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강국 내세우면서도 "또 게임 때문에…" 부정적 인식 여전

같은 게이머 동질감 속 안타까운 사연에 자발적으로 손 내밀어

국내 게임업계 '빅4' 공익재단 설립으로 사회 공헌 활동도 활발

사진=픽사베이
[데일리한국 황대영 기자] 2018 게임업계는 안팎으로 몸살을 앓았다. 밖으로는 국제질병코드 게임중독 등재부터 중국 게임시장의 폐쇄까지, 안으로는 확률형 아이템부터 사회적 사건까지 연일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게임은 억울하게도 여러차례나 '희생양'이 되곤 했다. 일부 사회적 사건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접점이 보인다 싶으면 해괴한 논리와 주장으로 게임을 물귀신작전으로 걸고 넘어지는 사회 분위기 탓이기도 했다.

"또 게임 때문에…"라는 인식은 게임이 '절대 악(惡)', '만악의 근원'이라는 낡은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도록 방치하고 있었다. 한때 유선네트워크 저변 확대와 함께 PC온라인 게임 강국으로 통하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게임의 역(逆) 기능만 강조되는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커뮤니티로 이어진 게임 속에서 훈훈한 미담은 여전히 게이머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고 있다. 이런 사례는 해당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만 사회적으로는 거의 부각되지 못해 잊혀지게 마련이다. 올 한해 세상을 더욱 훈훈하게 만든 게이머들의 숨은 미담들을 세상속으로 다시 끄집어내본다.

◇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진 게임, 타인의 생명을 구했다

지난 2012년 리니지 게이머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생명을 구한 사례. 사진=아고라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20년 장수 게임인 만큼 게이머들에게도 기억에 남는 일화들이 적지 않다.

리니지 게임의 경우, 2001년 희귀 혈액형을 가진 리니지 유저가 교통사고를 당해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때 보여준 게이머들의 자발적 노력이 돋보이는 케이스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리니지 게이머들은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통해 교통사고 당사자와 동일한 혈액형을 가진 게이머를 수소문해 결국 한 생명을 구하게 된다. 당시 엔씨소프트측은 도움을 준 유저들에게 '생명의 검(現 생명의 단검)'을 선물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새로운 생명을 살린 일화는 더 있다. 지난 2012년 2월 초, '제 아이가 아픕니다! 좀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리니지 공식 홈페이지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리니지 유저가 올린 이 글에는 구개구순열(언청이)에 걸린 아이가 힘겹게 누워있는 사진과 함께 수술비가 모자라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연이 함께 적혀있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사실 여부 확인과 함께 모금을 위해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해 환자를 만나본뒤 이같은 내용을 홈페이지 메인에 걸게 된다. 이를 통해 수많은 리니지 게이머들이 자발적 모금에 나서 모금에 들어간지 불과 108분 만에 목표액을 달성해 아이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게 됐다는 얘기다.

지난 11일부터 넥슨 주요 게임에 공지로 게재된 희귀 혈액 제공자 모집. 사진=야생의땅: 듀랑고 공식 페이스북
게임업체 넥슨도 최근에 비슷한 사례를 겪었다. 넥슨은 지난 11일 모 커뮤니티에서 희귀 혈액 헌혈 대상자를 찾는 게시글을 발견하고, 이날 오후 넥슨 주요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관련 공지글을 게시했다.

그러자 게이머들의 선행이 이어졌고, 넥슨은 환자의 혈액이 어느 정도 수급됐다는 안내와 함께 혈소판이 부족한 상태라는 정보를 다시 게이머들에게 알려 결국 도움을 주게 된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넥슨의 모든 게이머들이 한마음으로 발벗고 나선 셈이다.

넷마블은 과거 CJ E&M 시절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게이머들 사이에 남긴 미담이 요즘도 거론되고 있다. 지난 2011년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근위영양증에 걸린 한 게이머가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통해 다른 게이머와 소통을 하면서 이같은 사정을 소개하게 된다. 그러자 이를 알게된 넷마블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모금에 나서 거액의 치료비를 마련함으로써 결국 생활의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스마일게이트의 PC온라인 게임 소울워커도 미담이 적지 않다. 지난 3월 소울워커 개발사인 라이언게임즈와 퍼블리셔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는 게이머들이 보낸 선물을 미혼모들의 공동생활 가정인 '애란모자의 집'에 기부했다는 사실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 사실을 접한 소울워커 게이머들은 자발적으로 애란모자의 집 해피빈 모금함에 십시일반으로 기부를 진행했다. 이를 인증하는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면서 하루 만에 약 4000만원의 기부금이 모금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2개월에 걸쳐 약 6400만원이 모금됐으며, 다음 물품 기부가 진행된 수원 나자렛집에도 약 1500만원이 모금되는 등 게이머들만의 독특한 기부 행렬이 계속됐다는 얘기다.

이 같은 현상은 기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으로 묶인 게이머들의 커뮤니티 속에서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게임 내 문화가 외부로 확장돼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 사례로, 같은 게이머라는 동질감 속에서 발생한 게임의 순기능 중 하나다.

◇ 빅4 게임업체 모두 공익 재단 보유…사회적 책임 강화

넥슨의 기부금으로 설립, 운영 중인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사진=푸르메재단 제공

게이머들의 노력과 별개로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스마일게이트 등 주요 게임업체들은 공익 재단을 설립해 사회 공헌 활동으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의 스타트업 육성책을 비롯해 게임에 대한 사회적 부정적인 이미지 탈피를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12년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을 설립했다. 특히 지난 2017년 9월에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2020년까지 5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재단에 지정 기부하기로 했다면서 사회공헌 활동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간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은 소외계층 아동 MIT 과학특별프로그램 운영, 아동 양육시설 공부방 제공, 특수학교 지원 등의 다양한 나눔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지난 2월 출범한 넥슨재단은 NXC, 넥슨코리아 등 넥슨 컴퍼니를 구성하는 주요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통합적으로 운영, 관리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 및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신규 사업들을 발굴하고 추진하는 역할을 맡았다. 앞서 넥슨은 푸르메재단에 대한 기부를 통해 국내 최초 장애 어린이 재활병원인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개관에 동참한 바 있다.

넥슨재단은 어린이 및 청소년에 보다 초점을 맞춰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넥슨 컴퍼니와 함께 청소년 코딩 대회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협약으로 새로운 교육과 놀이를 제공하기까지 게임을 통한 사회 공헌 활동부터 기부까지 기존 사업들을 더욱 강화하고, 새로운 사업들을 추진해나갈다는 구상이다.

김정욱 넥슨재단 이사장은 "넥슨재단은 어린이 창의력 증진을 위한 브릭 기부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 아동복지 분야에서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온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의 협업을 통해 더욱 많은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교육과 놀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넥슨재단-초록우산어린이재단 브릭트리 점등식. 왼쪽부터 넥슨재단 김정욱 이사장, 소호임팩트 프리야 베리 대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제훈 회장,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박혁 중앙후원회장. 사진=넥슨재단 제공
같은 달 출범한 넷마블문화재단도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넷마블문화재단은 게임문화체험관, 게임아카데미, 기부 및 봉사활동 등 기존 넷마블이 진행한 사회 공헌 활동을 체계화, 고도화하며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개선에 노력을 쏟고 있다.

특히 넷마블문화재단은 장애 학생의 사회적 인식 제고에 초점을 맞추며 '전국 장애학생 e페스티벌'을 11년째 지속 중이다. 이는 게임이라는 매개체로 장애학생의 자존감 및 성취감을 고양하고, 발전하는 e스포츠 및 게임 산업에서 소외된 장애학생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며 건전한 여가문화를 확립한다는 취지다.

크로스파이어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한 스마일게이트는 지난 2012년 게임업계 3번째로 재단법인 스마일게이트 희망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스마일게이트는 희망스튜디오에 10년간 약 180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쌓아왔으며, 매년 운용 기금을 그룹에서 출연해 사회 공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희망스튜디오는 게임업계 에코시스템 발전을 위한 스타트업 육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탄생한 오렌지팜은 스타트업에 단순 공간 지원이 아닌 각종 인프라 제공과 사업 멘토링, 투자 유치, 글로벌 진출 등 성장을 위한 단계별 맞춤 지원을 하고 있다. 2014년 설립된 오렌지팜은 서울 서초와 신촌, 부산, 중국 베이징 등 총 4개의 센터를 보유 중이다.

위정현 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게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라며 "게임사들의 공익 재단 설립 취지는 게임에 대한 이미지 개선이 주요 목표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위 학회장은 이어 "하지만 대중들과 게이머들은 이러한 게임업체의 문화재단 존재는 물론 어떤 사업을 전개하는지도 잘 모른다"며 "실제 문화재단이 게임산업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맡기 위해서는 보다 책임성을 높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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