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산업부 기자.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아이들에게 일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아이들은 에어아시아에서 단 하루도 어떠한 형태의 일을 한 적이 없다.”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4일 한국어판 자서전 출간 기념회에 참석해 오너 일가(一家)의 갑질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페르난데스 CEO는 이날 자신의 자녀에게 일을 물려주지 않고, CEO가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인정’에서부터 오너 일가의 갑질도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페르난데스 CEO는 “목숨을 걸고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 아이들은 갑질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며 “한국도 새롭고 젊은 세대가 자리를 잡으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책상 하나만 두고 직원과 소통한다”고도 했다.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은 올 한 해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힐 것이다. 직원에게 인격 모독에 가까운 폭언을 퍼붓고, 심지어 직원의 뺨을 때리는 등 폭행까지 저지르는 오너 일가의 ‘민낯’은 희망을 품고 사는 많은 이들에게 좌절감을 안겼을 것이 분명하다.

페르난데스 CEO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룹 오너인 그가 공식석상에서 자녀에게 일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단언한 것은 우리 사회에 적잖은 시사점을 던지는 듯 싶다. 스스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직원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얘기도 그런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의 발언은 한국 사회에 오너 일가 갑질이 왜 탄생했을지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새겨들을만 하다.

물론 그룹 오너가 사실상 ‘제왕적 권력’을 갖는 한국 기업문화의 장점도 적지 않다. 오너의 진두지휘 아래 글로벌 회사로 성장한 국내 기업도 여럿 손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너의 결단에 따라 조직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구조가 꼭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페르난데스 CEO도 이같은 점을 의식해서인지 “경직된 한국 문화가 잘못됐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이같은 문화 아래서 굉장히 많은 성공을 일궈낸 것도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오너 일가의 여러 갑질 행태를 '정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너 일가의 도를 넘은 폭언·폭행을 비롯해 기행에 가까운 비상식적인 행태 등은 한국 경제를 견인해온 오너의 ‘품격’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최대 악재였다.

오너 일가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갑질은 다수의 사회 구성원에게 좌절을 맛보게 한다. 실패에서 오는 단순한 좌절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태생적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비관주의를 사회 곳곳으로 전염시킨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어느새 희망이나 소망 같은 단어는 신기루가 되고 만다. 오너 일가의 갑질이 근절돼야 하는 근본적 이유다. 페르난데스 CEO의 발언은 그런 맥락을 핀셋으로 집어내듯 정확히 짚어냈기에 오랜동안 귓전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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