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민 데일리한국 경제부 기자.
[데일리한국 박창민 기자] "보래이, 가령 백 개 가운데 한 개만 불량품이 섞여 있다면 다른 아흔아홉 개도 모두 불량품이나 마찬가진기라."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이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이끌던 때 임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당시 락희화학의 주력 상품은 화장품 '럭키크림'이었다. 일명 '동동구리무'로 불리던 상품으로 락희화학이 만든 첫 제품이기도 했다.

1950년 럭키크림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깨지거나 금간 용기에 크림을 담는 경우가 간혹 발생한 것이다.

구 창업회장은 직원들과 일일이 용기 선별작업을 했다. 이를 본 구정희 락희화학 부사장이 "그런 일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구 창업회장은 "아무거나 많이 팔면 장땡이 아니라 한통을 팔더라도 좋은 물건 팔아서 신용 쌓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그들은 와 모르나"라고 반문했다. '품질 최우선'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해온 구 창업회장의 경영철학을 실감할 수 있는 일화다.

70여년이 지난 2018년, LG유플러스가 품질 보안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중심에는 중국 화웨이가 있다.

LG유플러스가 화웨이를 5G 장비업체로 선정하자 국내에서는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백도어'로 대변되는 화웨이의 보안 문제가 주된 이유였다.

LG유플러스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다른 통신사도 화웨이 장비를 사용 중인데 유독 LG유플러스만 뭇매를 맞으며 '화웨이 변호인(?)'이란 총대까지 짊어졌기 때문이다.

한국화웨이에 따르면 국내서 유선장비의 경우 통신3사 모두 화웨이 장비를 채택해 운용하고 있다. 금융기관은 물론 공공기관에서도 화웨이 장비를 사용 중이거나 도입 예정이다.

19일 LG유플러스 용산사옥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최주식 LG유플러스 부사장은 "국내 유선 장비로 화웨이 장비 안 쓰는 곳이 어디 있느냐"며 "(화웨이 보안이 문제라면) 유선과 무선 모두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에둘러 억울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실상 국내 5G 망 구축에 사활이 걸린 쪽은 화웨이가 아니라 LG유플러스다. 화웨이에 한국시장은 중요 거점이기는 하지만, 화웨이가 통신장비를 공급하는 세계 170여 개국 가운데 한 곳일 뿐이기도 하다.

170여 개국 가운데 한 곳에서라도 보안 문제가 실제 일어난다면 LG유플러스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1300만명이 넘는 유플러스 가입자는 물론 전 국민이 등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LG유플러스는 화웨이 보안 검증에 발벗고 나섰다. 화웨이와 협의해 지난 11월 스페인 국제 CC(공통평가기준)인증 기관에 화웨이 기지국 코드와 각종 기술 관련 자료를 넘겼다. 내년 중반쯤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구축 단계부터 KISA(한국인터넷진흥원)의 70여개 가이드라인에 대한 검증을 받아 문제 없이 통과한 상태다.

LG유플러스는 그동안 위기에 강했다. '만년 3위'라는 오명이자 강점을 활용해 경쟁사보다 과감하고 유연한 전략을 펼쳐왔고 이는 성과로 이어졌다. 2011년 4G LTE 세계 최초 상용화, 올해 2월 국내 최초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출시, 넷플릭스 콘텐츠 IPTV 독점 공급계약 등이 대표적이다.

2011년 7월1일 LTE 서비스 시작 당시 17.7%였던 시장 점유율도 올 10월 말 기준 21.2%로 올랐다. 올 한해 IPTV 가입자 증가율도 10.2%를 기록하며 3분기 IPTV 가입자 수는 390만8000명으로 늘었다. 3위를 벗어나려는 LG유플러스의 결단은 고객 혜택 강화로 이어졌고, 고객은 이에 부응했다.

1950년 럭키크림은 잘 깨지는 용기 문제로 반품 소동이 일었다. 이 위기를 품질경영으로 이겨낸 구 창립회장은, 안 깨지는 소재를 찾다 플라스틱에 눈을 돌렸다. 럭키크림으로 번 돈 3억원은 플라스틱 공장 설립에 투자됐고, 이는 국내에 플라스틱 시대를 여는 시발점인 동시에 연 매출 150조를 기록하는 LG그룹의 주춧돌이 됐다. 위기를 변화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LG유플러스에 있어 화웨이는 잘 깨지는 용기다. 회사를 위기로 몰아 넣을 자충수가 될 수도 5G 시대를 앞서 갈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잘 깨지는 용기를 터닝포인트로 삼은 락희화학, 화웨이 보안 이슈를 정공법으로 타개해 나가려는 LG유플러스. 일일이 용기 선별작업을 거치며 품질 개선에 나선 구 창립회장, 국제 기관과 국내 기관으로부터 보안 검증에 직접 나선 하 부회장. 두 회사와 두 대표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LG유플러스가 화웨이에 대한 철저한 보안 검증으로 국민의 우려를 종식시키고, 5G시대의 글로벌 리더로 도약해 전통LG의 저력을 이번에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화웨이를 믿는게 아니라 LG유플러스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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