역사적인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으로부터 '북한 대변인'이라는 달갑잖은 별칭을 얻었다. 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에 빗대 ‘북한이 먼저다’라는 비아냥도 공공연하게 들려온다. 이는 자유한국당이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라며 발표한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야당의 문 대통령을 향한 빈정거림과 경멸은 문재인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에 대한 비판 여론에서 기인한다. 실제 나라 안팎의 경제 상황은 어렵다 못해 참담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산업과 지역의 경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연령을 불문하고 취직과 재취업이 어려운 사상 최악의 고용 참사 등이 암울한 분위기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조목조목 짚어나가며 대안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야당의 질타는 대한민국 국민의 심정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에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무한 책임’을 져야하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일 일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자국에서조차 이토록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전 세계를 상대로 한반도 평화를 호소하며 전념하는 이유에 대해 야당은 얼마나 깊이 숙고해봤을지 의문이 든다. 문 대통령은 야당이 그토록 원하는 ‘경제 회복’ 때문에라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비핵화가 꼭 필요하다며 집권 3년차에 접어드는 시점까지 거듭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북한 대변인’ 등 각종 독설이 담긴 문자메시지는 여전히 철부지 옹알거림으로 재탕되곤 한다.

사회 변동 이론 가운데 순환론에 따르면 가깝게는 1950년 6·25전쟁을 비롯해 오랜 전쟁의 역사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규모 순위 10위권을 꾸준히 유지해온 경제적 풍요를 전쟁으로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은 비무장지대를 접점으로 한반도를 수많은 ‘첨단 전쟁 무기 전시장’으로 만들어놓으며, 분단 7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현대사의 ‘징병 역사’도 여기서 출발한다.

한반도는 1953년 정전협정으로 인해 휴전상태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지역으로 꼽힌다. 언제든지 전쟁이 재개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잠재돼 있는 곳이다. 만약 예기치 않은 돌발 사건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면, 지금의 휴전을 과연 항구적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때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물리적인 타격을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문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동의없는 전쟁은 있을 수 없다”며 ‘한반도 운전자론’으로 맞받아쳤다. 남북관계는 결국 롤러코스터를 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평화가 이뤄지면 남북뿐 아니라 유럽까지 이어지는 ‘전방위적 경제협력’이 찾아오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그야말로 ‘국운’(國運)을 걸고 한반도 평화를 통한 경제대국을 꿈꾸고 있는 셈이다.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남북통일을 가정해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국내의 각종 연구자들도 2050년 대한민국 GDP가 8만 달러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남북의 경제규모나 소득수준 등 경제협력에 필요한 제약조건이 여럿 발생하겠지만, 분단 70년 동안 이 땅의 국민들이 전쟁 재개의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만 했던 심정에 비하면 그야말로 ‘꼭 해보고 싶은 고민’이 아닐까 싶다.

경제 살리기도 국가가 존재해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통일이, 또한 남북정상회담이 경제 회복을 위한 만병통치약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요동치던 남북관계에 평화가 깃들려면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이런 관점에서라도 야당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문자 정치라는 작은 틀을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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